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일 금요일 맑음


윗마을 정자에 검은 옷의 처자와 총각들이 너댓 명 모여있다. 보통 정자에는 삭아빠진 할메들이 둘러앉아 이바구를 하거나 남자들이 한쪽 구석에 가끔 앉아 여자들 말에 끼지는 못하고 귀 동냥만 하며 먼산 바라기만 하는 게 시골풍경인데... 남자들끼리라면 죄 없는 담배만 빨거나, 됫소주를 사다가 물마시듯 하는 짓으로 건강을 해치는데 직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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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검은 복장의 젊은이들은 더욱 보기 드문 경우라 뉘 집 자손들이냐?’ 물으니 강동열 할아버지 손주들이라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왔단다. 윗동네는 강동열씨 집안 4촌형제 세 명이 사는데 그 중 한 분은 이빨로 유명하여 ‘MBC’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전달은 잘하는데 소식이 정확치 않아 KBS는 못된다는 뜻인가 본데 요즘은 그래도 우리나라 지상파중 MBC의 기사가 그중 정확하니 캠비씨’KMBC로 불러 줘야 한다


둘째 아재는 젤로 똑똑하여 마을이장을 장기집권하다 요즘은 인규씨에게로 세대교체가 됐단다. 사촌들에게 치어 한 번도 이장 벼슬을 못한 막내는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인데, 이웃남정들과 똑같이 술담배가 간을 망가뜨려 지난 정월에 광주 어느 병원에서 간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는 고생해오다 오늘 펴나난 시상으로 떠나셨단다. 그렇게 문정리에 남정 자리는 하나 더 비고 과수댁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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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네 사람들도 다 다녀갔다는 걸로 봐서 틀림없이 부고방송을 했을 텐데 아랫동네 새 이장이 새마을 방송 마이크를 잡으면 어찌나 갈피를 못 잡든지 가밀라 아줌마에게 통역을 들어야 소식을 확인한다. 늦게야 소식을 들어 집으로 직접 찾아가 부의금만 내놓았더니 우린 암껏도 몬했는데 돈만 받아 어쩌냐?’고 미안해 한다


산봇길에 윗동네를 지날 적마다 환하게 웃던 강아저씨의 모습을 이승에서 더는 못보 게 됐다윗동네 아랫동네에 암투병하는 남정들이 너댓 명이라 남은 남정 대부분이 투병 중인 셈. 그렇게 하나 둘 떠나가겠지만 아짐들 말마따나 '안방에 자리깔고 누우나 앞산 비탈에 누우나' 어슷비슷하다는 과수댁들의 탄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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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에는 뱀사골을 걷고 천년송 있는 와운마을까지 오르며 단풍놀이를 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봄에는 진달래나 철쭉을 보러 지리산 가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가니 최소한 일년에 두번은 마고 할메께 정식으로 문안을 올리는 셈이다. 하기야 손님이 휴천재를 찾을 때 마다 만만하게 가는 곳이 뱀사골이나 노고단, 아니면 칠선계곡이지만... 외지에서 지리산에 한번 오려면 얼마나 맘을 먹고 날을 잡아야 하나 생각하면 이렇게 가까이 살아 맘만 먹으면 오를 수 있으니 이게 웬 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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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체칠리아 부부와 소담정, 그리고 우리까지 다섯이 맘맞아 함께 꽃놀이 단풍놀이를 다니곤 한다. 산에 들어온 첫번 몇 년은 귀농 귀촌한 사람과 늘 함께 몰려다니다(그때는 우리 모임을 지리산 멧돼지라 불렀다) 점점 자기 할 일로 바쁘고 멀어지고 댓 명이라도 맘 맞아 뭉치면 그나마 다행. ‘좋다, 좋다, 좋다. 하느님 만드신 세상 이토록 찬란하게 채색되어 있으니 감사드릴 일만 남았으니.’


어제는 '10월의 마지막 밤'. 그냥 넘어가기엔 우리 딸들 말대로 내가 너무 갬성소녀여서 귀요미 미루를 꼬셔 대전 평송청소년문화센터극장에서 공연하는 만돌린 연주회에 갔다내 페친 로사 자매님의 초대였다. 레퍼토리가 대부분 이탈리아를 연상시키는 노래여서 친근한 추억에 푹 젖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특유의 정감 있는 연주회에서 두어 시간 음악으로 위로를 받고 로사 자매님, 미루 그리고 정신부님이랑 밤바람 속을 걸으며 가을의 소리와 청량한 향기를 맞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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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까는 '인생의 색상을 무엇으로 꾸밀까'와 직접 연결된다로사 자매님이 고마워 오늘 오후에는 보스코와 도정길을 오르며 그미에게 가져다 줄 산국(山菊)을 땄다. 파아란 하늘에 노오란 잔국화가 격렬한 향기로 안긴다. 이 맑은 가을,  성인성녀 명부에 따로 오르지 못한 천국의 모든 성인성녀들을 기리는 축일이어선지 '오늘 죽는다 해도 오로지 감사할 일만' 그득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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