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3일 목요일, 맑음


이스라엘을 다녀오신 뒤 성탄과 설에도 대모님께 인사를 못 드려 찾아뵈려고 집을 나섰다. 더구나 우리 딸 오드리[될 뻔]’이 살레시오 수도회가 겪는 매스컴상의 고난 때문에 고군분투하는데 밥이라도 사주고 격려해 주기로 마음먹은 날이라 대모님도 함께 모시면 좋을 것 같아 인천으로 달렸다, 빗속을 헤치며... 우리 큰딸 인천대모'(代母: 천주교식 칭호라기보다 교구에서도, 대사회투쟁에서도 그미 역할이 코폴라 감독의 영화를 떠올린다) 이엘리더러 좋은 식당을 찾아 같이 만나자 했더니 손녀딸 윤서랑 합작으로 점심을 준비하겠단다. ‘코로나19’ 사태에 애기 데리고 나오기도 힘들었던지 자기 집에서 그냥 먹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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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대접하는데 기본이 되어 있는 게 우리 가문의 전통이다. 손님들 몸보신 시켜 주려고 이엘리가 손녀 윤서에게 '용봉탕 만들게 거북이 잡아와라!'라고 했더니 아장아장 걸어가 자석낚시로 거북이를 낚아왔다. 거북이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낚시터로 돌려보냈지만 기저귀를 흔들며 춤추는 윤서-강태공의 귀염에 한바탕 터진 웃음은 보약 이상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남았다.


수녀님이나 오드리는 손주를 키워본 일이 없고, 나 역시 아들 손주만 보아온 처지라, 손녀딸을 키우는 이엘리는 아기의 재롱에 거의 실신할 지경이다. 3월 말이면 유아원에 가느라 제 집으로 돌아간다는데 그 빈 자리를 엘리가 어떻게 채울지 우리마저 걱정이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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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는 속에서 나는 열불이 얼굴과 입술로 터져 나와 감기균이 온통 할퀴고 간 형국. 불의하다고 생각 할 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던지는 그녀가 대단해 보인다(그래서 일명 대추방망이’). 이태석 신부님 전기를 집필하고 있는 분이 올여름 현지 취재차 남수단을 가는데, 자기도 돈 내서 다시 한 번 남수단을 가겠단다. ‘거기가 그렇게 좋아?’ 물으니 그곳 사람들 가난과 아픔이 혹시 내 맘에서 잊힐까봐!’란다.


보스코는 오늘 아침 10시에 공안과에 도착하여 11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40여분 만에 나왔다. 내 딸들이 '아부이' 수술 잘 되라고 돌아가며 연도를 바치자는 문자가 떴다. “산 사람 위해 무슨 연도(燃禱)람?”하고 알아봤더니 엄엘리는 환희의 신비, 오드리는 빛의 신비, 이엘리는 고통의 신비, 그리고 나더러는 영광의 신비로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연도(連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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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원 가는 전철에서 보스코를 위해 드리는 내 기도가 간절했다. 사람의 오관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9할이라지만 보스코에게 눈은 내 눈과는 또 다른 차원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누구나 받는 백내장 수술이고, 돌아오는 길 우리 동네 다리께 싸전 아줌마가 우릴 보고서 하던 말대로, '그건 수술도 아녀! 하룻밤 자고 나면 다 나아버려!'라는 말이 맞지만, 그가 읽고 쓰고 특히 하루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는 교부 번역은, 우리 딸들 말마따나 한국가톨릭교회의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겁 많은 보스코는 수술이라면 벌벌 떨어, 나도 의리상 걱정을 나누는 동무가 되어 병원엘 함께 갔다. 수술이 끝나고 소파에 너부러져 있는 보스코에게 비슷한 시각에 수술하고 나온 아줌마의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투약할 약을 묻는다. 그 아줌마는 눈만 껌벅이는 보스코가 못 미더웠던지 자기 남편을 잡아끌며 '뭘 묻노! 저 아재 암것두 몰라!' 


맞긴 맞는 말이지만 딴 아낙마저 보스코를 멍청하게 보는 게 화가 나서 내가 한 마디 하려니까 '맞는 말인데 뭘 그래!‘라고 날 말린다. 아침을 금식한 뒤라 병원이 준 두유와 내가 싸간 찹쌀떡을 맛있게 먹는 보스코를 한참 지켜보던 그 아줌마의 눈길이 심술맞아 '여보, 저 할메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나봐.' 했더니 천연덕스럽게 ', 맞아. 나 바보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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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어제  연안부두에서 사 온 광어회와 전복으로 점심을 두둑하게 먹고서 한 잠  잘 자고 난 보스코, 안대를 낀 새 눈이 너무 잘 보인다고 좋아한다. 우리 바보 남편 이젠 글자와 일상을 똑똑히 보고 똑똑해질 일만 남았다. '글자'는 그럴 듯하지만 '일상'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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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 시력이 요로콤 밝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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