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일 목요일, 맑음


휴천재엔 벚나무가 두 그루인데 얼마나 화려하게 봄을 장식해 주는지 내 눈엔 예쁘기만 한데 옆논 주인 구장은 자기네 벼에 그늘진다고, 열매가 열리는 나무도 아니고 생산성도 없으니 자르라고 성화다. 그래도 굳이 안 자르는 건 이 봄날 열흘간 살랑거리는 바람에 가슴 뛰게 하는 연분홍의 춤사위 때문이다. 이해가 상충되는 곳에선 나무마저 이리저리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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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벚꽃에 에워싸인 진주댁네 강 건너 꽃구경도 좋을 것 같아 보스코에게 점심 후에 벚꽃놀이를 가자고 부추겨 논길을 따라 걸었다. 개울가에 수초와 꽃들은 제 세상 만났다고 한참 잔치 중. 강을 건너 그 집에 올라가보니 주인도 없이 흐드러져 어느새 꽃잎을 날리는 벚나무들, 닭장 안에는 닭들, 건너편 새장에는 공작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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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공작이 화려한 꼬리를 끌며 우아한 몸짓으로, 암공작들은 거들떠도 안보고, 청둥오리 뒤만 따라 다니고 있어 '참외 버리고 호박 먹는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알뜰한 아내 내쫓고 못난 첩을 들이는 사람을 욕하는 말인가 본데, 예쁜 암공작은 거들떠도 안보고 뒤뚱거리는 청둥오리만 쫓아다니는 꼴이 한참이나 재미있었다.


강건너에서 바라보니 아래숯꾸지 초입 초등학교 터 왕벚꽃들이 찬란하고 마을 윗켠 우리집 휴천재의 벚꽃도 축포를 쏘아올리듯 찬란하다. 코로나로 모든 사람이 어지간히 풀죽어 있어 청정지역에 사는 나라도 열심히 건강한 자연의 사진을 찍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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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책 세월의 지혜」(예수회 관구장 정제천 신부님[역자]이 보내주신)를 읽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일이 격려의 인사를 보내는 글로 엮어진 책이다. 지난번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식에서 거론하여 우리에게까지 유명해진 마틴 스코세이지가 '나는 성공에서 배운 것들보다 실패, 거부, 그리고 노골적인 반감에서 배운 것들이 더 많다.'고 한 얘기도 나온다.


에덴의 동쪽의 감독 엘리아 카찬을 찾아갔다가 영화 찍을 때 조수로 써달라고, '아니면 이 씨나리오라도 봐달라'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단다. 그러나 그 경험이 얼마나 자신을 강인하게 만들었는지 고백한다. 몇 년 후 영화투자자를 찾아 힘들게 만든 영화를 보여주고 투자를 부탁하자 '별로네요.' 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단다. 하지만 껄껄 웃기 시작했고 주변의 제작자와 스텝들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을 만큼 웃어버렸단다. 꿈이란 어떤 잔인한 사람 하나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고 계속 지키고 키워나가야 했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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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완배 기자의 '경제의 속살 '이란 프로를 자주 듣는다. 설득력 있고 명쾌한 강의는 경제에 문외한인 아낙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된다. 그는 캐나다의 작가이며 영화제작자인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커다란 일이 생기면 머릿 속이 하얀 백지상태가 되어 과거의 질서와 기억을 상실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여 그 세계로 편입된단다.

https://www.youtube.com/watch?v=oZtIhdOWB30


1998년 월가의 조작으로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즉 국가부도 사태가 왔을 때 한국 국민의 기본정신을 백지화하여 가족주의 협동정신을 무너뜨리고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신자유주의 세상이 들어오게 되었단다. 그 바람에 정권을 잡은 이명박 시절에는 '돈돈돈'으로 '부자되세요!' 라는 천박한 인사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고 받게 되었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이명박은 4대강으로 국토를 파제끼고, 자원외교로 국고를 바닥내면서 자기 주머니를 배불렸다.


화사한 벚꽃 말고도 곤충들의 눈에나 보일법한 작은 꽃들이 개울마다 가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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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면장댁이 길금으로 쓰려고 몇 고랑 심는 보리가 지금은 신기한 구경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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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세월호 사건으로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백지상태로 리셋 되었고, ‘공공안전’, ‘국민생명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우리도 품었고 그것이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박근혜 (비서실장 김기춘: '청와대는 재난 사령탑이 아니다!') 시절에 일어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에 고착되었던 삶의 규칙이 산산이 부서지고, 신자유주의경제(프란치스코 교황은 '살인경제'라고 지적했다)로 다져졌던 질서가 허망하게도 깨어지는 조짐을 보인다. 유럽 재무장관들이 앞다투어 공공자본(프랑스: '모든 투자주식을 국유화하여 기업들에 쏟는다'), 민간통제(미국: '의료 기업의 국유화'), 비영리 사업 국유화(스페인: '모든 영리 비영리 민간병원 일시 국유화'[이미 실시], 이탈리아: '알리탈리아를 다시 국유화하자')를 주장하면서 인류 전체의 뇌가 리셋되는 중이란다.


우리 눈 앞에서도 '배급경제'(약국 앞에 줄서서 마스크 2장씩), 계획경제(국민 70%에게 생활자금 긴급지원, '착한 집세') 등으로 삽시간에 시장만능주의가 무너지고 있고, 이에 분개하여 통합당으로 대표되는 기득권과 기레기언론이 얼마나 게거품을 물며 반발하는지('우리나라가 사회주의냐?',  '왜 우리 돈 뜯어다 가난뱅이들 나눠주냐? 선거 앞둔 선심 정책이다!' ) 국민은 절박한 심경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이 고통의 다리를 건너 우리 국민이, 마틴 스코세이지처럼, 불굴의 의지로 보다 바람직한 세계로 과연 넘어가나 못 넘어가나 하느님은 내려다보고 계실 게다.


휴천재의 봄은 배꽃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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