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4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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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과 비오기 전에 멀칭을 하자고 약속은 했는데 매실나무가 꽃핀 걸 시샘하는 바람이 마구 불어 가지가 꺾어지려 한다. 그래도 꽃봉오리들은 차마 엄마를 놓칠까 여린 손으로 가지를 움켜쥐고 힘겹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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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씨감자를 안 사서, 먹다 남은 감자를 심을까 들여다보니, 기아로 주름진 먼나라 아이들의 뱃가죽 같아 이게 감자 구실을 해서 싹을 틔울까?’ 걱정스러웠다. 어두운 상자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느라 감자 싹들이 가늘고 흰 팔을 상자 위까지 내뻗었다. 이대로 심을 수도 없고, 여리고 긴 싹을 따버리면 새싹이 다시 나오지 않는다 해서 망설였다.


농부원부가 있는 농민이면 가을에 씨감자 배급이 나온다. 그때 상자당 23천원이던 씨감자가 지금 시장에서 사려면 3만원도 더 줘야 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감자를 두어 상자 사먹고 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던 참에 거문굴댁이 우리 것보다는 좀 낫다며 자기네 싹 난 감자를 가져다 심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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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됐다 싶어 감자를 가지러 가는 길에 보니 우리 텃밭에 팔랑개비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중에 인규씨가 우리 이랑을 비닐 멀칭하고 있다. “시상에! 이 마파람에 고맙고로!” ‘우렁이각시는 들어봤지만 '우렁이 신랑'이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지리산 골짝 깊숙이에서 내 눈으로 우렁이 신랑을 보다니! 도메니카네 텃밭에 멀칭을 해주고 돌아가는 길에 심심해서 우리 밭도 멀칭을 했단다.


우리 밭 멀칭을 도우러 올라온 드물댁이 맥없이 돌아가기에 거문굴댁네에서 받아온 감자상자를 건네주며 씨감자 될 것을 골라서 칼질을 해 달라 보냈더니 얼마 안 되어 씨감자 상자를 들고 올라와 "동네 사람 다들 심었으니 우리도 어여 심자"며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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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람 불고 을씨년스런 날이면 일하기도 싫고 아랫목에 길게 몸을 누이고 재미난 소설이라도 읽는 게 내 로망이지만, 일손을 돕겠다는 드물댁의 성화에 밀려 가급적 바람을 등지고 앉아 멀칭에 구멍을 내면서 씨감자 하나씩을 박아 넣고 부드러운 흙을 덮어준다. “두꺼바, 두꺼바, 헌집 줄 게 새집 다오!” 낼모레가 경칩이니 주말에 비가 내리고 날이 좀 푹해지면 눈에 보이지도 않던 대지의 기운이 싹을 깨워 봄의 품에다 안겨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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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쯤 일이 끝나 드물댁한테 점심을 함께 하자니까 그동안은 보스코랑 내우 하느라 싫다더니 코로나 사변통에 사람이 고팠던지 순순히 따라 올라와 밥상에 앉는다.


오늘은 함양읍에 사는 로나따가 도메니카네 밭농사에 감자 심는 일을 도우려 왔다가 휴천재에 들러 차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다 갔다. 여자들은 짧은 시간에도 속생각을 깊이 나누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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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서 고딩 3학년짜리가 졸업 후 신학교를 간다고 본당 신부님이 교우들 앞에 내세워 인사를 시켰는데 이미 신부가 다된 표정이어서 되레 불안하더라는 얘기가 나오자 도메니카가 다독여 준다. "하느님이 쓰시기로 마음 잡수신다면야 쓰러뜨리고 깨트려 당신 사람을 만드실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라." 


한신대에 입학하던 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저는 일찍이 키에르케고르를 섭렵하고...” 라며 꼴갑을 떨었다 졸업하는 날까지 내 별명이 개골개골로 불리던 생각이 나서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그분 손에만 잡히면 누구든 사람 되는 일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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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에 뜬 TK 뉴스 한 토막은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http://www.hani.co.kr/arti/area/yeongnam/931302.html?_fr=mt2

경북도가 경산시에 있는 경북장학회 경북학숙을 코로나19 경증 확진자들의 생활치료센터로 쓰려다가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반면 광주시는 대구의 경증 확진자를 받아주며 의료인력과 마스크를 지원하는 등 두 팔을 걷어부치고 대구를 돕고 있다.”

 

경북학숙에 경산시 경상환자 수용에 반대하는 경산 봉화초등학교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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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경북의 전체 확진자 805명 가운데 347(43.1%)이 경산에서 나왔고 경북 신천지 신도 확진자 262명 가운데 135명이 경산에 살고 있다. 그리고 경산의 확진자 절반은 다른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저 멀리 광주사람들은 경북 환자들을 데려다 치료하는데 경산 사람들이 자기네 경산 환자들을 동네에 못 받겠다고 농성해서 기어이 관철시켰단다. 서거철이니 한 표가 아까워 그 정책을 철회한 경북지사도 그렇지만, 아아, 저런 글을 써붙이는 봉황초등학교 학부모 일동은 자녀들에게 대체 뭘 가르칠까?


경북에 의료인들을 파견했고 경상도 환자들을 환영한다는 광주시민들의 격려

[달빛동맹 = 달구벌(대구)+빛고을(광주)이 손잡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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