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6일 토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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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하룻밤 사이의 추위로 노오란 옷을 하얗게 벗어버리고 처연하게 떨고 있다. 잘 살던 부잣집 마나님이 느닷없이 부도를 맞아 맨몸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꼴이다. 그런 길을 달려 광주엘 갔다. 마천 은행나무 길은 올해는 끝장났다. 그래도 먼 산에 서로 비비고 거리를 좁혔던 갈나무들은 서로의 온기로 이번 추위를 피해가서 아직도 단풍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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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생교육원에서 광주대교구 본당 사목협의회 및 교구단위 제 단체 임원들 250여명을 대상으로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제목의 평신도의 날 심포지움에 초대받은 보스코가 평신도 사도의 자기 정립을 위하여. 교도권 문헌에 따른 성찰을 함께 짚어나가는 기조강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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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장에 남편을 내려놓고 오늘 영명축일을 맞은 목포의 내 칭고 리따를 광주로 불러 축하를 해주고, 점심 후에 광주극장에서 하는 8회 스웨덴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업 인 더 스카이라는 어린이용 영화를 둘이서 보았다. 여덟 살 짜리 소녀가 여름 캠프를 가던 중 이상한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재활용센터에 가면서 시작하는 황당한 우주 과학 로켓트 영화로 코메디와 모험, 우정, 무개념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더 생각을 하게 한다.


스웨덴은 내 친구 복련씨의 시누 혜성씨와 김기호선생 부부가 세 따님과 스웨덴인 사위들 그리고 손주들과 살고 있어 과거에 서너 번 오가며 달포가 넘게 지낸 추억 때문에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다. 더구나 잉마르 베리만이 감독한 침묵”, “7의 봉인”, “파니와 알렉산더등은 나도 보았고 우리나라에도 크게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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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꼭 광주극장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다른 데도 있다. 광주극장은 1935년에 문을 열었으니 2015년에 팔순을 맞도록 건재한데, 이렇게 돈벌이가 안 돼도 단독상영관으로 묵묵히 버티어 주는 게 고맙기만하다. 오늘만 해도 난방을 안 해서 추우니 담요를 한 장씩 들고 2층에 올라가서 보세요.’라고 안내를 하는데, 상영관 안에는 리따와 나를 합쳐 담요를 두른 두 친구 등 다섯 명이 관객 전부였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돈이 아니고 영화의 존엄을 지켜내는 마지막 성역이라는 전라도 닷컴의 황풍년 편집장의 말이 맞다. 그는 광주시민들이 이 극장을 광주제일의 명소로 꼽으며 영화인들에게는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혼이 담긴 영화를 만들겠다는 장인정신을 심어주는 장소로, “광주극장에 걸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영화는 성공했다는 인증이 된다니...  돈이 아니고 사람이 찾고 지켜야 할 가치를 일러주는 곳으로 꼽히는 장소요 그 주인장은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의 다큐 감독 진모영도 이 광주극장에서 청년 시절에 영화를 보았고 바로 그곳에 자신의 작품이 걸렸을 때의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니, 광주극장이 묵묵히 기다려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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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바로 옆집이 50년대에 평화원이라는 고아원이었고 보스코의 아버님이 경영하시던 곳이어서 보스코가 초딩시절을 거기서 살았다니 더 정감이 가는 이웃집이기도하다. 그 당시 그 극장에 얹혀살던 부대인생들로 어린 보스코의 아련한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애잔한 잔상들, 기도를 서던 아저씨(가끔 보스코를 공짜로 입장시켜준), 간판실에서 상영이 끝나고 내려진 간판을 흰페인트로 지우며 간판쟁이의 조수 노릇을 하던 젊은이, 담배연기가 가득한 영사실에서 영사기 돌아가는 광경을 보스코에게 보여주던 영사기사, 영화필름 한 두름을 싣고 오토바이로 다른 극장으로 달리던 심부름꾼 형 등...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의 장면장면 그대로가 보스코의 추억 속에 흑백필름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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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를 데리러 평생교육원으로 갔더니 오후 종합토론까지 참석한 보스코가 지쳐서 폐막미사와 저녁식사는 사양하고 자리를 떴다. 리타를 목포 갈 버스터미널에 내려다 주고 둘이서 휴천재로 돌아왔다. 늦가을 싸늘한 골골이 어둠에 아스라하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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