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5일 월요일, 연거푸 소나기


보스코가 화단에 가루나방 방제약을 치고서 뒤꼍의 시누대를 마저 자르겠다고 차림을 하고 나서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종일 그치지 않았다. 장마철에 들긴 들었나보다. 저녁에는 경남에 호우주의보까지 떴다. 


[크기변환]IMG_8027.JPG 


[크기변환]IMG_8022.JPG


엊그제 읍에 나가 주차장 매장엘 들어서자 초딩 4학년이라기에는 좀 작은 아가씨가 살갑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이것저것을 찾는 내 눈길을 쫓다가 냉장고 속 계란에 내 시선이 가자 냉장고 문을 열어주며 오늘 가져 온 아주 싱싱한 유정란이라고 일러주었다. 물도 한잔 따라주며 주인 노릇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 매장 아줌마 딸인 듯했다.


오늘 함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 그 아줌마와 함께 오는데 그날 만난 꼬마 아가씨 얘기를 한다. 우리 빵고 신부 어렸을 적처럼 공부 말고는다 좋아한단다. 지난 토요일에도 상림에서 토요장터를 하는데 계란 파는 아줌마가 너무 수줍어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하자 꼬마가 나서서 그집 계란을 이고다니며 "계란 사이소, 싱싱하고 맛있는 유정란 사이소." 큰 소리로 광고를 하여 많이도 팔아 주더란다. 그렇지만 기본인 공부를 안 해서 큰일이란다.


[크기변환]1563092580993.jpg

"걔는 장사꾼으로 대성할 아이니까 유통 쪽으로 키우면 좋겠다."는 내 말에 자기 속 타는 줄 모르는 한가한 소리란다. 그 꼬마가 얼마 전까지 동네 작은 학교엘 다녔는데 애들도 별로 없어 읍내 함양초등학교에 가서, 말하자면 큰물에서’ 놀고 싶다고 학교를 바꿔달라더란다. 


그래서 2주간 적응기간을 가져보자고 우선 함양초등학교엘 보냈는데 그곳에는 먼저 학교와는 달리 폭력적이고 거친 아이들이 두셋 있어 이 당돌한 아가씨를 놀리고 괴롭히더란다. 나흘 되던 목요일, 더는 못 다니겠다기에, "그럼 내일 금요일까지 다니고 담 주 월요일엔 먼저 학교로 돌아가자." 했는데 드디어 금요일 아침 남자애가 아가씨를 밀치고 욕을 해서 그만 울고불고 사단이 났단다.


[크기변환]1563092601023.jpg


학교로 호출 받은 엄마가 딸을 데리고 오는데 하필 그 남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자 딸이 "정용아!" 부르며 뜀박질로 따라가더란다. 자전거를 붙잡지 못하고 헥헥거리며 돌아오는 딸한테 "쟤가 널 그렇게 괴롭혔다며 따라가고 싶니?" 꾸짖었더니 "엄마, 그래도 친구잖아!" 하더라나? 초등학교 때 티격태격 싸우던 애들이 그 싸움을 끝내 못 끝내고 결혼까지하여 평생 옆에다 붙들어 놓고 싸우면서 사는 경우도 없진 않으니까....


시아 시우도 한국 와서 '학교체험교실'을 두 주간 동안 하기로 했었다. 첫날 아침에 가기 싫다기에 "이왕 하기로 했으니 한 주간만 하자."며 보냈더니 첫날 돌아와서는 "재미있어, 엄마. 다음 주까지 할 테야." 하더란다. 미국에서 온 애들이 사촌들과 학원가는 게 엄청 재미있다며 '학원 다니고 싶어 한국 온다'는 얘기니 나 원 참... 어른들은 공부 더 하라고 돈 들여 학원을 보내겠지만...


[크기변환]1563114008009.jpg


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에서도 비가 조금 내리면 불과 이삼일 안에 싹을 틔우고 키를 돋우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신비한 현상을 본다는데... 아이들은 어떤 숨막히는 교육환경에서도 자기들이 생존하고 숨 쉴 겨를을 만들어내다니...


시아 시우가 지난 주말에 외사촌들과 스포츠 놀이를 하는 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우리가 빵기 빵고 딸랑 두 형제뿐인 집안인데다 하나가 신부가 되고 나니 걔들에겐 사촌도 없다. 다행히 외가 쪽에 사촌이 다섯이어서 그 일곱이라도 오순도순 지냈으면 좋겠다.


[크기변환]20190714_184644.jpg


오랜만에 '목우회' 언니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누구는 대퇴골 수술. 누구는 뇌혈관 수술, 누구는 자녀들이 아파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인생의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시름도 깊어진다. 칠순에 육박하는 나와 인재근 의원이 막내인 모임인지라...


어제 성당에서 만난 아줌마가 우리 아낙들이 그래도 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시부모님 모시느라 힘 겨웠는지, "아이고, 요즘은 너무 많이들 너무 오래들 살아요. 여든까지만 살고 다 떠나면 좋겠어요." 하기에 "우리 보스코는 그럼 2년도 안 남았네." 했더니만 무안했던지 "저렇게 건강하고 할 일이 있는 분은 말고요."라고 얼버무렸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삶과 죽음만은 사람에게 결정권을 안 넘기시고 당신이 알아서 하시는 하느님은 참 지혜로우시다. 하느님, 오래오래 찬미 찬양 받으소서!


[크기변환]IMG_803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