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9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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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양에서 서울로 올라 온 것은 몇몇 만남 때문이고 보스코의 오른눈 백내장 수술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옆 대사관에서 수에렙 대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두 교황" 얘기를 나누다, 내가 자리를 물러나오자 보스코는 무슨 얘기를 더 나누고...


집에 도착해서는 보스코의 희끄무레한  머리에 염색을 해주었더니만 엄청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 동네 최의원에 들러 주사를 맞혀야 했다. 오후 늦게는 우이동 명상의 집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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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발치에 살면서도 천왕봉으로 남쪽과 북쪽 멀리 떨어져 만나기가 힘들었던 전종훈 신부님을 서울에서 만났다. 우이성당 교우 일부가 신부님의 서품 30주년을 축하해 마련한 자리였다. "서품 25주년은 누구나 축하식을 갖지만, 30주년 축하식이라면 염치없는 땡중이라고 내 입으로 욕했을 텐데 바로 내가 그 땡중이 되었노라"며 쑥스러워 하신다. 전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계실 때 인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우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서 나름대로 신부님과 하느님의 뜨거운 관계에 엮었던 일을 기억하며 오늘의 만남을 감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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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런 아들의 죽음으로 미칠 것 같은 가족에게 신부님이 저녁마다 찾아오셔서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위로해 주셨던 교우는, 그 치유의 시간과 그리운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신부님에게 고마워했다. 한 할머니는 남편의 암투병과 장례식, 100일 미사 때 모든 불편을 당신 일처럼 다 받아 주셨다고 내게 조용히 얘기해 주었다. 급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방황 중에 받았던 신부님의 위로와 도움을 잊을 수 없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신부님이 이사가시면서 봉고차 하나로 살림을 옮겨가시고, 뒤이어 도착한 후임신부님은 살림이 탑장트럭 세 대여서 다시 한번 전신부님께 고개를 숙였다는 교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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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멀쩡하고 건강해 보이는 모두가 각기 자신만의 영적 정신적 심리적 아픔을 안고서 죽을 만큼 힘들었던 과정에서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치유해 주셨던 전신부님을 잊을 수 없는 분들이 모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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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에 뒤이어 식사를 함께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금도 많은 아픔을 속으로 속으로만 삭이고 있을 살레시안들을 위해 기도했다. 외국에 산다는 어떤 여자는 '방송내용은 어쩌면 그렇게 철저히 믿으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왜 절대 안 믿을까?' 의문스러워 번민한다고 글을 보내왔다. '속을 다 뒤집어 보여줄 수 없어서' 마냥 침묵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그와 달리 저렇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는 언행 자체가, 거짓에 완고하게 매달리는 마음 자체가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고 불리는 까닭을 알 텐데... 언젠가 자신이 내뱉은 말이 하느님도 스스로도 결코 용서 못할 죄임을 두고두고 후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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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나와 결혼하면서 시작한 생업이 번역이었다. 80이 다 된 이 나이에도 번역은 그에게 놀이요 재미요 필생의 과업이다. 젊은 나이에 아내, 커가는 두 아이를 보며 가장으로서 짊어지던 인생의 짐이 무던히 힘겨웠던지 외국에 나가 학위까지 마친 젊은 박사들이 10년이 넘도록 시간강사로, 번역자로 생활하는 모습을 늘 안타까워했다. 그의 머리엔 어떻하면 그들을 도울까 숙제로 가득하다


오늘 후진 학자 둘이서 집을 찾아왔다. 나야 밥을 해먹이고 차와 간식으로 함께하는 재주밖에 없어 오늘도 밥상을 차리며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한 인재들이 안정된 자리를 찾고 당당하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이 보장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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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배추머리김인국 신부님의 모친이 돌아가셔서 청주 성모병원으로 문상을 갔다. 모친 홍말가리따 할머니는 86세로, 오랜 고생 안 하시고 3개월간 병상에 계시다가 하느님께 가셨다니 복이 많은 분이다. 더구나 8남매 중 두 분의 사제, 두 분의 수녀를 두셨으니 자녀분 절반을 하느님께 내어놓으신 셈이다. (나도 두 아들 중 하나를 내놓았으니 반은 반인데, 같은 반은 아니란다) 남아공에서 선교하는 넷째 아들 신부님, 파푸아 뉴기니에서 선교사로 계신 수녀님은 어제 막 도착하여 장례가 그만 5일장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도 문상을 갈 수 있었다


'하느님의 사람'(주로 '예언자'에게 쓰이는 칭호란다)으로서 김신부님이 사제단 단장으로서 해오신 예언자다운 활약이라든가 경향, 한겨레에 쓰시는 글에 나는 늘 존경심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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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부님을 보살펴 드리는 큰누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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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하고 상가에서 그 성모병원장 반신부님, 대안학교 양업고등학교 교장 장신부님을 만났다. 양업고등학교는 내가 좋아하는 윤신부님이 한때 교장을 하셨기에 더 친근감이 갔다. 장신부님은 대안학교를 하는 분이라 이번 살레시오 사건에서 상처 입은 청소년들을 선한 어른들이 손잡아 주면 어떻게 피어날 수 있는지, 그점에서 살레시안들의 그간의 노고를 너무잘 알고 있기에 언론의 거짓된 횡포를  마음 아파하셨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고생하는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작은아들에게도 오늘은 깊은 잠을 주시도록 보름달 올려다 보며 밤차를 달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어서 진실이 밝혀지고 이 광풍이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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