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9일 목요일, 하늘은 맑음  세상은 모진 바람


지리산 휴천재 앞산 비탈 한 곳을 작년 봄 사람들이 민둥산으로 이발하자 보스코의  궁금증 발동이 시작했다. '왜 나무를 자르지?'로 시작한 질문은 뭘 하려고?’로 이어졌는데 사실 그 산비탈에 복숭아 과수원을 하겠다고 시작한 젊은이 덕분에 이전의 몇 년간 봄만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복사꽃을 건너다보아서 참 좋았다


[크기변환]노장대..._양화대에서_바라본_모습_(by_엉겅퀴님).jpg


그 뒤 복사꽃이 시들해지고 주인은 부도를 내고 사라졌다는 소식이 마을 사람들에게 돌았고 한 이태 후에는 그가 다시 나타나 농협에서 돈을 빌려 빚을 갚고 이번엔 일본에서 직수입한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부산하게 트랙터와 덤프트럭이 오르내렸다


그런 그에게 제일 큰 숙제는  농장을 하면서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기처럼 착한 사람만 세상에 살 꺼라는 착각은 두 번의 고배를 들게 만들었다. 아랫땅 주인이 진입로를 막아버리자 아랫땅 주인한테 헐값으로 모든 것을 넘기고 떠나야 했다.


[크기변환]IMG_4922.JPG


[회전][크기변환]IMG_4917.JPG


그런데 그 농장 위로 산꼭대기 비녀봉까지 가파른 산비탈을 민둥으로 벌채하자 이번에도 철없는 젊은이 하나가 또 망가지는 것 아닌가 우리들 걱정이 컸다. 보스코는 그 무렵 시간만 나면 망원경으로 감시를 했다. 수십년 자랐을 나무를 얼마나 잘라내고 실어갔는지, 산이 꾀벗고 치부를 들어 낸 모습을 마주보는 일은 괴로웠다


그런데 어제는 마침내 보스코가 저 사람들이 수종 개량을 한다고는 했는데, 과연 산에 무슨 짓을 했는가확인 차 같이 올라가보자고 했다눈으로 보기에도 이 근방 산비탈에 비해 유난히 가파르지만 게으른 나중씨가 자청해서 걷자고 나섰으니 나는 만사 제치고 0K. 


[크기변환]IMG_4791.JPG


[크기변환]IMG_4794.JPG


점심 후 간식과 물을 작은 배낭에 넣어 메고 그 깎아지른 산비탈을 올랐다. 지도상으로는 지리산 하봉에 붙은 와불산끝자락 비녀봉이 휴천재가 마주보는 진산이다. 휴천재에서 건너다보기에는 한 반시간이면 될 듯했는데, 트랙터나 오르내릴 산판 길에 겨우내 잦은 비로 흙은 쓸려내리고 돌팍으로만 이어지는 거친 길을 지팡이 둘을 보태서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우릴 보고 놀란 고라니 한 쌍은 커다란 몸집으로 껑충껑충 멋대로 뛰어 달아나고... 개량수종으로는 한 자쯤 된 측백나무를 심어놓았으니 50년쯤 지나야 산이 푸르러지겠다.


법화산자락에 휴천강을 따라 열린 고을들

[크기변환]IMG_4777.JPG

비녀봉에서 내려다보는 휴천재

[크기변환]IMG_4786.JPG


산정에서 보니 건너편 문하, 문상. 도정, 한남, 원기, 동강까지 환히 보인다. 작은 집들과 좁다란 논다랑이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부비며 잘난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이 수더분하게 몸을 풀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둥글반에 찬은 없지만 사람이 반찬으로 둘러앉은 아짐들 모습을 보는 기분이다
 

헌데, 오르긴 올랐는데 그 비탈로 다시 내려오자면 무릎이 탈날 듯해서 가리짐 사는 신대충씨한테 전화를 했다. 그 산등성이는 황새날등으로 알려진 옛 등산로여서 비탈은 너무 가파르니까 능선으로만 곧장 내려오면 자기네 집으로 내려온단다. ‘소연동에서 시작하는 이 능선이 '노장대'를 거쳐서 '와불산' 정상인 '향로봉(상내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였다는데 입산 금지로 몇 년간 발길이 뜸해져 인적이 거의 없었지만 간간이 산길의 흔적이 남겨져 있어 걷기에 수월했다


[크기변환]20200318_161131.jpg


4799.JPG


[크기변환]IMG_4804.JPG


중간에 산등성이에서 만난 산소는 누가 언제 이 험한 산꼭대기에 묘를 썼는지 모르지만(조상이라면 심술이고 자손이라면 극성일 텐데) 얼마전 파묘해서 이장한 흔적이 보였다. 그 자리에 남겨진 비석을 보니 무언가 대단한 끼가 있었던 집안임에 틀림없다. 무덤을 지키는 남녀 문인석(文人石)을 초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었다.

눈으로 더듬어 산길을 내려가다보니 가리점 쯤 되는 곳에 엊그제 비비안나가 낸 산불이 남긴 위력에 섬뜩했다. 오늘처럼 광풍이 불었더라면 '천왕봉에 이르는 불길 걷잡을 수 없어'라는 기사 제목이 뜰 뻔했다. ’


[크기변환]20200318_160758.jpg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

[크기변환]IMG_4823.JPG

'꽃을 멘 남자'

[크기변환]IMG_4837.JPG


케빈 아저씨네집 뒤로 해서 임도로 내려오다 보니 미자씨가 보여 그 집에 들러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내일 휴천재에서 점심이나 하자고 초대했다. 삽질쟁이 명박이가 문정땜을 만들어 용유담을 수장시킨다고 할 때 그 부부는 낮이면 오뉴월 땡볕에 용유담 위 찻길에서, 밤이면 송문교 다리 건너에서 오가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서 오직 자연을 지키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인시위를 하던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결국 땜공사도 막고 용유담도 지켜냈다. 함께 싸왔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는 동지다


[크기변환]IMG_4847.JPG


[크기변환]IMG_4848.JPG


휴천재를 날려버리겠다는 강풍이 문을 뒤흔들고, 코로나로 세상은 난리를 겪는 중이어서 염치없고 미안한 일이지만,  전태평씨 부부가 찾아와 점심을 같이 먹고 한담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은 따스하고 행복했다.


[크기변환]20200319_130557.jpg


[크기변환]20200319_14285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