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9일 수요일, 맑음


어제 함신부님 댁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보스코는 신부님과 나눌 이야기가 있는 듯해서 나는 혼자 남겨졌는데 신부님댁 도우미 아줌마가 말을 붙여온다어딘가 어수룩하고 순박한 모습에다 손님이라고 나를 경계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아 나도 편했다일하던 손을 멈추고 자기가 왜 지금 이 자리까지 와 있는지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가까이 앉았다. 여자들은 (극소수를 빼고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 짧은 시간에도 한 사람의 일생이 두루마리로 펼쳐졌다가 그 속도로 도로 말리곤 한다.


서울집에서 건너다보는 삼각산의 눈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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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고향은 양구(우리 작은아들이 군대생활 했던 2사단이 있는 곳이어서 내가 아는 지명이다). 어려서는 농사짓느라 힘들었고 시집가서는 고향을 멀리 떠나 부산에서 살았단다. 느닷없이 남편이, 서울 청계천으로 기계자수 구경을 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서는 순간, ‘그가 열고나간 문으로불행이 들어오더란다. 구경만 하겠다던 남편이, 빚을 얻어 덜컥 자수 기계 사들이는 계약을 하고서 막 일을 시작 하려는 참에 IMF가 터지더란다. 부도가 나고 빚더미에 앉자 부산 생활을 접고 단칸 월세방을 얻어 서울로 이사를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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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가락시장에서 막일을 하고 자기는 파출부로 죽도록 일만 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나간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는데, 남편은 이미 경찰병원에 심장마비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더란다. 그때의 심경을 어쩌다보니 과부가 되어 있더라.’는 한 마디로 간추리는데 그때 나이가 쉰한 살. ‘한참 재미지게 살 나이였는데...’ 그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한 마디.


저는 그때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와야 했어요...’ 그래도 성당은 열심히 다녔는데 한 자매가 신부님댁 밥 좀 해 드려보겠냐?’ 했고, 이런 일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신부님이라면 착한 남자일 것 같아서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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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하나가 남편의 병수발로 한참 고생하다가 남편이 죽고 나니 이게 무슨 변고람?’ 하며 의미물음을 던지며 빵기엄마, 어쩌다 보니 내가 과부가 되어있더라구.’ 하면서 그 돌연하고 그 엄중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던 일이 생각난다. 남정들보다 수명이 길다보니 거의 모든 아낙이 겪어야 할 놀라움이요 외로움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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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서울신문 기자가 보스코를 찾아와 "이 사람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두세 시간 회견을 하고 갔다. 어떻게 풀어쓸지 모르겠지만, 보스코는 기자가 묻는대로 허심탄회하게 자기 삶의 궤적을 얘기하고, 전직대사로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사회교리'를 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중을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듣자니 영화 '두 교황'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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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태백올케가 잘못 보낸 화장품이 우리집으로 오더니 오늘은 또 양파즙이 잘못 왔다. 올케는 '그냥 바르고 그냥 먹어요'라고 하지만, 남의 실수에 염치없는 횡재를 보는 일 같아 오빠한테 가져가라고 전화했더니 오늘 저녁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밥과 국을 데워놓고 막 숟갈을 들다 네 전화를 받고 바로 올라 왔다."는 말에 '오빠가 정말사람이 고프구나!' 싶었다.


오빠도 곧장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혼자 지내는 사람들 특징 하나가, 모처럼 사람을 만나면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얘기를 멈출 줄을 모른다. 보스코는 워낙 말수가 없어 저런 얘기를 다 받아내느라 물 그릇이 모자란다


오빠는 금요일이 그렇게나 기다려진단다. 금요일 오후에 태백으로 내려가면 주말을 혼자 보내던 궁상이 온 데 간 데 없고, 입고 내려간 옷도 주말이면 깨끗이 세탁되어 새옷을 입고 올라온다나! 한 여자가 한 사내의 궁상맞은 삶을 건사해주는 손길과 언 가슴을 녹여주는 온기를 남자는 저렇게 서툴게 표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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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병원균을 신천지 교회에 마구 뿌려 슈퍼전파'란 명칭을 얻은 여자 얘기를 뉴스에서 접하며 "오빠,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저런 종교들이 존재할까?" 물었다. 우리 민족이 워낙 종교심이 강해 백백교’, ‘통일교’, ‘신앙촌’, ‘영생교’, ‘천부교’, ‘신천지’, ‘만민중앙같은 집단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흥하는 것일까? 하는 내 푸념에 오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한 자락


우리 어렸을 적 속병으로 한 시간이 멀다하고 화장실을 가던 아버지가 신앙촌 박태선 장로'의 안수를 받고 그 병이 씻은듯 낫는 장면을 목격했노라며 귀신들 얘기라고 얕보지 말라!’는 오빠의 한 마디. 요즘 같은 선거철이면 점집에, 안수집에, 미사예물 용하다는 수녀원 접수실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허망한 기대에 뻘짓을 다하는 것도 같은 현상아닐까? 만사를 주재하시는 분이 내려다 보시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우매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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