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6일 목요일, 맑음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안노인들은 화투놀이로 10원짜리 고스톱 판도 벌리고, 이런 어르신들을 자손들이 찾아오면서 밀감이랑 셈베랑 커피랑 간식꺼리도 끊이지 않는다.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하던 할메들도 겨울 한철 지나면 농사일로 까맣에 타버린 얼굴이 뽀얘지고 비쩍 마른 몸매도 통통 살이 오른다.
부엌이 딸린 방은 할메들이 가득히 둘러앉고 화투를 안 치는 사람들은 훈수를 하던지 그것도 안 하는 사람들은 2리터 플라스틱 물병을 하나씩 베고 누워 몸을 지진다. 면에서 쌀도 나오고 기름도 나오니 방은 자글자글 끓고 밥솥엔 늘 밥이 가득하다.
사진작가 조하성봉씨가 보내준 겨울지리산
건너 방은 남정들 방으로 몇 년 전까지는 담배로 찌든 냄새가 풍겼는데 암에 걸린 아저씨들이 한둘 생기면서 거의 담배를 끊거나 나머지 한두 명도 마당에 나가서 담배를 태운다. 어느 새 임실 양반은 앞산으로 가서 눕고, 덕산양반은 요양병원으로, ‘학교앞 아재’는 암병동으로 떠나고 보니 서넛 남은 남정들은 아예 마을회관 나들이를 안 한다. 치맷기로 시도 때도 없이 역정을 내는 유영감의 말을 받아주기가 성가셨을지도 모른다.
밤늦은 시간 당산나무 밑 긴의자가 제법 차가운데, 얇은 점퍼를 걸치고 유영감이 앉아 있었다. 마을회관 열린 문으로 드나드는 할메들의 기척이나 가끔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전부인데, 그렇게 멀리 앉아서라도 사람냄새를 맡고 사람 소리를 듣고 싶었나보다. 그집 할메가 죽은 지 벌써 여러 해니 혼자 지내는 시간을 견디기에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사람의 체온은 얼마나 그리울까?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도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그래도 자기의 외로움을 들킨 게 쑥스러웠는지 “테레비 보는 것도 지겨워!” 하신다. 다가가 어깨를 가만히 쓸어드렸다. 늙으면 외로워지고 혼자면 견디기가 더욱더 힘든 인생이다. 그래도 여자들은 잘 적응하는데, 남자의 수명이 여자보다 짧아 더 일찍 죽는 건 다 하늘의 안배다. 영감들 치맷기를 뒤치다꺼리하고 그들의 임종을 지켜보고서 앞 산, 옆 산, 뒷 산에 갖다 묻고서도 자기 앞을 가리며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을 하늘이 주셨다. 무릇 생명은 여자가 낳고 여자가 거둔다.
‘살레시오 사건’ 보도 이후 보스코는 말이 없다. 그는 정말 살레시안들에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랑과 은혜를 입으며 자랐기 때문에 돈보스코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고아로 버려진 4형제가 모두 살레시오 신부님들의 보살핌으로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지금의 그들이 되었다. 사랑은 체험이다.
나와 보스코가 최근 해마다 성탄절을 바로 그 대림동 청소년 6호처분시설에 가서 보낸 기억 만으로도 그 불우한 청소년들이 살레시안들의 사랑으로 얼마나 멋지게 젊음이 피어나는지 목격한 사람들이다. 처음 올 때는 어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증오와 불만에 차 있던 아이들이 그곳에서 반년쯤 지나면서는 노래부르고 춤추고 인사하고 실컷 소리지르며 떠드는 평범한 젊은이로 변한다. 오죽하면 그들에게 징역을 선고하는 판검사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이 젊은이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까지 할까?
'봄에 지는 낙엽들'이 되살아나는 성탄 정경 [2016.12.24]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8645
나 역시 결혼 초부터 살레시오 수도회 마신부님을 비롯하여 많은 살레시오 신부님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절을 다 이겨낼 수가 있었다. 그러니 그분들의 정성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악의적인 얘기만 들은 언론에서, 그것도 공중파에서 들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람들이 진실에, 진심에, 진리에 다가가는 노력을 조금만 더 하면 보일 것이다.
어른이라면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들이 거기서는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지른다
그곳 아이들과 춤을 추는 회색셔츠 주인공은 언론이 표적 삼은 원장신부님
보스코의 형제 말고도 살레시오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의 교육활동을 도와온 사람들이 살레시안들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되었다면서 고마워하며 살아간다. 가난하고 불쌍한 청소년들을 진심 사랑하고 돌본 사람들만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 “사랑만이 진실을 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 그대로다. 우리는 진실을 알면 사랑한다고 여기는데 저 현자는 사랑하면 진실을 알게 된다고 뒤집어 말했다.
이번 사태로 마음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특히 우리 딸 ‘대추방망이’의 분투하는 모습에 더욱 마음 아프다. 작은아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전화도 못하고 그저 주님께만 내 속 생각을 아뢴다. 걱정하는 큰아들의 전화를 받고 억울한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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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살레시오가 그럴리가 없는데?' 하고 놀란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견디어야 하는 수도회와 마음 깊이 연대하며 기도합니다. 야간교사를 잘못 채용하여 그 엄청난 책임까지 져야 하겠지만, 예수님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으니 그 고통에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수도회가 내적으로 더 정화되고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직격탄을 맞은 신부님, 수사님들, 또 모든 살레시안들의 상처가 하루빨리 잘 아물기를 기도합니다. 아무리 편향된 정보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