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4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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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하봉이 백설로 덮였다! 겨울이다!


요세피나씨가 김장 전날부터 와서 배추 절이는 일부터 일손을 보태서 올해 김장이 한결 쉬웠다. 딸 주원이의 수능발표가 나는 날이라 심사가 복잡할 듯해서 희정씨에게는 오지 말랬는데, ‘이런 날일수록 부지런히 일을 해야 분심이 안 든다며 금년에도 작년처럼 도와주겠다니 무척 고마웠다.


그저께 아침,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불어 새벽시장 생선장수 아줌마처럼 칭칭 싸매고 오리궁둥이를 매달고 식칼을 들고 배추밭으로 내려갔다. 200여 포기를 심었지만 폭이 찬 배추는 열 폭이나 될까? '도대체 왜 올 농사가 이렇게 됐나?' '너네들 왜 이렇게 못 컸어?' '에게게, 이건 속이나 된장 찍어 먹어야겠네...' 계속 혼자서 구시렁거렸더니 옆에서 배추를 나르고 뿌리와 떡잎을 치우던 보스코가 "걔들도 나름 노력했을 텐데 어지간히 해 두시라." 한 마디 한다. 배추 권()을 수호하는데 앞장선 '배추주의자'(?)인가 보다. 150포기 정도 거두었더니 예년대로라면 50포기 정도 분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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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물가에서 배추 폭을 가르며 속이 덜 들었다고 한숨을 쉬니까 드물댁이 지켜보다 "요런 배차가 맛난기라요." 라며 위로한다.  사실 이렇게 자란 배추는 이듬해 가을까지도 물러지지 않고 싱싱하게 '딤채' 속에 남아 있다. 나는 간을 치고 드물댁은 반으로 갈라 주는데 금산에서 요세피나씨가 도착했다. (서울집 아래층 사는 구총각을 나한테 소개한 죄가 커서) 거들러 왔단다. 더구나 보스코가 홍삼차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소문이 나서 홍삼즙을 여러 상자나 들고 왔다. 그미가 선물해준 홍삼엑기스를 몇년 째 먹어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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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비닐봉지 일곱 개에 절인 배추를 나누어 담아 뒤집고 또 뒤집고 심지어 새벽 두시, 새벽 다섯 시에 다시 뒤집었다. 새벽밥을 먹고서 겨울장화에 털모자,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물이 잘 흘러내리는 비탈에 고무양푼 네 개를 나란히 깔고 배추씻기 작업을 시작했다. 지하 120미터에서 퍼 올리는 물이라 배추 씻는 손은 되레 따뜻했다. 예전엔 절인 배추 200폭을 휴천강까지 이고 가서 씻어 왔는데 지금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철철 나오니 '이런 김장은 일도 아니다' 라는 드물댁의 격려.


점심을 먹고나서 배추속을 비비기 시작하여 끝내고 나니 오후 다섯 시! 내일부터 추워진다지만 이젠 근심 걱정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비록 고생스럽지만 해마다 사흘간의 극기훈련 셈치고 김장은 해 볼 만하다. 보내줄 김장독을 반길 지인들 얼굴만 생각해도 흐뭇하고, 우리 엄마들의 세대에서도 그랬지만 김장을 하고나면 겨울채비는 다 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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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편했지만 몸이 고달팠는지 어젯밤 뒤숭숭한 꿈자리. 장소는 서울이었는데 우이동 같은 단층집 꼬방동네가 아니었고,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이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경쟁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같은 번화가였다. 갑자기 나타난 미국의 폭격기가 서울에 핵폭탄을 투하하자 그 광채에 눈이 멀까 봐 보스코더러 '얼굴 돌려요!' 소리치고 함께 도망쳤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보스코가 보이지를 않았다. 핵폭탄을 다시 퍼붓는 미폭격기! 남편을 찾아 헤매는 공포와 두려움. 우방이라던 미국이 우리 국민 수십 수백만을 죽이는 핵공격에 치가 떨리던 분노라니! 잠결인데도 심장은 방망이질을 했다! 문득 깨어나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보스코를 확인하고도 한 시간 가까이 홧김에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아랍의 모든 나라가, 아프리카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아이 여자 할 것 없이 날마다 이런 공포에 살고 있겠거니 생각하니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유럽 강대국들에 대한 분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보스코는 당초부터 미국의 대북유화정책을 믿지 않았지만, 한반도에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의 공갈이 주사야몽으로 나타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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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외국으로 보내는 40여장 성탄카드(해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부치러, 또 남호리 땅 이전 문제로 함양을 두 번이나 오가느라 점심도 거르고 다섯 시가 다 돼서야 점심을 찾아먹는데 진주경상대 김교수가 휴천재를 찾아올 거라면서 나더러 저녁을 준비하라는 보스코의 하명! 보스코는 워낙 마음이 따뜻해선지 어려서 워낙 배를 곯아선지 끼니때가 되면 중생이 다 배고파 보이나보다


급하게 떡국을 끓여 대접하고 식사 후에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위 '좌파경제학' 교수님으로 비록 젊지만 그가 걸어온 발자취가 참 사랑스러운 분이어서 식사대접하길 잘했다 싶었다. 바람이 쌩쌩 부는 어두운 12월의 산길을 한 시간 가량 달려 진주로 돌아가는 그를 구름새로 내리비치는 반달로 초롱불 삼아 바향하며 어쩐지 자주 볼 사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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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마루에 요즘은 홍학(게발선인장)이 떼지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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