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5일 일요일, 맑음


어딘가 눈이 부시게 찬란한 꽃이 가득 피어 있을 텐데 어디로도 떠날 수가 없더란다. 본당수녀님은 기도와 묵상, 마당산책으로 달포를 지내다가 너무나 숨이 막혀, 병원 방문을 핑계 삼아서라도 어딘가 떠나고파 성당을 나섰단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어딘가 데려다 주겠지 싶어 터미널에 갔더니 학생 같은 자원봉사자가 득달같이 달려와 이마에 뭘 대면서 열을 재더란다. 진주라도 가려면 산청엘 지나야 해서 산청에서 버스를 내리자 이번에도 자원봉사자가 달려와 체온계를 이마에 들이미는데, 이러다간 진주도 못가고 무슨 일을 당할 듯해서 그 길로 함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고 말았단다. 함양터미널에 돌아와서도 다시 체온을 잰 후에야 풀려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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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백전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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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성당 종탑의 십자가를 보고야 코로나가 더는 못 따라오겠구나!’ 안심을 했단다. 우리 동네 아짐들이 함양도 못 가는 이유다. 이 난리 속에 목욕탕엘 가는 친구는, 행여 거창 사람(함양은 아직 코로나 청정지역이지만 거창은 여러 사람이 확진판정을 받았다)이 올까 싶어 목욕탕 창구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더란다. 목욕탕이 무슨 '미성년자 18()' 출입소나 술담배가게도 아니고... 주민등록증 지참하고 다니는 여자, 특히 6, 70대 아줌마가 몇이나 될까? '코로나 난리'가 먼 옛날이 되고나면 할 얘기들이 참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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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으로 돌아가서 큰수녀님의 공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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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수녀님은 나물을 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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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고, 함양 백전길에 벚꽃이 만발하면, 지금은 돌아가신 독일인 헤드빅 수녀님 생각이 난다(며칠 전 2주기 연도를 드렸다). 차로 모시고 나가 점심을 사 드리고 꽃구경을 시켜드리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하늘나라 꽃길에서 사시사철 행복하실 게다.


그래서 엊그제는 헤드빅 수녀님 대신 본당수녀님 두 분을 모시고 백전길을 달렸다. 문정도 함양읍도 꽃잎이 휘날리며 벚꽃이 지기 시작했지만 백전은 날씨가 차서 운산공소까지 30여리에 벚꽃이 이제사 만개하였다.


'녹색대학' 있던 자리까지 가서 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꽃이 만개한 학교 마당에서 씀바귀랑 민들레로 봄을 가득가득 가방에 챙겼다. 원장수녀님은 나물캐기를 참 좋아하고 풀과 나무를 잘도 아셨다. 큰수녀님은 자갈밭에서 돌을 줍더니 공기놀이를 하시고... 서상으로 넘어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거연정이나 그 찬란한 꽃길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으라'는 정부의 말을 잘 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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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도 하느님을 만나려 사막으로 떠나는 은둔자가 있는가 하면(작은자매회 창설자 샤를르 푸꼬처럼), 까를로 까레또처럼 도시의 아파트도 하느님을 만날 사막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꼭 꽃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집에서 평안한 꽃길을 꿈꾼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다. 하지만 역병에서 피난하는 길이라면 지리산 골짝만큼 안전하고 편한 곳도 없으리라.


며칠 전 지인에게서 챠바타, 캄빠뉴, 바게트 등 이탈리아식 빵을 한 상자 선물받았는데 이탈리나에서 먹었던 빵보다 더 맛있다. 재료를 보니 금강밀, 스위스밀, 흑밀을 직접 재배하고 제분하여 천연발효종으로 만들었다니 너무 기분이 좋다. ‘우리밀살리기운동초창기에 소비자측 담당 이사를 맡았던 나는 소비자들에게 제빵 교육을 시키면서, 모처럼 경작해낸 우리밀이 글루텐 함양은 적고 제분기술도 떨어져 애를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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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원농업시험장에서 남중현 박사님이 금강밀 종자를 씨앗으로 만들어 내시며 "이게 잘되면 전이사님이 고생을 덜 할 꺼요." 하셨는데, 비록 남박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이제 그 씨앗의 열매로 귀농한 분이 직접 만들어 파는 맛있는 빵을 만나니 남박사님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다(빵공장 소개; ‘그랑께롱’ 010-3406-0851).


오늘은 45일 식목일에다 부활절을 앞둔 성지주일(聖枝主日). 성무일도 아침기도로 미사를 대신하면서 주일미사 독서와 층계송을 따라하였다. 또 식목일이면 보스코랑 해마다 장성 삼서의 선산으로 시제(時祭)를 가는데, 종친회에서 코로나 전염을 우려해서 "노인들은 오지 마시라, 우리 젊은 사람들끼리 제사를 지내겠다."는 전화를 받은 터라 시제 참석을 그만두었다. 보스코가 20여년 문중회장을 지낸 창녕성씨 삼서종중에서는 보스코보다 앞선 25대에서는 서울 사는 봉기 삼촌과 부사 삼촌 두 분이 생존해 계시고, 26대에서는 보스코가 제일 고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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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마을에서 도정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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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체칠리아네가 뉴질랜드에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한지 15일 되는 날. 귀국 축하를 하러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도정길을 걸어 그미네 집엘 갔다. 친정엄마도 지리산으로 '코로나 피난'을 와 계셨다. 어제 사온 나무와 꽃을 마당과 비탈길에 심느라 아플 여가도 없다는 체칠리아.


스.선생님 취향은 집달아내기고 체칠리아 취미는 꽃심기니 달아낸 집 앞을 꽃으로 치장하느라 평생을 살아왔다. "이젠 어느 쪽에다 집을 달아내실꺼에요?" 물으니 "이젠 그만 달아내야지."라는 스.선생님. 남편이야 집짓기를 그만 두더라도 체칠리아의 꽃-나무 심는 일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보스코한테서 "꽃 좀 그만 심어라!", "나무 좀 그만 심어라!"라는 잔소릴 해마다 들으면서도 좀처럼 멈출 수가 없는 까닭이다. 도정에서 내려와 해거름에 우리 텃밭 배꽃이 만발한 꽃그늘에서 봄나물을 뜯었다, 내일 지인에게 보내려고...


휴천재 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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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이 역병의 환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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