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5일 토요일, 맑음


김병상 신부님이 돌아가셨다고 대모님이 부고를 보내셨다. 우리와의 인연을 아시기에 제일 먼저 보내셨으리라. 십여 년 전 우리집 휴천재에 오셔서 심장박동기를 단 채로 천왕봉을 오르셨다. 오르는 데만 8시간,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는데 다시 한 번 꼭 오시겠다던 약속은 이젠 하늘나라에 가셨으니 언제라도 오실 수 있으시리라.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941977.html?_fr=mt2


2년 전 자서전 따뜻한 통행을 펴내신 날 기적처럼 병상에서 일어나 우리를 반갑게 맞으셨던 모습이 이승에서는 마지막이 되었다. “그동안의 나라 걱정, 교회 걱정 접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신부님 사랑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함께할 께요.” 오늘 아침과 저녁 위령기도로 성무일도를 바치며 신부님께 속삭였다. 가톨릭에는 성인(聖人)들의 통공(通功)’이라는 교리가 있어,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통하고 서로 돕고 보살핀다는 신념이 있어 참 맘 편하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2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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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처럼 몇날 며칠 줄기차게 바람이 분 일은 없다. 날씨도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특징이라고 초딩 시험문제에도 나왔었는데, 그 특징이 사라진 자리엔 겨우내 춥든가, 올 겨울처럼 겨우내 따스해 제 바로 눈 한번 구경 못하고, 물 어는 일도 없는 싱거운 겨울도 있다니...  봄바람 치곤 염치가 있다면 한 사나흘 불면 하루 이틀 쯤은 쉬어야 도린데, 참 기운도 좋다. 엊저녁 꽃씨를 받아 바가지에 담아서 들고 오다가 거친 바람에 그만 바가지를 빼앗겼고 씨앗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다.

'낼아침엔 소독약을 쳐야 하는데...' 배나무 소독약을 질통에 채워놓은지 여러 날이니 보스코가 어지간히 애가 탄다. 요즘은 광풍이 골짜기를 달려오르다 소나무를 흔들면 마술처럼 바람도 (송앗가루로) ‘노랑 바람이 된다. 노랑 파도가 크게 일렁이는 거친 봄바람 앞에, 저걸 멋있다고 해야 할지 두렵다고 떨어야 할지 내 머릿속이 좀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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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날씨가 좀 나아질 거라는 예고에 새벽 다섯시 반에 테라스로 나가 텃밭의 팔랑개비(미루가 훔쳐다 설치해 준)를 보니 웬일로 멈춰 있다! 기욱이네 고사리 밭 대나무끝에도 바람은 멈춰있다. 곤히 잠든 보스코에게 "여보, 바람이 아주 조용한데!"하니 그대로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는 마당으로 내려간다. 20리터 소독 질통을 짊어지고 왼손으로는 부지런히 펌프질을, 오른손으로는 분무기로 나무 사이를 헤치며 약비말을 뿜어댄다


매해 흑성병, 적성병으로 배가 속까지 병들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김원장님이 모셔온 배농사 전문가가 손질한 정성을 봐서라도 잘해보겠다는 각오가 온몸에서 뻗친다.그는 휴천재 입구의 넝쿨장미와 능소화에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소독약을 뿌렸다. ‘미국각시나방이 번지면 능소화 꽃몽오리를 모조리 따버려 꽃 한 송이 제대로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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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진이네가 마룻방 창앞에 데크를 한다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 바람에 휴천재 대문 양옆으로 자라오른 주목 두 그루가 베어져 나갔다. 20년 넘게 자라 이층 마루에선 아름다운 녹색을 내려다보게 해 주던 생명인데... 창문 앞 화단에서 파낸 흙이 고마워 마당 끝 화단을 채워넣고 꼭꼭 밟아 주었다.

올해도 옻순을 땄으나 삶으려다 작년처럼 옻이 오를까 겁이 나서 보스코에게 데쳐달라고 했다. 장갑을 끼고 무슨 젯상 올리는 엄숙한 그의 표정이 나를 웃긴다. 나는 부엌밖에서 창문으로 지시를 내린다. ‘물을 끓여요.’ ‘이젠 옻순을 넣어.’ ‘젓가락으로 뒤집어요.’ ‘2분 지났으니 불을 꺼요.’ ‘망에다 부어 물을 빼요.’ ‘설거지 그릇에 찬 물을 채워 식히라구요.’ ‘됐어요. 이젠 록글라스에 넣고 뚜겅을 닫아요.’ ‘이젠 나한테 줘요. 냉장고에 넣게.’ 옻닭도 잘 먹고 옻순도 먹으면 괜찮은데 삶는 김만 쐬도 벌겋게 옻이 오르니 까닭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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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가 벙개를 쳤다. 도예가 민영기 선생님의 자부가 '산청요'라는 카페를 오늘 개업하는데 함께 가서 축하하잔다. 미루와 친한 분이니 우리도 당연히 이웃으로 축하해드려야 할 일이다. 목포에서 미루 여동생 부부도 왔고, 남해에서 파스칼 형부 부부도 오셨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는 마르코 임신부님 오누이도 오셨으니 축하에 축하를 더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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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생님 아드님도 젊은 도예가로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니 그 아버님 복도 많으시다. 보스코도 한때 빵기가 자기가 걷던 철학교수의 길을 가고, 자기의 모든 책을 남겨 주겠다는 야문 꿈을 꾸었는데, 꿈은 꿈으로 깨어졌기에 아들은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다. 아들 딸이 부모의 꿈과는 다른 길을 가면 걔들의 미래가 우리 부모의 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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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 친구의 딸이 ‘5월의 신부가 된다는 초대가 왔다. 미국유학에서 그 딸에게 정성을 들였던 (엄마에게는) 그럴듯한 총각 교수의 구애도 마다하더란다. “그인 그냥 오빠 같아, 난 가슴떨리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하더니만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느 틈에 후끈 달아 남편감으로 급변신하더라나. 사랑을 하면 얼마나 엉뚱한 답이 나오는지는 내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남자'를 후회 없이 선택한 처녀가 정말 마음에 든다. 행복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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