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7일 화요일, 맑음


올 가을은 때맞춰 적당히 비가 내려줘 텃밭 채소도 열심히 커가고 꽃밭의 공작꽃도 날개를 널따랗게 펼쳐 하이얀 꽃들을 맘껏 피워올리면서 갈바람에 살랑살랑 몸춤을 춘다엊그제 본 상림공원 화려한 꽃무릇과 비교하면 볼품없지만 나름 열심히 꽃을 터뜨리고 특히 내 꽃밭이라는 애틋함에 더 사랑스럽다. 휴천재 마당 구석에도 꽃무릇이 한 무더기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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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네 논과 유영감님네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간다. 고개를 숙여가는 벼이삭만큼 아름다운 가을꽃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무슨 일을 해도 즐거운 계절이다. 보스코는 지난 20여년간 뒤뜰에서 두서없이 커버린 산죽을 정리한다고 모기에 뜯기며 대나무를 베어낸다. 여름 내내 조금씩 해오던 작업이다. 산죽을 베어내고 오죽밭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이다. 저 엄청나게 쌓인 산죽을 토막내어 태우는 일은 내몫으로 남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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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봐도 내가 내 몸둥이를 다루는 욕심은 몇날며칠 시름시름 앓는 며느리 보는 고약한 시어미 같다. 질척한 날들에 심기가 몹시 불편했는데 몸을 털고 일어난 며느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안달. 빨래도 위아래층 세탁기를 돌려 테라스 가득 널게 시키고, 늦은 밤까지 대리미질 시키고, 더는 시킬 일이 없자 오늘은 집안 구석구석 청소까지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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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을 내는 황풍년 편집장은 요즘 심경이, 죽창든 동학군도 육혈포를 품은 의혈단도 될 수 없어 답답하기 이를데없는 세상이란다. 개명천지에 친일매국노들이 목청을 돋우고 설레발을 쳐도 도리 없이 지켜보는 요지경 세상이란다


여름 내내 꾸역꾸역 울분만 삼켜야 하는 처지가 울적해지는 이가 어디 혼자였을까만 내 심정을 고대로 표현해 준다.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불안할 때, 꼿꼿한 나라가 될 때까지 걱정하고 마음을 모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힘을 낸다.  국제사회마저 트럼프 하나의 발광으로 모든 상식과 룰이 다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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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스.선생부부와 산청 '동의보감촌'에 다녀왔다. 친정어머니가 부산에서 오셨는데 주일 저녁미사에서 뵙고서 무슨 구경이라도 시켜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모시고 갔는데 너무 좋아하셨다. 모시고간 내가 더 고마웠다


아직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을 하시는 모습에서 그분이 살아계심을 본다. 무엇에 대한 감탄을 잃어 버릴 때 인생은 끝장이구나 싶다. 아무리 젊은이라도 주변에 대한 섬세한 느낌을 잃는다면 그는 이미 늙어 빠진 노친네요 틀딱이나 다름없다. 나이들더라도 자연과 사람에 대한 경탄이 남아 있을 때까진 영원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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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젊었을 때는 집안 가득 꽃이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꽃을 가꾸는 것도 어려서부터 엄마에게서 보아 나도 모르게 학습된 결과다. 엄마는 특히 선인장 꽃을 좋아 하셔서 겨울이면 선인장 얼어죽는다 고 마루 가득 선인장을 들여 놓았다우리 놀이터는 안중에도 없어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에 가시가 묻어와도 엄마 눈치 보느라 선인장 구박은 못하고 봄이 빨리 오기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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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거르고 동남아를 다녀온 빵기가 손주들 소식을 알려왔다. 시우는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갔다 왔는데 알프스 산자락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이벤트였단다. 네 식구가 레만호수에 낚시질을 가서 백여 마리를 잡은 사진도 흥미롭다. 가시가 세고 많다는 그 많은 생선을 포뜨느라 죽는 줄 알았다는 아범의 비명도 즐겁기만 하다. 


오후 햇살이 너무 좋아 배추밭에 효소액비를 주러 내려갔더니 드물댁이 와서 풀을 뽑고 있다. 효소를 나눠주어 그미의 배추두럭에도 뿌리게 하고서 너무 배게 심은 열무를 솎았다. 열무김치도 담그고 된장국도 끓이려 열무를 한 소쿠리 솎아도 밭에는 아직도 열무가 가득가득하다. 빈자리를 채우느라 세 번이나 심었더니 너무 많다.


드물댁은 우리 텃밭에 빈자리만 보면 쪽파를 심는데 그미가 쪽파 씨 한 자루 전부를 심고 보니 텃밭 절반이 쪽파밭이다. 작년 가을에 이엘리와 실비아에게 김치담그라 보내고서 받은 감사의 선물이 너무 고마웠던지, '올해는 더 많이 심어 깨끗이 까서 많이 보내자'면서 드물댁은 파밭을 매며 신이 난다. '두 사람 클났다! 저 쪽파를 다 받아 김치담가 먹으려면.' 


밤늦게까지 부엌에서 열무김치를 담그고 대추 몇 알을 집어 먹어 보니 대추알마다 불그레한 가을이 꽉 들어차서 다디달다. 내일은 대추를 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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