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일 수요일, 맑음


엊그제 온 꼬마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더구나 그날 참석을 못한 엽이가 아들 현승이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사진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절로 난다. 이엘리가 까빡 죽어 아예 따라가서 키우는 손녀딸 윤서의 귀염이라니! 아아, 한두 해 전에는 세상에 없던 저 아기들을 빚어 세상에 보내시면서 하느님은 얼마나 커다란 행복을 부모에게 지참금으로 안겨 보내시는지! 그러니 당신 외아드님도 저렇게 귀여운 아기로 탄생시키신 하느님의 흐뭇한 '아빠 체험'도 알 법하다. 


오늘 성탄절 미사도 9시에 참석 했다. 네 살쯤 됨직한 여자아이가 성가책을 이리저리 뒤지며 노래를 찾는데, 문맹일 텐데도 선생님이 찾아준 페이지를 어찌나 열심히 들여다보며 노래를 옹알거리는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1577276600148-7.jpg

엽이 아들 현승이

1577276600148-0.jpg

이엘리 손녀 윤서의 분장 

1577276419486.jpg 

그제 온 예준이, 하준이, 다온이

IMG_2920.JPG


미사드리는 신부님도 아이의 그 모습을 보시고는 웃음이 빵 터지기 직전이다. 아이들에게는 미사가 내내 까불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축제다. “북치며 고를 타며 주님을 찬송하라!”는 시편 노래 그대론데 어른들 미사는 평소 얼마나 엄숙하다 못해 우울한가!


본당신부님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여 미사 후에 애들을 하나씩 안아주고 보내는데 지난 주일에는 한 놈이 까부느라 높이 튀어 올라 신부님 턱을 들이받아 입술을 터뜨렸다. 신부님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위로는 못해 드리고 내 속으로만 '뜨거운 사랑은 워낙 아프답니다.` 중얼거렸다


20191225_085553.jpg 


20191225_095802.jpg 


20191225_100500.jpg


20191225_100220.jpg


그런데 바로 그 녀석이 오늘 미사 중에도 끊임없이 부잡스럽고 애들을 집적거린다. 한신대학 4년 내내 ‘초동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을 하던 관록(그 교회에는 3 여인들의 자녀들이 많이 왔었다)이 몸에 배어 이 나이에도 근질거린다


옆에 앉은 보스코에게 귓속말로 여보, 저 신부님 상해범에게 미사 끝나고 한 마디 해야겠어. ', 생긴 것도 못생겨서는 하는 짓은 왜 그리 더 미운 짓만 골라하니?'” 보스코가 피식 웃고 마는데 바로 그 순간 걔보다 한살쯤 많아 보이는 형아가 걔한테 조용하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니 '아니면...' 하며 목을 따는 시늉을 해 보이자 걔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나는 그 광경에 그만 빵 터졌다. '그래 잘했다. 너 딱 내 맘에 든다.' 제대 앞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도 꼬물거리는 발가락으로 엄지척을 하신다미사 후 모든 어린이들이 동물모자가 달린 망토를 성탄선물로 받고서 서로 뒤집어써가며 한바탕 1층 로비에서 소란을 피운다. 나도 그걸 하나 얻어 쓰고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다


20191225_155237.jpg


성탄절인데도 혼자 있을 오빠에게(새언니는 태백에서 성탄절 찬양대 행사와 꽃배달에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을 보내고 있을 테고) 우이동 골짜기로 올라가 점심이나 함께하자고 전화했다. ‘태그끼아재여서 정치 얘기만 나오면 보스코가 대화를 꺼리는데 오빠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면서는 화제도 어투도 많이 달라졌다. 속에 묻어 두었던 얘기도 곧잘 꺼내고 쓸데없는 고집은 애써 피한다. 그나마 옛날식 '011' 폰을 쓰기 땜에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를 부지런히 퍼 나르는 짓은 못해서 다행이다. 요즘엔 정치적 이슈가 전혀 다른 사람끼리 한 공간에 몰아넣으면 그냥 지옥이다.


20191225_145439.jpg


그나마 오빠와 맘맞는 부분은 알뜰하게 아끼는 살림이다, 내가 한참 못 따라 가지만. 내 주변에는 미루처럼 우아하게 다도를 하는 친구도 있고, 최목사나 한목사처럼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얻기 위해 원두를 나의 몇 배쯤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런 우아미를 못 따라간다


한번은 아침 일찍 미루가 왔기에 내가 드립커피를 해준다며 같은 원두에 계속 물을 내렸다. 보다 못한 미루가 마님, 몇 번이나 내릴 생각이세요?’ 물었고 나는  껌정물 나올 때까지.’ 라고 대답하니 '!!!' 하던 그미의 표정. 이러지 말라고  만날 적마다 한목사가 공정무역 트립티 커피원두를 주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내 얘기에 오빠가 '그래 내 동생 맞군` 하며 얼마나 뿌듯해 하는지!


우리의 이 병적인 절약정신은 6, 70년대에 가난한 교육공무원의 교장 박봉에 다섯 아이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려는 엄마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서 기인했다. 그런데 이런 나한테서 나온 두 아들은 자신한테는 무척이나 아끼지만  남에게는 남김없이 내어주는 타입으로 컸다.


세상사와 무관하게 구름 위의 다락마을’(임보시인의 시집 이름)에서 살아가는 제 아빠도 닮아서겠다. 참, 하느님은 남녀 인간을 골고루 섞으시고 골고루 채쳐 만들어내시느라 일손이 바쁘시다.


두 아들에게 받은 성탄선물 '자랑질'

20191225_210357.jpg


20191224_23164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