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9일 수요일, 맑음


일요일 오후 내내 빵기가 3층 다락을 오르내리며 연미복에 조끼에 복대에 심지어 나비넥타이 까지 챙기며 부산스럽다. 워낙 노는 데 한 가닥하는아이라서 이번엔 무슨 일인가 몹시 궁금하지만 엄마가 물어도 부실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런데 어제아침에 보내온 동영상에 굿네이버스 국제간부들이 모인 오락회에서 인도네시아인 사회자가 마르셀리노 파바로티!”라고 호명하자 빵기가 무대를 향해 익살스런 몸짓으로 예의 그 연미복을 입고 등장하여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신나게 불렀다. 음색이야 파바로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성량만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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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울음소리가 워낙 컸고, 아기가 울어서 달래도 그치지 않으면 이불장 속에다 집어놓고 원 없이 울라 한 다음 나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였다. 조용해져 장문을 열면 울다 지쳐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장롱 속에서 실컷 발성 연습을 한 덕분에 저렇게 목소리가 큰가보다


보스코도 첫 직장 대건신학대학 신학전망 편집실에서 하루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농성동 농업진흥원에 들어서면 보리밭 저 건너 우리 셋집에서 들려오던 빵기의 커다란 울음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단다. 중고등학교 학생미사에서도 빵기 소리가 제일 컸고, 대학교 시절과 방위 시절 4년 동안 학생성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고집도 세게 악착같이 울던 걔는 어렸을 적 내 모습 그대로였다. 원 없이 울고 그치고 싶을 때야 그쳤던 내 울음끝 땜에 아버지는 날 갖다 버리라고 불호령을 하셨고, 엄마는 밤이면 하고 한 날 나를 등에 업은 채 엎드려 주무셨단다. 그때 그 고집이 지금의 나를 만든 저력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내가 엄마의 사랑에서 자라났듯, 빵기의 저 자존감도 이 어미의 절대 신뢰에서 생겨났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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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가 빵기에게 먹이라고 만난 음식을 엘리편에 보내왔다. 고맙다는 전화를 했더니 선생님, 오늘이 109일 한글날인건 아시죠?” 묻는다. 내게는 세종대왕님이 이 미천한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드신 날로 그저 태극기를 내 걸고 하루 쉬는 날 정도였는데 그미에게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솟는 가슴 아픈 날이란다.


그미가 어렸을 적. 한글날 국민학교 백일장에 나가 '장원' 상장을 받아오면 당연히 칭찬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구박을 받던 그미에게 , 절대 백일장에 나가지 말아라! 너 백일장 나가서 상타오면 가만 안 두겠다!”는 계모의 엄포가 내리더란다. 자기가 데리고 들어온 사내아이가 글쓰기와는 통 거리가 멀어서였다는 걸 지금은 알겠는데, 그땐 그저 글이 쓰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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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백일장에서 탄 상장은 숨기는 데 성공했지만 상금이 들통나서 계모한테 죽도록 매를 맞았던 한글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그러던 계모를 그미는 지금도 보살피고 있다!) 아이들이 양친 밑에서 사랑받으며 커야하는데 요즘은 부부 세 쌍 중 하나는 이혼을 하고, 헤어지면서 서로 아이들을 안 맡겠다고 미룬다니 그 아이들의 상처와 장래는 어찌 될까?


비오는 날이면 뼈마디가 쑤시며 궂은날을 알려오듯, 한글날마다 뼈아픈 내 친구에게 그대가 쓰는 글 한 줄 한 줄이 아름다운 건 그 때 남모르게 숨어서 써 왔던 백일장 덕분이니, 이제는 그만 아파하고 맘대로 글을 써보라고일러주며 안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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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웃에 있는 옥련씨(우리 부부의 사실상 주치의)와 친구, ‘이주여성인권센터를 창설하고 계승한 한목사와 허오대표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순수 시골밥상으로 점심을 하고 우이천변 길을 두어 시간 함께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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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며 냇물엔 청둥오리와 해오라기, 원앙부부까지 등장하여 여름 내 살찌운 물고기들로 풍성한 식탁을 차리고 만찬을 하고있었다. 피리미를 입에 물고 있던 해오라기들도 유유히 곁을 지나가는 자기 몸체만한 향어나 잉어를 보고는 움칠들 한다. 물가에는 여뀌, 고마리, 갈대와 억새등 가을꽃이 만발했고, 모래밭을 이룬 개천에는 아줌마들이 맨발로 들어가 물속을 걷고 있다. 가을 햇살이 따가와 그들도 물고기가 되고 싶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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