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4일 화요일, 맑음


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 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아침기도에서 읽은 성경 구절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한다우리가 철옹성처럼 느꼈던 것, 힘을 자랑하고 가진 것을 뽐내던 나라나 인간들이, 아주 하찮은 바이러스 하나에 정치는 그대로 흔들리고, 국경을 모조리 닫아걸고, 경제는 와그르르 무너지고, 인간관계는 다 끊기고... 우리가 세웠던 모든 것,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것이 얼마나 어이없이 무너지는지... 오래 전 스팅이 불렀던 팝송처럼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우리 인간들, 얼마나 얼마나 나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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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핀 수선화들도 얼굴이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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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리 심경을 알아차린 분이 내일 25(‘성모 영보 대축일)을 맞아 바티칸에서 낮 열두 시(한국에서는 저녁 8)에 전세계 구교 신교 신자들(통 털면 20억이 넘는다)주님의 기도를 합송하자고, 그러면 마음이라도 따뜻해지고 공포와 원망과 삭막의 정이 가라앉으리라고 제안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들의 심경을, 인류의 불안을 헤아리는 분이다. 저녁마다 우리 부부가 그 노인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오후에 보스코가 유튜브에서 나에게 보여준 짧은 영화 두 번째 나팔소리’(The Second Trumpet)에서 까마득한 거리에서 울려오는 듯한 나팔소리와 함께 먼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 한 개가 지구를 통째로 파괴해 버리는 영상을 보았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리하여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생명이 있는 바다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묵시 8,8-9)라는 자막이 마지막에 떠오르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n79fnAHLneI


먼 옛날 천하장사 공용들이 운석 하나로 그 운명을 마감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배우면 좋으련만... 한없이 오만하던 인류가 감당 못할 전염병 하나로, 어리석은 정치지도자의 핵단추 하나로 어떻게 끝장 날 수 있는지를 일러준다. 그렇게 시간은 얼어붙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돌아간 적막한 세상에서 그 분은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지구를 채워나가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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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는 빵기에게 마스크 몇 개와 손주들에게 줄 과자 조금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껏 포장을 해서 우체국에 가니 마스크가 들어있다고 무조건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우체국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핸드 메이드 코튼 마스크 6` 라고 우체국 직원에게 보여주고, 송장에 명기하고 나서야 겨우 보낼 수 있었다. 내 친구는 무슨 금괴라도 비밀리에 보내듯 하느냐고 한탄하는데, 그나마 317일에 보냈으니 갔지, 320일부터는 우체국 국제특급우편(EMS) 등 우정항공서비스가 중단된 국가가 전 세계 76개국으로 늘어났으니 영영 못 보낼 뻔했다


그런데 오늘 24일부터는 외국에 사는 부모, 자녀, 배우자에게는 1인당 한 달에 8개까지 (그것도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주면) 보낼 수 있다는데 싣고 갈 비행기도 안 뜨는데 그 허락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젠 마스크를 준비하고 운송할 항공기도 같이 사야할까 보다.


미루에게서, 남해 형부 부부가 오늘 저녁에 산청에 들르신다니 식사를 함께 하자는 초대를 받았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텃밭에서 꽃밭에서 풀을 좀 맸더니 며칠 전의 몸살기가 다시 돌아왔다. 진정제를 먹고 누웠다가 행여 은빛 날개들’(= 어르신들)에게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독감이라도 옮길 것 같아 못가겠노라고 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아픈 것보다 내 병을 옳길 수 있다는 부담감이 사람을 기피하는 원인이 됨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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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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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체칠리아가 부산에서 산으로 돌아왔는데 내게 부탁한 천혜향이 제주에서 택배로 왔다. 자기는 자가격리 기간이라며 우리 식당채 앞에 내어놓으면 가져가겠다고 했다. 만약 이탈리아 친구 까르멜라에게 그렇게 했으면 ! 뭐 내가 초세기 나병환자촌에서 사냐? 우린 세 주간이나 못 봤는데 잔소리 말고 내려와!” 하고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가족처럼 얼싸 안고 양볼에 뽀뽀하며 소란을 피웠을 꺼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한동네 사는 앞집 뒷집 옆집 할메할배가 단체로 특급열차로 천국행으로 떠나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들이라면 그렇게 이웃이 같이 죽어가면서도 서로 외롭지 않게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하늘나라로 동시입장을 감행하리라는 것을.... 죽음까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낭만이 있으려니와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미 낙원의 일부를 하느님께 떼어받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 사별마저도 천국에서 천국으로의 평행이동이라 생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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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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