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5일 수요일 맑음


형부는 임플란트를 하다가 혀에 원인 모를 흰 반점을 발견하고 치과의사의 권유로 큰 병원을 찾았단다. 염려 했던 대로 설암이었다. 우리가 지리산에 내려와 주변마을에서 보스코와 비슷한 또래의 커플들을 만났고 우리보다 20년은 어린 미루가 중간에서 이분들의 모임을 엮어내는 일을 했다. 덕분에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있었고 걸어온 길과 지리상 거리가 제법 먼데도 자주 만나 정을 쌓아왔다.


[크기변환]20200115_123010.jpg


[크기변환]IMG_3519.JPG


[크기변환]1579083551245-0.jpg


그러다 보니 그중 하나가 아프다는 건 마치 내 일처럼 걱정스러웠는데, 워낙 초기여서 수술 후 경과도 좋았고, 형부 자신의 노력으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형부는 3년반 만에 다시 발병한 암 조각을 또 뜯어냈다. 본인의 충격도 컸겠지만 우리 모두 많은 걱정을 했다.


작년에 있었던 보스코의 심장질환 이후 우리 부부도 '모두에게 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은 공평하여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 '은빛나래단'(머리칼들이 백발이다) 8명중 3명이 올해로 79세이고 70넘는 사람도 둘이다. 고맙게도 모임을 주선하는 연락책 미루, 만날 적마다 SUV를 운전하는 운반책 이사야만 50대 막바지에 있다. 이제는 내가 먼저, 네가 먼저 하며 먼 길을 떠날 나이니 작은 일에도 가슴이 철렁 한다.


[크기변환]IMG_3468.JPG


[크기변환]IMG_3478.JPG


수술후 경과가 좋아 형부는 말도 잘 하고(그의 지인 하나가 별명이 '한 말씀만 하소서!'일만큼 말수가 없는데 반해 본인에게는 '한 말씀만 마소서!'라는 별명이 붙어 있노라고 자랑한다), 처음엔 물도 못 넘기다가 미음에서 죽으로 음식의 종류를 거치며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그 회복을 축하하고 형부를 격려하려 오늘은 형부네 집 가까운 남해 미조항에 있는 전복집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미조북항이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스스럼없는 대화로 서로를 북돋았다


[크기변환]1579083551245-1.jpg


형부는 지난 수술로 3년을 살았으니 이번 수술로 3년은 보장 받았다며 기뻐한다. 나에게 3년이란 시간이 남아있다면 그게 축복이라고 받아들여질까? 사르트르의 연인(사상 최초 계약결혼’을 한 부부)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인간의 불멸성과 유한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안은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묘사한다


어쩌다 불사약을 마시고 불멸성을 얻은, 카르모나의 군주 포스카가 700여년을 살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짓을 하며 서서히 부서져가는 모습을 그렸다. 시간적 한계가 없던 포스카는 인간적 조건 밖에서 삶의 유한성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론적으로는 고통스럽게 불멸성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이라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죽음에 붙여진 존재'(하이데거의 개념)로 살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정성스럽게 살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내게 하느님이 보너스로 3년을 더 주셨다.'고 고마워하고, 그것이 끝나면 죽을지 모른다고 슬퍼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내 인생의 끝날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며, 형부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봉재 언니가 힘이 좀 없어 보여 은근히 걱정이 됐지만 저렇게 가톨릭농민운동으로, 이타적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온 분이라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의 천사가 온다해도, 이승의 옷을 벗어 곱게 접어놓고 따라가리라. 두려움도  없이.


[크기변환]20200115_150424.jpg


[크기변환]1579083551245-2.jpg


[크기변환]20200115_141235.jpg


해질녘 지리산 깊은 산속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가 떠날 때도 이런 모습으로 편안히 가기를 바란다.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어 아침 체조를 하며 보스코가 내게 묻던 말이 생각나 쿡 웃었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중에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예쁠 것도 없고...' 구절 다음에 또 뭐가 없다고 했지?"라고 묻기에, 그 구절 뒤가 아니고 앞에 '아무렇지도 않고'가 붙었다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물이나 공기가 정말 탁하고 심하게 오염되어 문제되기 전에는 있는지도 모른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지만 그것들이 문제가 생기거나 없으면 바로 죽음이다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일수록 공기나 물처럼 소중하고, 다시 말하면 내 몸의 일부 같다는데서 시인의 글귀가 나왔으리라. 어제 일기에서 얘기한 단테의 아내 젬마가 대시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여인이었던 까닭을 이제 알 듯하다. 


[크기변환]IMG_3486.JPG


[크기변환]20200115_17104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