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8일 화요일, 흐리다 비


오전에 미리내 유무상통 효도병원에 계신 엄마한테 들려 동무해 드리고 오후에 지리산에 내려오려고 했는데, “최근 확산되는 '신종 코로나 폐렴'으로 인한 감염 우려로, 환자의 안전을 위해, 128일부터 당분간 모든 방문객의 병동 출입과 면회를 전면 금지합니니다는 문자가 왔다. 엄마한테 간다 해도 손 발 만져 드리고, 식사 떠먹여 드리고, 휠체어에 앉혀 1층부터 9층 복도를 오가는 게 전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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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보시기는 해도 그렇게 모시고 산보하는 걸 과연 좋아하실 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귀찮아하시는 표정이어서 어떻게 해드려야 하나 난감하기도 하다. 그래도 호천이는 매주 문병을 가서는 갔다 올 적마다 지금 사진과 작년에 엄마 모습을 찍은 사진을 함께 올리며 일 년 사이에 울 엄마 이렇게 망가졌다고 한탄을 한다.


오전에 서울집 뒷정리를 하고, 잔반으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서 집을 나섰다. 더럽던 차가 비까지 내려 늙기도 서러운데 더럽기까지 하실까싶어 세차를 하고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연휴 끝이라 상행선은 제법 차들이 많은데 하행선은 달리는데 거침이 없어 다른 때도 딱 요 정도의 차량 통행만 허가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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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두어 군데에서 조금 쉬고 계속 달려 다섯 시간 만에 휴천재에 도착했다참 멀기는 먼 거리다. 언제까지 이렇게 운전해서 오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 대진고속도로에 들어서며 왼쪽으로 벽처럼 둘러친 덕유산 자락에는 흰 눈이 제법 내렸다. 이탈리아 성탄케이크 '빤도로'(Pan d’oro)에 뿌려진 가루 설탕처럼 달콤하다. 인간들이 몰려 사는 세상엔 비마저 시커멓게 내렸는데, 신선이 사는 곳에선 비도 가루 설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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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이엘리가 세배를 하러 온다기에 한목사님 부부도 함께 오시라고 해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이엘리가 우리 집에 세배를 간다니까 엘리 가족들이 '요즘은 어른들이 애들 집에 가는 게 대세니 우리 집으로 오시라 하라'고 하더란다. 과연 지리산 아래숯꾸지만 봐도 부면장댁은 서울아들네로, 까밀라아줌마는 진주아들네로, 모니카네는 창원으로 간다. '시골 할마시들 일 없이 놀고 있으니 우리가 간다'고 많이들 설쇠러 아들네로들 간다. 그래도 설은 시골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명절 맛이 나는데, 열 시간 쯤 귀성길에서 몸살을 하더라도. 너무 쉽게 만나 너무 쉽게 헤어지는 듯해서 아쉽다. 아쉬운 게 없으면 소중한 것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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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 고명딸 미선이(우리 5남매가 낳은 여덟 가운데 딸은 하나뿐!)가 얼마 전 아현동에 제법 큰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갔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비싼 집에 사는 주인공이라는 오빠의 자랑대로, 오빠가 손녀 은율이도 볼 겸 간다기에 나도 가보겠다 했고, 호천네랑 호연이네도 부르자고 했다. 합천 시댁에 설쇠러 갔다 막 올라오는 여조카가 우리를 초대한 것은 친정식구들이어서 가능했지 시집식구들이었다면 뭐라고 궁시렁거려 부부싸움도 났을 법하다. 혼인생활에서도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기야 우리가 각오를 했어야 했다. 식탁에는 밥과 된장국 전 갈비찜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저렇게 살아왔으니 이렇게 큰 집을 빨리 장만했겠지싶어 기특하기만 했다. 나도 결혼 한지 4년반 만에 지금 사는, 우이동 집을 샀다. 얼마 안 있어 유학 가는 보스코를 따라 가족 모두가 함께 이탈리아에 갔는데 굶어 죽지 않고 잘만 살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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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부터 우리에게는 ‘꽁짜클럽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우리도 이 별명을 좋아한다. 누구든 지나는 말로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하면 기어이 놀러가서 며칠이고 마냥 얻어먹고 잠자고 구경하고 돌아오곤 하므로, 1997~1998년에 로마에서의 우리 안식년 생활을 잠깐 지켜본, 우리집 치과 주치의 곽선생이 붙여준 별명이다. 보스코만 해도 중1부터 박사까지 공짜 공부, 온 가족을 데리고 로마 공짜 유학, 외대와 서강대 교수직도 공짜에 마지막 관직마저도 전적으로 공짜였으니 그럴싸한 클럽이름이다. 하기야 우리 인생 전체가 출생부터 죽음까지 다 공짜이긴 하지만...


미선이네도 집은 마련됐지만 식기나 집안에 있어야 할 가구나 장식품 같은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어 고모인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 조카 워낙 알뜰한 깍쟁이여서 조금만 지나면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큰사고를 치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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