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일 화요일, 맑은 가을하늘


우리가 사는 문정리에서 십여리 내려가면 동호마을 아래에 김종직 차밭이 있다. 그가 함양에 군수로 와 있을 적에(1470) 차나무도 없는 함양군민이 차세를 내는 데 한심하여 휴천면에 차나무 시배지를 조성하고 차나무를 길러 그것으로 공물을 바치게 한 공덕을 기리는 자리다.


[크기변환]IMG_0940.JPG


세조가 단종을 죽인 사실이 가슴 아파 소위 조의제문(弔義帝文)’ 곧 중국에서 항우(項羽)가 초나라 회왕(懷王)을 죽인 사건을 빗대어 쓴 제문을 지었는데(1457) 그 글이 사초(史草)에 실리고 연산군이 그 글을 트집잡아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켜 많은 문인들을 죽이고 김종직은 묘를 파내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시행한다(1498년). 후대에 신원(伸冤)이 되지만...


041657.jpg


우리가 지리산 자락에 산다는 소식을 들은 김종직의 후손 한분이 어느 해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최석기 외, 돌베개, 2000)이라는 책을 들고 휴천재를 찾아왔다. 그 책에는 선비 김종직의 가슴이 탁 트이고 시야가 넓어지다라는 제목으로, 지리산 유람기인 유두류록(遊頭流錄)이 실려 있었다. 그분의 후손이 이번에 돌아가신, “영남 민주화의 대부로 알려진 마산교구 김영식 신부님이다.


[크기변환]20191021_063824.jpg


그제 저녁 핸폰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던 보스코가 김영식 신부님이 돌아가셨다고, 내일 장례미사에 가야겠단다. 그의 두 발인 내가 안 움직이면 함양도 못나가는 남자니 '그럽시다'라고 대답. 마산 주교좌 양덕성당에서 영결 미사가 있는데, 미사가 끝나고는 장지까지 가잔다. 그의 늘어나는 운전주문에 '그러지 뭐'. (좁은 천막에 코끼리가 코를 들이밀면 좀 있다 다리를 디밀고 끝내 엉덩이를 돌려앉혀 천막을 온통 차지한다.)


보스코가 살레시오 수도회를 떠나 교구사제를 지망했을 때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분이 바로 마산교구 장병화 주교님이시고 그때 보스코와 혜화동 신학교 생활을 함께 보낸 여러 친구 사제들의 묘가 거기 있어 한번 찾아보고 싶단다. 김해동 신부님이 서품 2년만에 돌아가셔서 쉬고 계신 곳이 바로 고성 이화공원묘지여서 나도 전부터 궁금했던 터다.


[크기변환]IE002561196_PHT.jpg


[크기변환]IE002561433_PHT.jpg


[크기변환]710712_408865_5123.jpg


김신부님은 정의구현사제단초창기 멤버로 박정희의 서슬 푸르던 시절에 함께 투쟁했던 인연으로 많은 분들이 오셨다. 오늘 김신부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한 조명래 신부님이 강론에서 그분의 활약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전반기 사제직은 고모가, 뇌졸중으로 18년간 앓던 병상에서는 어느 자매님이 충실하게 식간을 챙기고 보살핌을 드렸다는 얘기도 여자인 내게는 가슴에 유난히 와 닿았다.


[크기변환]IMG_0987.JPG


[크기변환]IMG_0997.JPG


[크기변환]IMG_1060.JPG


이화공원묘지는 고성에 있다. 처음 찾아간 곳에서 보스코는 먼저 떠나신 분들을 뵙고 주모경을 바치고 함께한 사연을 내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11 월이 가까워지며 대지마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절이면 먼저 떠난 사람이 더 생각난다. 신부님을 땅에 묻으며 우리는 한 시대의 아픈 역사를 묻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저 흙 속에서 썩어져 우리의 역사는 더 아름다운 민주의 꽃으로 피어나는 거름이 됨을 안다.


[크기변환]IMG_1020.JPG


[크기변환]IMG_1008.JPG


[크기변환]IMG_1065.JPG


그곳에서 마리오자임김성호 사장님을 만나 문국주씨와 바올라씨와 함께 그분댁엘 찾아갔다. 김사장님이 보스코에게 꼭 줘야 할 선물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두 장의 사진. 그 사진 속에서도 민주화를 갈구하던 황인철 변호사, 마산의 박창규씨, 그리고 보스코랑 김사장님이 함께 찍혀 있었다. 빵기나 빵고보다 나어려보이는 80년대 보스코의 얼굴. 지금 팔순의 저 노인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음을 새삼 깨우쳐준다.


[크기변환]사본 -20191023_042823.jpg


마산으로 고성으로 함양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감기와 어지럼증이 하도 심해 유림에 있는 사랑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았다. 오늘 묻히신 신부님보다 훨씬 더 나이든 의사선생님의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시골에서는 아프지 말든지 아프면 죽든지 해야겠다는 결론이다. 암만해도 맘이 안 놓여 그 앞에 있는 보건소에 약을 지으러 들렀더니 공중보건의는 내 아픈 증상을 듣고 일일이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하여 약처방을 써준다. ‘저건 나도 할 수 있는데....’


그리고 저녁에는 함양도서관에 갔다. 구병모 소설 단 하나의 문장(문학동네)이 이번 느티나무독서회의 책이다. 쉽게 읽히고 흥미있었는데, 작가가 자기 의식이 흐르는 대로 독자를 산으로 들로 끌고 다녀 정신이 어수선했다. 아우님들 얘기로는 내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길게 늘어진 문장들이 지루해서 짜증이 났단다. 여성과 육아, 여자라서 받는 차별과 그걸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모습들이었는데 글을 쓰는 소설가도 읽는 사람들도 세대차가 크다.


[크기변환]20191021_2004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