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6일 금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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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멀리서도 아름답다


세 살부터 이탈리아에서 자란 빵고는 귀국하여 중학교에 들어가서 자율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게 고문이었다. 저기서는 혼자 무슨 놀이라도 하며 창의적으로 지내는데 익숙하게 교육받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주입식에다 일률적이고 잘못하면 그때마다 체벌이라는 폭력도 감수해야 하니 어쩌면 학교는 지옥 다음으로 가기 싫은 곳이었을 게다.


특히 방학만 되면 두 아들은 돌볼 생각도 않고 지리산으로 직행하는 엄마 아빠의 생활에 어떻게 적응할지 힘들었을 꺼다. 그래도 서울에 남아 스스로 생존을 책임지며 학교까지 다니기보다 차라리 우리를 따라 산 속에서 지내기를 선택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걔가 방학 한 달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도록 자유로이 놔두었지만 집에는 TV는 없고 핸드폰도 없고 친구도 없던 그 긴 날들이어서 걔로서는 책과 친해지는 숙명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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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서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장편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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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있을 때도 한국에서 가져간 책을 늘 읽어오던 터라 책읽기는 걔한테 어렵지 않았다. 중학교까지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장길산」 「녹두장군」 등 대하소설을 읽다가 마지막으로 혼불을 만난 빵고는 속편이 나오길 기다리며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소설을 읽어갔다. 나 역시 작은아들과 마주앉아 친구가 되어 혼불을 읽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전율하기도 하고, 그때 이후로 최명희 작가는 내게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최명희의 혼불 문학관이 지척인 이웃 동네 남원에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 별러 왔는데, 지난 전라도닷컴’ 7월호에 혼불 문학관 해설사 황영순님이 지면에 나왔다. 혼불 사랑과 자기 마을에 애정을 갖고 혼자서 지켜낸 서도역얘기며,심지어 손님들을 집으로 모셔다 가족처럼 대접한다는 그 밥상에 나도 초대받은 느낌이어서 꼭 그미도 만나보고 싶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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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교부학 학자들과 긴급 모임을 갖는다며 천안 오송역에 가야 했다. 그곳에서 ‘KTX 모임을 갖는데 목포에서 노성기 목포가톨릭대학 총장신부님, 대구에서 최원호 교수님, 서울에서 하성수 박사님에게 딱 중간 지점인 오송역에서 만난다기에 남원역에서 KTX 815분차를 태워주러 아침 일곱시에 휴천재를 나셨다.


그가 기차로 떠나고서 박물관 개관시간에 맞추어 역대합실에서 9시까지 책을 읽다가 드디어 찾아보고 싶던 혼불문학관엘 갔다. 5천여평 되는 부지에 조화로운 건물과 근처에 소설에 등장한 장소가 있어 하나하나 찾아보자니 매우 흥미로웠다. 금년 들어 제일 추운 날이라 관람자는 어떤 젊은이와 내가 전부여서 한가로이 자세하게 구경을 했다


문학관 안에 미니아쳐로 만들어 놓은 소설 혼불의 중요장면들, 최작가의 집필실, 취재수첩과 육필 원고, 만년필, 상패와 상장, 작가의 생애, 신문 스크랩 등 그미에 대한 궁금함에 하나하나가 다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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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를 지나던 기차역 서도역을 허물지 못하게 지켜냈다는 황여사(나와 동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미의 활동이 고마워 오늘은 내가 점심을 살 테니 나오라고. 마침 오늘이 김장하는 날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면서 전라도 김치 맛도 볼 겸 차라리 자기 집으로 오란다. 가는 길에 이 겨울바람을 혼자서 다 받아내는, 역사가 멈춘 자리 외로운 서도역을 찾아보았다. 추워선지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진 서도역은 유난히 더 슬프다. 관장님이 일러준 황여사 집은 문학관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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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이 나를 맞는 황여사와 남편의 모습에서 남원사람들의 인간미가 돋보인다. 김장은 두 여동생과 동서, 이웃아줌마가 함께해서 곧 끝났고 점심이 준비됐는데, 밥상에 반찬이 가득했지만 막 무쳐낸 겉절이만으로도 밥은 절로 넘어간다. 점심을 걸게 얻어먹고 염치없이 전라도김치와 전라도 양념도 얻어 함양 휴천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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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차지 않아 텃밭에 남겨둔 항암배추를 뽑아 절여서 그 양념에 비벼 김치를 담그려는데 마르타 아줌마가 죽을상이 되어 찾아왔다. 가슴과 등이 너무 답답하여 숨쉬기조차 힘들다며 병원 좀 데려다 달라는 호소였다. 좀처럼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아짐이라 급히 유림의 병원으로 실어갔다. 응급처치와 주사 몇 대로 안정을 되찾자 집으로 실어오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교부학 관련 회합을 마친 보스코는 때마침 대전교구 정하상교육관에서 피정지도를 마친 '셋째딸' 귀요미가 오송역까지 찾아가서 자기 차로 휴천재까지 배달을 완료했다. 무슨 복에 저 나이에 저렇게 여자들의 극진한 보호로 편히 오가며 살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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