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일 일요일, 맑음


낙엽 뒤에 자손을 남기고 간 어미벌레의 사랑이 아름답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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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일은 위령(慰靈)의 날’. 죽은 이들과 소통(疏通)과 통공(通功)을 믿는 가톨릭신자들에게 11월은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이다. 이날이면 만화영화 코코(Coco)”가 생각난다. 워낙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보스코와 같이 본 영화인데 죽은 이들은 1년에 한번 죽은 이들의 달 11월에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를 건너와 제사음식을 먹고 이승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돌아갈 수 있다. 단 이승에서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통행증이 발급된단다. 기억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은 망자는 그 세계에서도 영원히 소멸해 버린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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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틀간 담양으로, 대전으로, 그리고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오는 여행길에 우리가 기억해낼 수 있는 많은 분들을 위해 로사리오를 바쳤다, 어떻게든 이름을 기억하고 성모송을 한 알씩 바쳤다. 그렇게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정을 보이면서 당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속에 늘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다정한 숨결을, 우리를 보살피는 따뜻한 손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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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담양에 있는 천주교공원묘지에 가서 거기 누워있는 살레시안들에게 문안을 드리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스코에게는 아버지이신 마신부님과 기신부님, 내 맘에 길이 간직된 이태석 신부님과 얼마 전 돌아가신 신현문 신부님 묘지 곁에 오래 머물렀다. 바로 곁 교구 성직자 묘지에서는 60년전 어머님께 대세를 주신 박문규 신부님, 보스코 동창이자 우리 혼인미사를 함께 집전해 준 강영식 신부님, ‘5.18광주사태에서 큰일을 하신 조철현 신부님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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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김희중 대주교님한테서 (우리 혼인주례사제 김성용 신부님과 함께) 점심을 대접받고, 주교관까지 가서 보스코가 대주교님과 무슨 긴한 의논을 하는 시간에, 나는 교구청 뒷뜰을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이곳이 대건신학대학이자 보스코의 첫 직장이었을 세월에 아장아장 걷던 빵기와 애틋한 시간을 보냈던 숲에서 이젠 하늘을 찌를 듯이 커버린 나무들 사이에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추억을 길어 올렸다. 중년이 된 큰아들의 어린아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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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대전 정림동 살레시오수련회관에서 살레시오수도자 부모 모임인 '맘마 말가리타회' 가을피정이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새 관구장 최원철신부님의 강연이 있었다. 우리 엄마들이 깊이 생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일 이야기였다. 아들이 서품을 받는 날, 방글방글 웃고 있는 엄마들에게 노신부님이 물으시더란다. “행복하세요? 사제가 어떤 삶을 요구 받는지 알기나 하시나요?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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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들의 성소에 동반자(同伴者)’로서만, 아들이 선택한 성소에 충실하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마음을 끊고(그래서 지난 15년간 해마다 두 번 갖던 모임을 한번으로 줄이기로 정했단다), 아들이 그곳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기도로 돕고, 사제의 엄마답게 침묵과 겸손으로 묵상하며 영원한 협력자로 머물러야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보고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님의 모습이 될 때도 있으리라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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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미사와 아침식사 후에 일행은 장태산엘 갔다. 단풍이 산위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다음 주 쯤엔 더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겠지. 점심 후 지리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서상 IC’로 나와 백전방향으로 산길을 넘으며 계관산 뒤끝자락에 찬란한 단풍을 원없이 감상했다. 하느님께 돌아가는 날,  하느님의 가을 채색이 “정말 아름다웠노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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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내 집 뒤란 산죽이 너무 답답하다며 보스코가 다 잘라냈다. 바싹 말랐으면 태워야 하는데 성나중씨의 그 '나중에'는 영원히 안 온다. 오늘 저녁에는 모처럼 바람 한 점 없고 동네방네에서 연기들이 하얗게 오르기에, 1115일부터 산불조심기간이라 아무것도 태울 수가 없어 펄벅의 소설 대지(大地)”에 나오는 그 억척스러운 여인처럼 내가 나서서 산더미 같은 대나무를 태웠다. 처음엔 나더러 혼자 하라더니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중씨'도 나와서 일손을 돕는다. 둘이서 두 시간 반을 불장난을 했더니 얼굴이 보리새우처럼 빨갛게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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