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1일 화요일, 맑음


작년 조국 사태때부터 좀처럼 켜지 않던 TV를 모처럼 켰다. 그것도 한 번도 틀어본 일 없던 'TV조선'! 예술계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말린 오징어 다리 씹듯, 게거품을 물고 씹어대던 인간들이, 그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 하나를 지금까지 늘 흠모해온 영웅인 양 커다란 목소리로 찬탄을 하는 작태라니! 너무나 가소롭다


한겨레 그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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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보았나요?”라는 기자들 질문에 좌파영화라는 딱지를 붙이며 우린 그딴 영화 안 봐!”라던 사람들, 바로 그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한국당도 축하 논평을 냈다니... 세상이 거꾸로 된 것이 아니고 이제야 세상이 바로 잡혀 가는 중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연달아 불러대는 '봉준호!'에 얼마나 신나게 박수를 쳤던지! 양키들만의 축제라고 거들먹거려 한번도 관심 두지 않았는데 혹시나’, ‘행여나하며 기다리던 끝에 너무나 기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뒤숭숭했는데, 어제 아카데미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4관왕이 되고 나니 저런 병쯤이야 쉽게 이겨내리라는 자신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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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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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돌 때에, 세월호가 침몰할 때에 청와대는 재난사령탑이 아니오!”라고 큰소리치고 그 점을 대서특필하여 주입시키던 보수언론이 지금, 질병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현정부에 “다 문재인 탓!”(특히 식당과 상가에 사람이 없어 '한국경제가 폭망하고 있다!'면서)이라는 고함을 4월총선 유권자들 귀에 박아주느라 혈안이 된 형국은 또 어떻고!


오마이뉴스에서 뉴스게릴라상을 수상했다는 책 다락방 미술관을 읽었다. 올해 우리 느티나무 독서회에서 읽는 책들은 제목이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책이 많다. 대학 때부터 전문적으로 미술평론을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미술을 감상하고 미술서적을 탐독하고 인문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익힌, 그림에 대한 해설을 쓴 작가 문하연은 딱 내 수준에 맞게 그림을 보고 감상하도록 안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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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살며 손님이 오면 허구한 날 뱀사골이나 노고단엘 안내하듯, 로마에 살 때(전부 13)는 허구한 날 바티칸 박물관과 숱한 미술관엘 갔었다. 책에서 읽은 것 외에 그림을 설명할 재주도 안목도 없이 보낸 시절이, 이 책을 읽다보니, 너무 아까웠다.


'오페라 극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을 그린 미국인 화가 메리 카사트는 파리의 어느 화랑 창문에 전시된 드가의 파스텔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못 잊는단다. “나는 내 코가 납작해질 정도로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그의 작품에 열중했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예술을 보았고 곧 나는 내가 본 것을 원하게 되었다.” 어떤 그림을 보고 마치 처녀가 총각에게 빠져 인생이 바뀌듯 그렇게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게 예술의 힘이다. 이렇게 책에서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게 책의 힘이기도 하다.


월요일, 보스코를 '데리고' 공안과에 다녀오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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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목요일 아침에 보스코가 오른쪽 눈을 마저 수술 받는데 수술을 준비하는 약을 먹이고 안약 넣는 일을 하나하나 내가 챙겨야 한다. 내가 백내장 수술하던 날은 혼자 가서 수술하고 안대를 한 채로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왜 남자들은 그게 안 될까? 급성 맹장염 수술도 혼자 가서 진단받고 입원하고 했는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0646


어느 병원을 가 봐도 여자는 혼자서 오고 남자는 아내가 따라다니며 병세를 의사에게 설명하고 계산을 하고 약을 타오고, 집에 와서는 투약시간을 일일이 일러주거나 약봉지를 들려줘야 하는 까닭이 뭘까? 엊그제 김인국 신부님 상가에 가서도 입고 간 코트는 그냥 두고 나오고, 자기 신을 어디다 벗었나 기억이 없고(보다 못한 김신부님이 내 귀에 살짝 '늘 함께 모시고 다니셔야겠네요.'라고 했다), 청주에서 한참 돌아오다 조의금은 냈어요?’ 물으니 그제사 윗주머니를 뒤지며 '까맣게 잊었어!'라는 남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빵고신부에게 전화해 내일 아침 홍말가리타 여사를 위해 위령미사를 드려다오!’라는 말로 퉁쳐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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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 나이에 아직도 글을 쓰고(예컨대 오늘 올린 '다산포럼' ) 강연을 다니고 번역을 하고 책을 펴내니 그냥 봐줘야 할까 여자의 '멀티 풍션'에 비해 남자는 정말 '모노'로 태어나는 걸까? 

http://www.edasan.org/sub03/board02_list.html?bid=b33&page=&ptype=view&idx=7542 


내 스승이시고 한국신학계(민중신학)의 석학 안병무 박사님도 학문 분야 외의 실생활에는 보스코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분이었다.4년 내내 가르치신 학생들마저 안교수님이 쳐다보시면 자기 이름부터 대야 했다그러고 보니 그때 그 선생님들 모두 떠나시고 나 역시 그때 그 분들 나이 보다 더 됐다. 시간은 우리를 이렇게 소리도 없이 먼 길까지 데리고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