2020625일 목요일,


새벽녘 빗소리에 눈을 뜬다. 물은 생명이다. 생명의 손길이 그간 더위와 가뭄에 지친 초목에 생기를 준다. 실비를 모자로 받으며 대야와 꽃삽을 들고 텃밭으로 내려간다. 작년에 키우던 고추와 토마토가 씨를 떨어뜨려 땅속에 잠자다가 지난번 비에 싹을 틔우더니 이젠 제법 컸다. 꽃삽으로 흙과 뿌리를 깊게 떠서 휴천재 감동 옆에 서있는 감나무 그늘 밑으로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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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을 보니 수로와 전혀 연결되지 않는 사막이나 고원에 새로 생긴 연못이나 호수에 물고기가 생겨나는데, 전에 없던 종류의 물고기가 새로 생겨 헤엄치는데 그 까닭을 밝혀냈단다. 청둥오리들이 다른 곳에서 물고기(예를 들어 잉어) 알을 먹고 그런 외지로 날아가서 물 속에 배변을 하면 그 위장 속에서도 아직 살아남은 물고기 알이 부화하여 거기 살기 시작한단다


산에서 꽃피는 산벗나무를 비롯해서 수많은 식물도 새들의 작품이란다. 새들이 씨앗을 과일째 따먹고 날아다니다 배변을 하면 따뜻한 위장 속에서 알맞게 발아가 준비된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단다. 나는 새가 아니니까 저런 모종을 대야에 떠다가 옮겨준다. 이미 옮겨심은 아주까리들도 사방에서 실한 모습으로 커가며 빗속에서 고맙다고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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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발발 70주년 되는 날. 요즘 남북문제가 경색되어 그동안 남북화해의 분홍빛 꿈이 갑자기 겨울을 맞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요즘 북한의 태도도 맘에 안 든다. 괴팍하고 예측 안 되는 북한의 태도 앞에, 약속을 하고서도 미국의 제동에 한발도 못 나간 우리 정부의 태도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그 배후에는 볼턴 같은 극우파를 참모로 둔 트럼프의 꼼수와 한반도에서 전쟁 외에는 아무것도 안 바라는 일본 아베의 심술이 있었다니! 내 동생 중에도 그런 애가 하나 있는데 (‘누나가 그렇게 한다고 걔는 안 바뀌니까 애 그만 쓰고 신경 끊어요라는 말까지 들으며) 참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바로 용서에 대한 말씀이 나온듯하다


베드로가 큰 맘 먹고 형제가 잘못하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되겠지요?” 라고 묻자 예수님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다른 성서 사본에는 일흔 번에 일곱 번”(70X7= 490)이라고 나온단다. 7? 77? 70X7? 끝없이, 한정없이, 상대가 용서를 바라지도 않는데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냥 용서하라고? 세상에!아무튼 형제간에도, 부부간에도, 남과 북 사이에도 서로 이런 태도로 대할 때만 답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 실상사 선재집에서 지리산종교연대가 주최한, “생명평화의 세상을 염원하는 지리산 생명평화기도회가 있었다. 지난 주 종교연대의 회의에서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늘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장마가 시작되어 실상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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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순으로 각 종단에서 6.25 70주년과 요즘의 남북관계의 원만한 출구를 위한 염원을 발표하고, 뒤이어 모든 참석자가 한국전쟁 70, 좌우, 남북 대립에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억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책을 위해 드리는 생명평화 기도문을 합송하였다


성공회 산청 성당의 성요한 신부님의 화해의 노래들에 이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성요한신부 작곡)는 노래를 합창했다. “6월 지리산 사람들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남북의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DMZ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을 추진합시다라는 선언으로 모임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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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는 각자가 점심을 챙겨오기로 했었는데 고맙게도 실상사에서 오늘이 단오날이라고 맛난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너그럽고 품이 넓어 우리 같은 가톨릭 중생들도 기꺼이 거두어주고 먹여주니 갈 때마다 빚진 마음이다. 오신부님이 계실 때는 그래도 산청 성심원에서도 그 모임에 공간을 제공하고 식사도 대접해 주었는데 그분이 가시고나니 많이들 아쉽다. 가톨릭 참석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휴천재에 들러 커피한잔을 나누며 못 다한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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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가 내리니 밭일도 없어 마음까지 한가롭다. 어제는 드디어 우리가 걱정하는 유영감네 논들에 벼 심는 이양기 소리가 들린 터라 반가워 보스코랑 우산을 쓰고 구경을 갔다. 경운기가 다니던 농로까지 깎아 내려 논을 넓히느라 사람이 걷기도 불편하게 만들어 놓은 길을 힘겹게 올라가보니, 땅에 대한 농부의 애착이 과하다 보면 어떤 형세가 되는지 한눈에 보인다. 조막만한 돌로 축대를 쌓았고 무작정 넓힌 쪽은 이양기마저 잠길만큼 깊어져 벼를 심지도 못했단다.


뒤이어 보스코랑 휴천강가를 거닐며 야생 치커리도 꺾고 산딸기도 따며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한다. 나이가 들면서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이 생을 떠나는 짐도 가벼울 텐데... 평생 돌 한 개, 흙 한 줌, 땅 한 뼘에 얼마나 목숨을 걸고 욕심을 내왔는지 돌이켜본다면 내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도 내 잘못을 나 혼자만 모를 때가 대부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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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보를 마치고 마을 어귀에 들어오다 '상주처녀' 소담정의 손님들을 만나 휴천재로 초대하였다. 도시 삶의 모든 걸 내려놓고 상주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두 분의 모습이 신선했다. ‘성모영보회수녀님 한분은 한때 광주와 서울 살레시오 수도회 살림을 해주며 살레시안들을 거둬주셨다니 더욱 반가웠다. 어디서 누굴 만나든 인연과 인연은 이렇게 묵주알처럼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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