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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11일(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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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조너던 프라이스와 앤서니 홉킨스 두 영국 배우가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가 "'빙의'라도 한 듯한 완벽한 연기"를 보인 영화 「두 교황」이 유럽에서도 국내에서도 상당수 관객을 불러들이는 중인데 2003~2007년 바티칸에 대사로 근무한 필자가 보고 느낀 바가 화면에 그대로 재현돼 감회가 깊었다. 특히 주연배우 프라이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뽑히고 나서 그의 '말씀'들을 귀담아 들어왔어요. '차카게 살자!'는,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니고 국제정의와 환경문제, 크리스천들이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실상 배금주의자들임을 신랄하게 경고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서도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하던 말에 공감이 갔다.

 

  역사상 어느 한 인물을 두고 주간지(週刊誌)가 발행되는 전례는 없었는데 이탈리아에서만도 「일 미오 파파(Il Mio Papa): '나의 교황'」이라는, 120면짜리 주간지가 가판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현상은, 2013년 3월 13일, 세계인들이 바티칸 시스티나 굴뚝에서 흰 연기를 기다렸듯이, 종교를 가졌든 안 가졌든 일반인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의 음성이 어디서 울려오나 두리번거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의 집권을 히틀러의 등장으로 비유하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is)'는 나이 팔순에 교황이 된 지 4주년을 맞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터뷰를 가졌다. 트럼프가 취임하던 무렵 2017년 1월 22일이니 3년 전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포퓰리즘 정권들이 타인종 공포와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 현상을 우려하시는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교황은 즉각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경제위기는 경각심과 공포를 조장합니다. 내 견해로 유럽 포퓰리즘의 가장 뚜렷한 예는 1930년대 독일입니다. 독일은 붕괴되었고 그 자존심을 되찾아줄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아돌프 히틀러라는 젊은이가 '내가 해내겠소!'라고 나섰습니다."

   "그럼 바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을 인수하는 이 시점에 성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는 물음에는 "성급하게 예언자 행세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지켜보십시오. 머잖아 보일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우린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자존심을 돌려줄 구세주를 찾는다면서 장벽을 쌓고 전깃줄을 두르고 다른 국민을 마치 우리 자존심을 훔쳐갈 사람으로 간주할 만큼(트럼프의 첫 권력 행사가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쌓으라는 명령이었다). 1933년의 독일은 국민의 자존감을 되찾아줄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물색했는데 그자는 그들의 자존심을 비틀어놓았고 그 뒤 무슨 사태(제2차세계대전)가 발생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시작하여 열 번 넘게 반복한,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라는 말이 맘에 걸린다.

 

 며칠 전 미상원의 탄핵부결로 기고만장하게 쌍권총을 차고 나온 카우보이가 제일 먼저 저지른 만행이 '환경정책뒤집기'였다. 그동안 멕시코 국경에 담벽쌓기,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란핵협정' 탈퇴, 팔레스타인 사태의 핵심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확정해버린 횡포에서 프란치스코의 예언은 적중했다.

 

   북한과의 싱가포르 협정을 헌신짝처럼 묵살해버리고서는 한국 정부에 몇 배의 미군 주둔비를 강요하면서 보라는 듯이 드론을 띄워 이란 최고사령관을 폭살하고 트위터로 띄운 트럼프의 오만한 협박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정의(正義)라는 것은 기실 "강자는 원대로 하고 약자는 당할 대로 당할뿐"이라던 조롱을 연상시키지만, 교황은 마친 4월 총선을 앞둔 우리 국민에게 건네듯 이렇게 매듭을 짓는다. "저 때도 모든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투표했지요. 히틀러가 정권을 찬탈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결정했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나는 여기에 희망을 걸고 지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