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일 화요일, 맑음
‘아래숯꾸지’(문하마을 옛이름) 집집의 텃밭과 동구밖에서 마스크를 한 할메들이 밭마다 한 고랑씩 타고앉아 감자 심을 채비를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방 100m 안에 인적이라곤 없는데도 마스크를 못 벗는다. 저 지겨운 바보상자 TV에 세뇌당해 뇌세포를 싹 갉아먹혔는지 이토록 건강하고 신선한 지리산 공기를 마다하다니! 아무튼 나마저 하지감자 심을 준비를 했다, 제 철이니까.
어제는 김장배추 심었던 이랑에서 비닐 멀칭을 치우고 20kg 거름 봉지를 날라다 골고루 뿌렸다. 두럭 만드는 일도 예전 같으면 보스코에게 괭이질을 시키겠지만 그의 심장이 그다지 안녕하지 못하여 나와 갑장인 이장에게 밭 좀 갈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텃밭에 트랙터가 들어오려면 양파 심은 이랑 한 구석을 뭉개야 하는데 실낱같은 몸체를 겨우내 버티다 날씨가 풀리자 이제 겨우 뿌리내려 기지개를 켜는 양파와 늦마늘 그리고 브로콜리 어린것을 밟아 버리는 짓을 차마 볼 수가 없다.
보스코는 밭에 기계농사를 하려면 '그런 것쯤'은 희생시키라지만, 농부에게는 그 여린 것들이 다 '내 새끼'. 타작 마당에서 나락 한 톨도 귀하고 튀어나간 콩 한 알도 덤불에서 기어이 찾아서 주워담는 까닭이 그래서다. ‘큰일을 위해 작은걸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실용주의 발상이고 이게 바로 자본주의 병폐라는 도메니카와 나의 지적에 보스코도 입을 다물었다, 물론 옮겨심는 일이 내 몫이기도 하지만.
트랙터로 갈아놓은 밭에 이랑을 내는 작업으로 일이 고돼서 퉁퉁부은 내 얼굴 사진을 보고 우리 딸들끼리 ‘휴천재 텃밭에 레미콘 두어 차 부어버리고 싶다’(농삿일 못하게, 말려도 할 테니까.)는 문자를 주고 받는다. '어무이'를 아끼는 마음이겠지만, 김원장님 말대로 ‘내손으로 농사 지어 식탁까지 올라온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손주 키우느라 사방이 망가져가는 친구를 둔 사람들도 손주 돌보는 고생을 미친짓이라고까지 하지만, 오늘도 우리 큰딸 엘리는 손녀 윤서가 “가끔씩 기발한 언사나 율동들로 웃음을 하사하는 통에” 손주 농사에 푹 빠져있다. 채소 농사든 자식 농사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밀이 숨어 있어서들 한다.
...
젖내 풀풀 풍기면서
선출된 적도 임명된 적도 없는
오로지 천부적인 권력만으로도
윤서는 저토록 막강하다.
유모차의 달콤한 권좌를 내려놓을 리 없다.(오명현 ‘권력론’: 손주이름은 바뀜)
아담은 삐툴빠툴 고랑을 만들고
하와는 이랑을 나란히 북돋고...
이장이 어제 밭을 갈고 간 뒤 오늘 보스코와 밭이랑 셋을 넷으로 만들었다. 길고 반듯하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우리 둘이 합쳐 6시간을 노동한 뒤에야 네 개의 이랑을 겨우 만들었는데, 아래 소담정에서는 인규씨가 관리기로 30분 안에 멋지게 끝내버린다. ‘그래, 해답은 관리기야!’ 소담정 도메니카와 합쳐 중고기계라도 공동구매할까 의기투합을 하고나서 관리기를 갖고 있는 희정씨와 연수씨에게 물으니 관리기를 부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일년에 몇 번 쓰려고 비바람에 녹슬어가는 꼴도 견뎌야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보스코가 기계 구입을 말린다. '관리기 운전이 왜 힘들다는 걸까? 나는 여자이지만 남자가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고, 남자가 못하는 일도 하나 더 할 수 있는데?' “여보, 당신 애 낳을 수 있어?” “아니. 못 낳아!” “나는 낳을 수 있는데...”
관리기 한 번 돌리면 저렇게 가꿔지는데...
‘코로나19’ 확산주범으로 꼽힌 신천지 교주가 사과를 한답시고 큰 절을 했는데 손목에 큼직한 시계를 차고 나와서 “나 박근혜한테 금시계 받은 사람!”을 과시했단다. 심지어 박정권에서 훈장을 받아서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도 있다는 뉴스까지! (보훈처가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사실인가 보다.) 저 시계 하나로 그 동네 선거여론은 그 새 “만희가 남이가?!”(1993년 대선 때 영남인들을 똘똘 뭉치게 만든 “삼이가 남이가?”처럼)로 쏠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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