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9일 월요일, 맑음


 먼 산엔 눈이, 창밖으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짓궂은 겨울에 마지막 선물이리라. 그렇게 기다려도 아니 내리더니 매화 꽃 만발하니 심술도 만발하여 날씨도 눈꽃으로 맞장을 뜨잔다, 누가 누가 더 예쁜가? 더구나 지난주 토요일에도 비가 온대서 임실에서 오시는 김원장님팀의 배나무 가지치기를 일주일 연기해서 이번 토요일(그제)로 정한 날이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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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진눈깨비 속에 행여 감기라도 걸리실까 임실로 전화를 했더니 그곳은 비가 오는데 눈이 내리면 오히려 낫다고 강행을 하자는 말씀. 전날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으니 날씨 탓으로 일을 못하더라도 이 코로나 난리속에 노인들이 지리산도 보고 식사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 나도 어서 오시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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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님의 부모님, 수십년 배나무밭을 해오신 집사님, 김원장님과 그 따님 지애 랑 다섯 손님이 10시 넘어 도착하셨다. 역시 갈고 닦은 세월이 공짜가 아니라 집사님이 노익장의 실력을 발휘하여 두세 시간에 후딱 끝내셨다. 사실 나무 손질은 전문가 집사님 혼자서 하고 나머지 셋은 견학을 겸해서 자른 가지 주워나르기로 일조를 한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내린 눈이 멀칭한 비닐위에 떨어지며 빗물이 되어 옷도 젖고 마음도 을씨년스러워질 무렵 배나무 전지작업은 끝났고 알맞게 그 시각에 식사 준비도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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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와 후식을 들고 그분들이 휴천재를 떠나시자 눈은 비로 바뀌었다. 그날로 전지작업을 안 했더라면 올 배농사는 적당히 그냥 넘어가려니 했는데... 배나무 주인 보스코의 각오가 대단하니 많이 열리면 함양 5일장에 좌판이라도 벌여야겠다.
 

부산을 탈출하여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난 체칠리아네 고양이 먹이를 주러 어제 오후 도정에 올라갔더니, 주인이 없어도, 코르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뒤집어져도, 그 뜰에 봄은 오고 화단에 수줍은 할미꽃이 오붓하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 고양이도 그릇에 담긴 먹이는 다 비우고 사냥을 갔는지 동냥을 갔는지 안 보인다. 모든 게 멈춘  진공의 평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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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늦게는 희정씨가 딸 주원이랑 휴천재를 찾아왔다. 막 대학에 입학한 소녀, 아니 풋풋한 소녀에서 숙녀 티가 나는 처녀를 보니 왜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알겠다. 내게도 저 나이 때가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아아,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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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텃밭 가장자리에 물길이 있어 채소농사는 안 되는 구석에 작은 이랑을 만들고 지난 해 먹다 남은 토란을 오늘 심었다. 작년에 뽑아 던진 가지와 고춧대를 모아다 감동마당에서 태웠다. 바람은 자고 어둠 혼자서 연기를 마시라고 산불관리인을 집으로 돌려보낼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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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절친 이기상 교수의 부인 은호 엄마가 떠난지 15년쯤 되었는데, 어제 밤에는 은호의 사랑스런 아내가 황천강을 건넜다는 부고가 떴다, 올해 서른여덟 나이로! 은호는 엄마 없이 긴 세월을 보내다 엄마 같은 아내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둘째는 제왕절개로)  그토록 행복한 시간을 가졌는데... 3년전 동생 현호의 결혼식에서 두 아이와 함께하는 은호네 부부의 단란한 모습을 보고 우리도 너무 기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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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큰며느리 두 번의 사별을 겪는 이교수, 한 남자의 가장 큰 사랑 엄마와 아내를 잃은 은호, 엄마 없이 남겨진 두 사내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네 남자를 남기고 떠나는 길이 한없이 힘들었을 미카엘라(효은)를 위해 엊저녁도 오늘 아침도 위령 성무일도를 바쳤다. 죽은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기도 말고 뭘까? 남은 이들에게도 생명의 주인의 손길 말고는 무슨 위안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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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오두막 저편에서 나타나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일은 없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언제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마지막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다음 장으로 넘기려고 한다.(아내 버지니아 울프를 잃은 레너드 울프). 은호의 퇴근길이면 아내가 아파트 문 앞에 서 있을 것 같은, 집에 들어가면 밝고 환한 모습으로 달려나올 것 같은 나날들이 얼마나 그를 힘들게 할까....
 

산 사람들의 땅에서 나는 이제 주님을 뵈옵지 못하겠고 이승에 사는 사람들도 아무도 못 보리라. 나의 생명은 목자들의 천막처럼 내게서 치워지고 갊아 들여져 베 짜는 사람처럼 짜고 있는 내 생활을 하느님은 베틀에서 잘라내시도다.”(이사야 38,11-12)는 탄식 속에 망자는 떠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에게 남겨진 기억의 짐을 지고 떠난 사람이 놓고 간 모든 삶을 견뎌내야 한다. 좋든 싫든 선택의 여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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