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6일 목요일,


비를 맞으며 나물을 뜯는다. ‘투둑투둑우산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경쾌하다. 머위와 참나물, 신선초 여린 잎들로 나물바구니가 풍성해지면 내일 점심상이 풍성해지니 비 맞는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멀칭한 비닐 위에 지는 빗소리는 좀 더 둔탁하여 탁! 타닥~ 탁! 타닥~’ 흙에 폭 안겨 아직 잠이 덜 깬 감자한테 순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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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심했던 봄바람으로 텃밭에 멀칭했던, 구멍이 숭숭난 비닐들이 집 뒤꼍으로 펄럭이며 날아다녔다. 이장네 것 같아서 둘둘 말아서 그집 밭으로 갖다 놓았다가, 우리 텃밭의 두럭도 벗겨져 있어 되가져왔다. 우리 이랑에서 벗겨진 비닐은 가시덤불에 걸려 있어 쓸 수가 없었다. 애기상추를 얻으러 온 이랫집 도메니카가 아예 멀칭을 다시 하자 해서 비닐을 덮고 보니 감자싹 올라올 구멍을 어디다 뚫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걱정하니까 새싹이 나면 비닐을 들썩일 테니까 그때 뚫어주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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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가 오는데 맛난 보약을 마시고 불끈불끈 커야 할 감자순들 생각에 우산을 쓰고 앉아 이랑을 더듬어 보았다. 약간 두둑하여 구멍을 내보면 어디는 새싹이 맞고 어디는 작은 돌조각. 해를 못 보고 숨이 막히던 차에 참던 숨을 크게 내쉬며 비를 맞는 두 개의 어린 이파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저런 작은 생명도 서로 어루만지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데 이렇게 축축하게 비오는 날 산속에서 하릴 없이 혼자 지내는 사람들, 특히 남정들은 표정이 참 가련하다.


진이네 불루베리 밭에 막일을 하러 온 중년의 아저씨. 엊저녁 마당에서 만난 이가 자기 심경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꿈꾸던대로 함양 병곡에 땅 한 조각을 사들여 집을 짓고 꿈같은 전원생활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도시 친구도, 아이 둘과 함께 있는 아내도 자주 못 내려오자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핸폰을 갖고 놀거나 술을 먹는 게 고작이더란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싫어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는데 그게 정말 견디기 힘들더란다. 집이라도 안 지었으면 훌훌 털고 도시로 돌아갈 텐데, 생각 없이 덜컥 집을 짓고 본 일을 요즘처럼 후회해 본 적이 없단다. 그러던 차 이웃 살던 친구 하나가 우울증을 못 견뎌 산으로 들어가 목을 맸는데바로 자기 일 같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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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맘먹고 나섰죠. 몸을 움직여야 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것 같아 일을 찾아 나섰어요.” 진이네 밭에서 땀 흘려 일을 하고 나니 몸은 물론이고 정신이 활씬 맑아 졌다며 진이네서 저녁까지 얻어먹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비가 온다기에 엊그제 뒤꼍에서 보스코가 잘라내서 감동 옆에 쌓아둔 나뭇가지들을 잘게 토막쳐서 밀차에 싣고 마을 끝집 마르타 아줌마네까지 실어다 주었다. 무릎도 아프고 걷기도 힘들어 ‘땔감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가져갈 엄두가 안 난다.’ 해서,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세번에 걸쳐 끙끙 끌어다 주던 보스코의 얼굴이 넘어가는 석양빛에 더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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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도 없는 드물댁네도 배밭 전지한 나무를 한 차 실어다 마당에 부려 주었다. 이곳에서는 누가 무엇을 갖다 주어도 누구인지 알려고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받는다. 대신 자기가 줄 때도 생색내지 않고 그 집 툇마루나 부엌에 들여놔 주고 말없이 돌아간다. 우리 식당채에도 때로는 도토리묵 한 모, 쑥떡 한 봉지, 가래떡 한 조각, 울콩 한 주먹, 무 몇 개, 열무 한 다발, 상추 한 묶음이 꼬리표를 안 달고 들어와 있곤 한다.


엊저녁 8시에는 모처럼 평화방송을 틀고 교황님과 그분의 지향을 따라 '주님의 기도'를 함께 염송했다. 코로나 만연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얼마나 마음 상하셨으면 그분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고 지친 몸에 다리까지 끄셨다. 그분을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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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광주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라는 기구가 보스코의 강연을 녹화하러 찾아왔다바로 오늘 광주에서 광주 시민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기로 청탁이 왔었는데 코로나로 집회가 취소되어 녹화하여 영상으로 올린다나"21세기 아시아 문화를 위하여: ‘빛고을광주의 위상" 어쩌고 하는 거창한 제목인가 본데 보스코가 워낙 NG를 안 내는 사람이라 한 시간 안에 녹화를 끝내고 내가 차린 점심을 먹고서 김해에 있는 이태수 교수님 댁으로 녹화를 뜨러 떠났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못 모이니까 되레 호황을 보는 업종이 영상사업이란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사이에 엮인 애환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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