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8일 금요일 비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는 있다. 구장네 나락을 베는 타작기 소리가 골짜기에 가득 울린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팔순의 늙은 아버지가 잡았던 운전대는 아들에게 물려지고 며느리는 여전히 타작기 옆에 매달려 나락이 쏟아져 들어오는 자루에 쟈크를 여미고 있다. 아낙이 20kg 나락 가마니를 번적번적 들어내린다. 늦게사 경운기를 타고 도착한 아버지는 미덥지 못한 아들 내외의 벼베기작업을 먼발치에서 눈으로 따라간다, 경운기를 우리 휴천재 마당에 주차시키고...
작년 오늘 저 세 사람에게 내가 간식으로 호도 케이크를 내놓았더니, 시아버지가 드시려던 케이크 조각에서도 호도를 골라먹던 며느리. ‘시집이라고 와서 지금 열다섯 살 난 딸 한개 노코 남펜 따라 부지런히 일다니는 게 고마워.’ 하는 노인. 시아버지가 새벽 일찍 일어나 아들 내외 먹으라고 밥을 해놓는다고 자랑하던 며느리. '가버리지 않고 아들과 살아주는 것으로도 고맙다.'는 시아버지. '세상에, 울 아부지 같은 사람 엄서유. 내가 그렇게 사고치고 못된짓 해도 나무라지 않고 받아준 사람이어유. 아부지 아니었음 지금쯤 빵에 가 있었을 꺼에유.' 하는 아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뚱하며 혀를 끌끌거리지만 저토록 서로 위하고 아끼며 뭉쳐사는 가족이어서 참으로 보기에 사랑스럽다. 배웠고 출세했고 잘산다는 사람들이 '독사떼'처럼 소름끼치게 사는 광경도 자주본 터라서 더 그렇다.
5월에 처음 어린모가 심어지면 휴천재 옆으로는 초록 잔디밭이 펼쳐졌다. 여름의 그 뜨거운 날들을 견디고 가을바람이 불어 솔숲 사이를 달려다니는 사이 황금빛 잔디가 된 탐스런 벼들. 드디어 오늘 사정없이 잘라져 알곡은 털리고 볏짚만 잘려서 나뒹군다. 추수 끝난 논 위로 오늘은 아침부터 소리 없이 가을비가 뿌려져 거친 바람에 날리던 지푸라기를 다독여 잠재운다. 시골에서는 비가 온다면 너도나도 덩달아 바쁘다.
어제 아침 인월 동아공업사에 보스코랑 가서 자동차검사를 받고서, 돌아오는 길에 도정 체칠리아네랑 만나 인월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씩을 먹었다. 늦가을의 꽃 설경, 실상사 근처 ‘길섶’ 갤러리로 올라가 구절초를 구경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아, 우리집도 그렇지만, 구절초 잎과 줄기가 아예 녹아내려 꽃구경은 재미를 못 봤단다.
'길섶' 주인은 지난 주말까지 구절초 축제를 지낸 뒷정리도 미처 못하고 지쳐 있었다.
시골생활을 작정하더라도 낭만과 노동 사이에서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계속하자니 끝이 없고 접자니 들인 정성이 아까워 엉거주춤 끌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커피한잔을 하며 꽃구경을 하다가도 오후에 예보된 비 소식에 스.선생네가 베서 말린다는 들깻단이 걱정돼 부지런히 돌아왔다. 나는 들깨를 안 심어 비가 와도 들깻대 덮느라 서두르지 않아도 돼서 한가롭다.
드물댁이 깔개와 작대기를 들고 윗말로 올라간다. 공소할매가 버려둔 한뼘 자갈밭에 뿌린 들깨를 털러 간단다. 우리집에까지 들깨 향기가 요란해서 나도 따라 올라갔다, 비오기 전 깻단을 옮겨주고는 밭가로 갈나무와 오리나무에 올린 울타리콩과 오이노각 그리고 호박닢을 따왔다. 가을이 되어 모두들 마음이 먼저 바빠진다.
강신부 엄마 데레사가 내일 ‘국회 앞 촛불 집회’에 가자고 전화를 했다. 가까운 수녀님들도 다 가신다며 ‘조국이 저렇게 됐으니 우리가 조국 대신 검찰을 개혁하려면 여의도로 가야 한다.’는 지론이다. 공수처를 설치하라고 제 정신 못 차리는 국회의원들 깨우러 가야 한단다. 산동 영자씨도 새벽차로 올라가 서울서 아들들 앞세워 여의도로 간단다. 돈받거나 교회에서 동원된다고 소문난 늙은 데모꾼들과는 질이 다르다.
시골 아낙들까지 저렇게 깨어있어 국민이 주인인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검찰을 칼잡이로, 언론이 한패가 되어 가짜뉴스 나팔을 불고, 보수가 늙은이들을 총동원해서 조국을 막아서는 까닭은 그 사람이 "존재만으로도 저것들에게 공포이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시구 그대로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 알로 붉게 빛나니...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자는
그 존재만으로 저들의 공포인 것을 (박노해, “살아서 돌아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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