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일 수요일, 새벽엔 싸락눈 오후엔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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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네가 지리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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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네가 남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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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주가 스위스에서 보내온 새해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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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이 새해 선물로 싸락눈을 뿌려주셨다. 보스코 어깨에 내리는 눈송이가 조금씩 쌓일 쯤 우리는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마당 성모상의 물결치는 머리카락 위로도 싸락눈은 내리고 있었다. 성모님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내려다 보셨다. 성모송을 하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할 때마다 아지 못할 기쁨이 솟고, 저녁기도에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라는 대목에서는 거의 전율을 느끼곤 한다. ‘기뻐하라!’를 올 한 해 내 삶의 화두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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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의무 축일(성당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 날)로 정하여 새해를 미사로 맞이하는 건 의미가 크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는 구절도 대단하지만, 한 주간 전에 아기를 낳아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뉘인 나자렛 여자를 천주의 성모’(5세기에 만든 그리스말 신학용어로는 theotokos, ‘하느님을 낳은 여자’)라고 부르다니 그리스도교는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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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하느님을 낳다니! 나도 여자로서 하느님의 모상을 둘이나 낳았으니 하느님을 진짜로 낳든 하느님의 모상을 낳든, 어머니가 된 모든 여자는 천주의 성모라는 어마어마한 칭호에 끼일 만하지 않을까? 모든 인간에게 어머니는 아무리 못났어도 적어도 짝퉁 성모'(우리 집에 모셔진 중국 성모상에 우리가 외람되게 붙인 호칭이지만)는 되지 않겠는가?


어제 양주에서 만난 김화백이 들려준 일화도 그래서 나왔나보다. 어떤 구교우 집안에 기막히게 예쁜 따님이 있었는데, 모든 총각이 침을 흘렸지만 종교에서 걸려 결혼 문턱을 넘지 못했단다. 그러다 어느 뱃장 좋은 총각이 쳐들어왔단다. 장인어른 될 분에게 넙죽 절하고서 따님을 색시로 주시면 하늘처럼 모시고 살겠습니다.’ 큰소리를 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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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장인 될 분이 물었다. ‘우리는 순교자 집안으로 우리 사위가 되려면 필수 조건이 성당을 다녀야 하는데, 성당은 다니는가?’ 급한 길에 총각은 , 다닙니다.' 라고 우렁차게 대답했단다. '그래? 본명(세례명)이 뭔가?' 성당 사람들 끼리 이상한 서양이름으로 불리고 아가씨가 친구들에게 '마리아'라고 불리던 일이 생각나, ', 제 본명은 마리압니다!’라고 대답했단다. 그 대답에 영감님이 껄껄웃더니 '그래 내 딸 줌세.' 하더라나? 그래서 총각은 마리아라는 아리따운 색시를 얻었고 요셉이라는 훌륭한 가톨릭신자가 되어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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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늙은이가 조용히 정월 초하루를 보내기로 했는데, 두상이 서방님이 동서랑 오겠다고 한다. 보스코가 심장수술 후 콜레스테롤약과 심장약을 합쳐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는데 그 부작용인지 두드러기가 유난히 심해 약을 바꿔야겠다니까 집에 와서 보겠단다. 말하자면 의사가 왕진을 오는 길이다. 약에 대한 보스코의 의심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몰라도, 약을 줄이던지 빼던지 수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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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큰아들네가 없는 새해 밥상에 작은아들이 와 준다니 내게는 그 또한 고마워 점심 준비를 신나게 했다. 혼자 집에 있다는 옥련씨도 불렀다. 떡국을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동서가 말한다. ‘집에서 전화 받는 남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업되면 꼭 형님댁에 가자는 말이 나와요.’ 의사로서 날마다 하루종일 그렇게 늙고 아픈 사람들만 만나면서도 끝없이 맑고 순수한 서방님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빵고 신부와 비록 서너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나 역시 이렇게 행복한데, 마흔이 넘어 얻은 외아들 천주(天柱)’에게서 오로지 살아가는 이유를 얻는 옥련씨를 우리가 한참 놀리기도 했다(아들의 이름 때문에 옥련씨는 당당하게 천주의 모친’으로 불린다. 아들 이름이 '평화'여서 조광 교수 부인이 '평화의 모후'로 불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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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다 떠나자 보스코는 다시 책상 앞에 앉고 양력 정월 초하루엔 영화 한 프로 정도는 봐야 문화인일 것 같아 나 혼자서 극장에 가서 '겨울 왕국 2'를 보았다. 초딩도 아니고, 유아원생이나 보고서 영화 포스터에 나온 부속품이나 옷을 사달라고 조를 수준의 영화였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상상하고 보았는데 월트 디즈니의 만화도 별 볼 일 없었다.


모든 패친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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