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9일 일요일, 맑음


로마의 늦겨울과 초봄에는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그래서 로마에는 비가 안 오면 우산을 '들고' 나가라. 그러나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가라.”는 속담이 있다. 뽐내는 처녀들도 장총처럼 긴 우산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모습이 거기선 예사롭다. 327일 로마의 날씨는 청명했단다. 그리고 저녁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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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빗속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역병 페스트가 창궐하던 1552년 어느날처럼, 성마르첼로 성당이 화재로 온통 타버리고 십자가만 고스라니 안 타고 남아 기적이라 여겨지던 십자가를 성베드로 성당 앞에 모셔 놓고, '로마 시민들의 건강(Salus populi Romani)'이라고 알려져온 성모 마리아 이콘화를 모셔다 성당 앞에 세우고 2020년에 불어 닥친 역병 '코로나 19 앞에서 망연자실한 인류를 위한특별기도를 바치고 축복을 내리셨다.


우리도 현지시각 저녁 6시에 맞추어 새벽 2시에 일어나 평화방송 생중계를 보면서 함께 기도를 올렸다. 빗속에 휘적휘적 비틀거리며 제단으로 올라가 노인이 들려준 얘기는 우리가 지난 석달간 품어온 느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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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저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짙은 어두움이 우리 광장과 길거리와 도시로 몰려들었고, 우리 삶을 벙어리가 되어버린 침묵과 황폐한 허무가 사로잡아버렸습니다. 그건 지나가는 모든 곳을 마비시킵니다. 공기 중에 느껴지고, 몸짓으로 알 수 있고, 눈길로 말을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빠져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모두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동시에 같이 노를 젓고, 모두가 서로 격려가 필요한 가련한 사람들이라는 중요하고 필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b_-1dGwq-s

 

폐가 한쪽 밖에 없고 엄청난 류머티스로 무릎 고생을 하는 분이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실 적에 골고다를 오르는 주님이 거기 함께 하셨다.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일상의 소중함이 일깨워지고 난민과 빈곤층, 정치적 약자들에게 우리가 한 짓을 돌아보게 되었다. 보스코가 엊그제 광주에서 온 촬영팀에 스팅의 노랫자락 How fragile we are! (우린 얼마나 나약한가!)을 상기시켰듯, 이제야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풍랑 속에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고 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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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은 우리의 취약점이라는 가면을 벗기고, 우리 회사, 우리 계획, 우리 습관과 소유를 건설했던 그 거짓되고 과장된 자신감이 민낯을 드러내게 합니다...

저희는 강하고 마치 불가능이 없다는 듯,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익을 탐하며, 저희는 만사가 자신을 흡수하고, 서두르다가 방향이 틀어지게 그냥 두었습니다. 당신께서 경고하실 때 저희는 멈추지 않았고, 전쟁과 세계적 불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가난한 이들과 중병이 든 우리 지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병든 세상에서 언제나 건강할거라 생각하며 무정하게 달려 나갔습니다. 이제 파도치는 바다에서, 당신께 간절히 청합니다. “잠깨어주십시오. 주님!”


저런 호소 앞에서도 오늘도 보수언론 TV 뉴스와 소위 좌담회에서 '중국을 상대로, 귀국하는 우리 아들딸들을 상대로 국경을 봉쇄 안 한 문죄인 정권'을 공격하고,  '전염병 퇴치한다는 호들갑으로 한국경제를 '폭망시킨  진보정책'을 욕하고, 요즘 전세계 선진국들이 시행하듯이 하위층 국민의 생활비를 보조하여, 자기들이 지적한대로 '폭망한서민경제'를 돕겠다는 청와대 정책에는 '왜 있는 놈들 돈 퍼주어 표몰이를 하느냐?'는 엉뚱한 시비로 게거품을 무는 자들(특히 신구교 크리스천 정치인들)을 보고 들으며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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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로나의 공포 속에서 도시의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는 친구들을 위해 꾸러미를 만드느라 어제는 오후 내내 밭두렁과 논두렁을 돌며 나물을 뜯었다. 신선초, 머위, 참나물, , 달래, 방풍.... 댓 시간을 흙과 얼굴을 가까이 하고 흙의 향기에서 봄 냄새를 맡는다는 건 우리가 떠나온 근본으로, 흙으로 돌아가려는 겸손함이리라.


나는 나물 하나하나를 캘 때마다 깨끗이 손질하고 털어가며 뜯는데 드물댁은 우선 뜯어 담아서 집에 가져와 다시 손질을 한다. 아줌마는 손이 아주 빠른 대신 거칠고 나는 깔끔한 대신 소득이 적다. 그러나 훑어온 나물들을 손질해놓고 보면 내 것과 비슷한 양이 되니 도시형과 시골형의 차이일 뿐 소득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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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가 된 문정초등학교 자리는 80여년된 왕벚이 활짝 피었다. 읍내에 볼일 있어 나가다 보니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초딩 3학년 때 1학년 아래인 자매가 우리 동네에 이사를 들어왔는데 놀 아이도 없고 갈 곳도 변변치 않아 가끔 우리 집에 불러 놀게 했던 아이. 벌써 고2가 되어 영상학교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1이 된 동생은 음성에서 산업디자인과가 있는 기숙학교에 가 있단다.


차에 태워 가면서 그간의 얘기를 들었다. 시골에 가면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주고 동생과 함께 쓰는 멋진 2층 침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아빠의 약속에 0K를 했는데 강아지는 커서 우리 집에서 제일 큰 공간 마당을 차지하고, 2층 침대가 들어올 수도 없던 조그만 방에서 살다 이젠 제각기 갈 길로 떠났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강과 나무, 산과 꽃들이 아빠의 저 모든 약속을 대신하고도 남았어요.’ 어떻든 두 딸에게 자연을 찾아준 그 부모는 가장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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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벙개를 쳐서미루네 부부와 우리 부부, 임신부님 오누이들이 만났다. 미루네가 대접하는 손칼국수 점심을 먹고서, 이곳 함양과 미루네 산청은 코로나 없는 청정지역이고 봄이 왔으니 한번쯤은 벚꽃 길을 가야 하지 않겠냐 의기투합을 해서 진양호 둘레를 미루네 차로 한 바퀴 돌았다. 사람도 차도 별로 없는 자리를 찬란한 벚꽃과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이 차지하고서 우리가 자기네 일부(식구)라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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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엔 누군가 거창한 국가보조금을 받아 거창한 수련원을 산비탈에 지어놓았고, 누군가에게 팔았고 그 누군가도 유지가 힘들어 또 판다고 내놓은 폐허시설에 그래도 사람들이 심어놓은 벚꽃은 30여년 인간들의 욕심과 무관하게 잘 커서 화려한 동산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속절없는 인간들아! 사람들이 아무리 땅을 제 이름 지어 불러도 영원히 갇힐 곳은 한 평의 땅 조각일뿐임을 기억하라는 교훈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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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도예가 민영기 선생님댁 산청요(山淸窯)’에 박물관과 며느님의 까페(‘산청요’)가 열렸다기에 들러서 커피를 대접받고 그집 정원과 도자기에 눈 호강을 실컷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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