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일 일요일, 흐림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지 십년. 옛날에는 강과 산이 십년이면 바뀐다지만 이명박 이후엔 공룡처럼 무지막지한 장비들을 써서 몇 달 아니 며칠이면 산이 강이 되고 강이 호수도 된다. 이런 시대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건 인간이 타인에게 쏟은 진정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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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 뉴기니아 선교사로 갔던 (지금 관구장) 최원철 신부님은 추도사에서, 2010년에 고국에 휴가 왔다가 살아생전 투명 중이던 이태석 신부님과 얘기를 나누다 한국에 오니 선교지로 돌아가기 참 싫다. 형도 그러냐?’고 물으니 그렇게 아픈 중에도(대장암 말기) ‘그곳 아이들 눈망울이 너무 그리워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란다. ‘이 형은 정말 걔들을 사랑하고 있구나!’ 싶더란다. 30년 넘게 이어진 수단의 처참한 전화 속에서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질병 속에 버려진 하느님의 모상들, 그들을 섬기느라 마지막 떠날 때까지 혼신을 다해 사랑했던 한 사제의 마음을 그분이 돌아가신지 10주기를 맞는 오늘, 전국 각지에서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성당으로 모인 400여명이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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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 보좌 옥주교, 대전 유흥식 주교 세 분이 주례하고 살레시오 15명 사제들과 공동으로 집전하는 성대한 추도미사였다. 우리는 9시에 휴천재를 출발해서 11시 미사에 겨우 맞추어 학교에 도착하였다


무엇보다도 1997년과 98년  우리가 로마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사귀었던 이태석신부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리고 우리 둘째딸실비아가 수단어린이장학회를 본연 그대로 살레시오회와의 연대로 돌려놓는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자리여서 그미를 성원하러, 그리고 관구장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오는 우리 작은아들을 한 번 더 보는 보너스를 챙기러 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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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400여명 손님이 살레시오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그 많은 사람이 담양가톨릭공원묘지에 가서 이태석 신부님 묘 앞에서 연도(燃禱: 죽은 이를 위한 위령 기도)를 바치고 헤어졌다. ‘수단어린이장학회 제3대 이사장으로 소개되고 행사에 당당히 참석하여 동료들의 인사를 받는 우리 실비아가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연도 후 '둘째딸'은 인천으로 떠나고 작은아들은 동료회원들과  서울로 떠나고 우리 둘은 함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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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흩어지는 지방도로를 달려 지리산으로 돌아오며 새로 고친 소나타가 마치 새 차처럼 소리 없이 냄새 없이 달려주어 정비소 기사가 참 고마웠다. 지난 화요일에 차를 갖다 맡기고서 그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다. 내 차에 대한 자상한 설명과 어떻게 고치고, 얼마가 들까를 일러주는 품이 평소에 까칠하던 그답지 않았다. 차를 고치는 기술은 뛰어난데 언제나 퉁명스러운 한마디 한마디가 더는 묻기조차 힘들게 만들던 남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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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화는 모종의 부탁으로 이어졌다. 딸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돈 좀 꿔 달란다. 두 달만 쓰면 되니까 선이자를 떼고 달라는, 말하자면 2부 이자에 카드깡 하는 식이다. 전화를 다시 한 그에게 내게 돈이 있으면 새 차를 사지, 그 낡은 자동차를 매일 고쳐가며 쓰겠느냐?’,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딸이 대학 들어가는데 입학금이 모자라나?’ ‘애가 아파서 절박한 상황인가? 그렇담 땡빚을 내서라도 도와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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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차를 찾으러 간 길에 정비소 여주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기사님 딸한테 무슨 일 있어요?’ 그 한 마디에 아줌마는 펄쩍 뛰며 '또 돈 꿔 달라고 전화했구나! 착해 보이는 손님 전화번호만 알면 꼭 그런다니까. 딸은 무슨 딸, 애비가 무서워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도망가버렸는데? 오늘이 월급날인데 선 가불까지 다해가 1원도 받을 돈이 없어요 1원도!' 


무슨 사연으로 가정이 깨졌는지 모르지만 토요일 월급날에 1원도 받을 돈이 없다니 얼마나 견디기 힘든 주말일까 싶어 그 사람 주머니에 슬그머니 봉투를 하나 찔러 주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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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면서도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사랑스러워야 할 가족들이 각자가 품고 있는 가시로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또 입히면서 마치 독사떼’(프랑솨 모리악의 소설제목)처럼 엉켜있는지, 엊그제 다녀간 친구가 자기 보기엔 '열사람이면 열사람 다, 행복한 부부가 하나도 없더라!’던 탄식이 떠올랐다.


피 흘리는 전쟁터는 이태석 신부가 돌아가려다 못 가고 숨진 남수단만 아니고 어느 땅에도 있고,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 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만 아니고 인간이 어울리는 모든 곳에 있다. 인간을 지어내신 분의 눈길에는 우리 모두가 물질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얼마나 가난한 인생들인지, 그래서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어느 시인(정호승)의 글귀가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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