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0일 수요일, 맑음


내일은 지리산 휴천재로 내려간다. 떠나기 전 서울집 안팎을 정리하고 가야 다음에 돌아올 때 기분이 좋다. 먼저, 쓰레기 분리수거. 비닐, 패트병, 플라스틱, 종이... 개구리가 무논에 알을 가득 까듯 인간은 무한대로 쓰레기를 생산한다. 이번 코로나 19로 인간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강은 정화되고 하늘은 맑아졌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들 아쉬워 할 일은 없다. 그 자리를 다른 자연이 서로 양보하며 잘 채우고 가꿔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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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시트를 빨아 널고 겨우내 덮었던 오리털 이불도 껍질을 벗겨 빨았다. 오리털 이불을 햇볕에 널자, 오리가 겨드랑 깃털을 부풀려 날아오르듯 팽팽하게 몸피를 키운다. 오랜만에 돌아온 찬란한 태양 아래 만물이 그 빛을 받아 빛을 발한다. 우리는 때로 움추러들고 자주 두리번거려도 자연은 언제나처럼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만물에 하느님의 영이 깃들어 계시기 때문이다. 계절도 어느듯 승천대축일이 내일로 다가오고 성령강림대축일로 부활시기가 끝나간다.


우리 성당 바로 위측 아파트에서 코로나 확진자 하나가 나왔다는 소문. 걔의 할아버지는 우리 성당 교우여서 지난 주 토요특전미사에 나왔는데 혜선 엄마가 온도 체크를 해드렸다고 스스로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2주간 피정한다고 생각하고 아무데도 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고 푹 쉬라는 내 우스개에 몹시 화를 낸다. 언제부턴가 쉬는 게 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음성판정을 받아 성당 평일미사도 다시 재개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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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쌍문근린공원산밑에 붙어있는 마지막 집들이다. 우리 동네에서 덕성여대 기숙사로 가는 6m 산복도로를 내려하려 하자, 주민들은 집값 오르는 것보다 고요함을 선택하여 전부 반대하였다. 그래서 길은 산으로 막혔다. 하루에 너댓 번 트럭으로 야채나 생선을 파는 아저씨들의 처연한 외침이 이 동네에서 듣는 소음의 전부. “꿀참외가 10개에 3000! 10개에 5000!” 테라스에서 차를 세우고 5000원어치를 달라니까 8개를 준다. “10개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니까 "그건 녹음소리고 이건 참외알이 굵어서 여덟 개죠."라는 대답


평소 같으면 따질 문제이지만, 내가 두 개를 덜 먹는다 한들 별 손해도 아니다. 집안에 있는 돈 다 털어 1톤 트럭 하나 사서 저렇게 애절하게 팔아야 지친 몸으로 돌아가 아내 손에 돈을 쥐어주리라. 남은 돈으로 내일 장사꺼리를 또 장만해야 하는 고단한 삶의 비명이 그 트럭이 떠나가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산 사람은 이렇게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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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명동역 CGV안녕, 미누라는 다큐영화 시사회에 갔다. 201811월 우리가 네팔을 찾아가던 날이 미누의 49제였다. 자신의 고국을 사랑했고, 나이 20에 한국에 와서 18년을 불법 체류자로 노동하며 살다가 강제추방을 당한 후에도 한국을 조국만큼 사랑했던 아름다운 영혼의 네팔인. 그런데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만큼 말씨도 정서도 우리와 같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DMZ 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에 다녀가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이 씨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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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원 감독이 이주민을 보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아 주고, 우리 법무부의 잔혹한 정책을 폭로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깨우쳐주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 내 주변사람들에게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하며 손수건도 꼭 준비하도록 조언한다. 나도, 손녀 돌보기로 눈코뜰새없는 우리 큰딸 이엘리도 찾아와서 눈이 빨개지도록 함께 울었으므로.... 네팔 포카라의 호수에 배를 띄우고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엔딩의 가무잡잡한 얼굴이 오래도록 가슴 한켠에 머물 것이다. 이땅에 온 가난한 나라의 일꾼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최의팔 목사님과 저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는 여러 단체들의 숨은 헌신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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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레방이사회가 있어서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에 갔다. 일년에 4번 하는 이사회인데 코로나19로 올해는 처음 참석했다. 그래도 실무진이 열심히 해주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인건비라도 나와 우리가 처음 일을 시작한 3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때는 이사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푼돈과 연대하는 단체들의 지원비가 전부였으므로 현장 일꾼들의 삶은 최저 생계비는커녕 극빈자 수준이었다. 요즘 총선에 대패하고서 최후발악을 하는 친일보수세력과 그 세력의 충견으로 짖어대는 기레기언론의 총공세를 혼자서 막아내는 윤미향씨의 '정의연'이 바로 그랬다. 뜻과 의지로 지금까지 와준 '두레방' 실무자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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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훈이가 떠나고 서울집 6대 집사로 취임한 정태가 아직도 주민등록이전신고를 안 했단다. 내가 차린 광어회덥밥으로 점심을 함께 먹이고서 낮잠을 자는 총각을 억지로 깨워서 동사무소 다녀오라고 내보냈다. 주인인 내가 동사무소로 전화해서 본인 주민등록증과 전세계약서를 지참하면 된다는 확인을 받고서 정태의 등을 떠밀어 내보냈다. 우리집에 사는 '잘생신 총각'들에게 호기심이 많은 이웃집 서광빌라 할메들은 내가 올라오면 우리집에 누가 드나들었는지, 특히 처녀라도 찾아오는 일이 있으면 대단한 뉴스처럼 내게 일러바치곤 한다. 그렇게 우리가 없어도 사람사는 낌새를 풍기는 집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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