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3일 목요일, 아침까지 비 그리고 맑음


크기변환_IMG_0559.JPG


개천절(開天節). 우리 둘의 결혼을 거국적으로축하해 주느라 오늘을 국경일을 삼았나? 여태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아본 일이 한번도 없어 어제는 수유리 중고책방 '알라딘'에 가서 욕심껏 책들을 사왔다. 주로 내년에 '느티나무독서회'에서 읽기로 얘기가 오가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16권을 샀다.


그래도 날짜를 잊지 않았다는 표로, 기념일 아침이면 남편한테서 여보, 당신의 결혼을 축하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인사말을 받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나 곡절을 겪고서 맺어진 그가 50년 가까이 건강하게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아갈밖에...


크기변환_IMG_0548.JPG


103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지만 오전에는 이층의 커다란 이건창호창문들을 신문지로 닦아 맑게 하고, 오후에는 이층 올라오는 계단에 락카칠을 하고... 보스코는 모르는 척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그래도 큰아들이 일시 귀국해 있어 부모님의 46주년 결혼기념일을 챙겨준다며 ‘하누로 데려가 점잖은 한식대접을 하고 제네바 며느리와 두 손주의 축하 영상전화를 받게 해 주었다. 꽃 한 송이 못 받았지만 그제 사온 국화화분 두 개를 마당에 내 손으로 심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크기변환_20191002_164329.jpg


크기변환_IMG_0561.JPG


크기변환_20191003_155655.jpg


요즘 영화감상에 필이 꽂힌 나를 위해 보스코가 구닥다리 노트북에서 시골본당신부의 일기를 불러내 주었다. 보스코의 글에서 간간이 언급되는 작품이지만 50년대의 흑백영화로 감상하니 소감이 남달랐다.


20세기 프랑스 가톨릭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죠르주 베르나노스 소설(1936년작)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만든 영화다. 줄거리는 참 무겁고 어두운 흑백 화면에서 몸도 마음도 가난한 인간들이 절망과 증오로 독사떼처럼 엉켜있는 장면 장면은 우리 인간들이 정말 하느님의 은총 아니면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케 한다.


크기변환_20191003_132822.jpg


태어날 때부터 알콜중독의 부모로부터 선천적 알콜중독을 물려받은 나약한 몸으로 싸구려 포도주에 적신 빵이 식사의 전부인 병약한 젊은 본당신부! 처음 부임한 시골에서 만난, 발랑 까진 교리반 여자애들한테까지 놀림을 받고(그래도 쓰러진 신부를 발견하고 집으로 끌어다 돌보는 것은 세라피따), 독실한 신자라고는 달랑 하나인 처녀에게 본당을 떠나라는 협박을 받으며, 삶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인간들에게 시달리면서 더는 기도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


그러나 백작부인을 만나며 그 나약한 영혼에 죽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바로잡아 주면서 인간을 무섭게 속박했던 증오에서 헤어나오게 돕는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주교로부터의 도움도 없고, 세상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극단의 고독,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서 겨우겨우 찾아가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형편없이 가여운 청소부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는 동료신부를 만나보는 절망감, 위암의 급작스러운 발작으로 그 집에서 죽어가면서도 하느님을 원망 않고,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모든 게 은총인데.”라는 한 마디를 남기는 사제.


크기변환_d66c1add7d6e3bfd37934607cb404a96.jpg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아는 신부들 가운데 사제직을 떠난 여러 지인들이 생각났다. 건강 때문에, 여자 문제로, 주변의 냉대를 견디지 못해, 아주 작은 실수로 모함을 받아 떠난 사제들... 주교와 교구, 그리고 동료사제들은 마치 유다는 제 갈 곳으로 가버렸습니다.”하듯이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하느님과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지리산까지 들어와  소나무에 목을 맨 사제도 보았다.


더구나 '사제단'에 가입하여 이 민족의 역사를 하느님 나라에 가깝게 끌어가려고,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음'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다 '변방신부'로 내몰리고, 해외교포사목으로 발령가고, 교구장이나 교황대사한테서 '가짜예언자', '알카이다신부', '정치사제'로 욕먹고 보수 매스컴에 집중포화를 맞아온 신부님들을 떠올린다. 정직한 사제들에게 '독사떼'는 다름 아닌 교회 안에 있다. 


Diary_of_a_Country_Priest_(1951)_Robert_Bresson_0006539908ms.png


오늘은 페북에 내가 잘 아는 어떤 성직자가 내가 잘 아는 여교우와 애인관계라는, '그게 틀림없다.'는 단서까지 붙은 루머가 올라왔다. 그 성직자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여자들 사이의 질투와 그분의 사회참여가 저런 루머를 만들어 내는 이유임을 나는 안다) 사악한 입들이 쑥덕거리며 사람을 망친다내 아들이 사제여서 그런지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사제를 위한 기도를 먼저하게 된다


작은아들을 사제로 둔 어미로서, 병약한 몸으로 시골본당에서 죽어가는 쓸쓸하고 가여운 사제의 삶, 어둠 속에 비칠거리며 혼자서 언덕을 넘어가던 시골 본당신부의 검은 수단 자락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크기변환_a346e5af97c7bc44e7d853108f9b5f5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