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2일 금요일, 맑음


일년 중 제일 더운 절기인 삼복 더위가 시작하는 초복이다. 지난해엔 엄청 더웠던 생각뿐인데 올해는 마치 초가을 날씨처럼 시원하다. 열린 문으로 방방을 통과하며 달리는 바람은 장난스레 보스코의 머리카락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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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정 도메니카가 전화를 했다. ‘오늘 초복인데 나가서 (삼계탕은 좀 과하고) 냉면이라도 사겠단다. 시골 냉면이라는 게 육수를 제대로 냈을 리 만무하고, 조미료만 듬뿍 넣어 느글거리는 맛 땜에 먹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나서 차라리 마천 가서 닭 한 마리를 사 오면 집에서 닭백숙을 해 먹자고 제안했다. 수삼 마늘 대추를 넉넉히 넣고 푹 고아서 닭고기는 소금에 찍어먹고, 나머지는 녹두와 찹쌀로 죽을 끓여 한 그릇씩 먹고나니 초복을 잘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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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마을 방송. “~ 오늘 호식이치킨은, 노인회 회장인 내가 병원 가는 날인기라. 오늘은 몬 묵고, 에~ 열흘 후 또 복날이 올 것이니께, 그날 묵도록 하입시더.엊그제 당산나무 밑에서 호식이냐‘ ’시장 앞 튀김집 통닭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토론했던 안노인들은 글자도 모르는 달력을 짚어가며 열흘을 더 기다려야겠다.


낮밥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도, 유영감님은 콩 심느라 뱃가죽이 등에 붙어도 일어서질 못한다. '점심 드셔야죠? 된장찌개 해 드시게 애호박 한 개 드릴까요?' ’어데! 엊그제 준 호박 아직 반쪽 남았어.‘ 그 애호박 반쪽이 된장찌개가 되려면 긴 과정이 필요한데... 노인이 되어 실생활을 감당하기로는 바깥노인보다 안노인이 훨씬 더 수월하다. 그걸 감안하셔서 하느님도 여자들의 생명을 더 길게 해주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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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기도에 나오는 시편 114편은 보스코가 각별히 좋아하는 시편이어서 그가 진심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문이 되고 남는다.

죽을 세라 이 목숨 건지셨도다.
울 세라 이 눈들 지키셨도다.
넘어질세라 이 발을 지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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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온 가톨릭신문1면 톱을 보면 대수천이라는 가톨릭 극우단체의 정치적 소동을 지적하는 글이 실렸다. 지난 주 신문도 판문점 남북회담의 신앙적 의의를 일깨우는 톱기사가 실렸는데 경상도 대구에서 나오는 신문이 이처럼 올바른 소리를 내다니... 신앙인들의 사회적 책무를 일깨우는 누록 같은 신문이다그 대신 서울서 나오는  교회신문은  영남지방의 이 신문을 읽고 부끄러워 고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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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휴천재 능소화는 병충해에 시달려 꽃을 거의 볼 수 없다. 작년엔 깍지벌레가 꽃몽오리를 똑똑 따 버려 바닥에 수북했는데, 올해는 미국션녀벌레라는 유충에게 집중공격을 받아 꽃몽오리들이 아예 안 보인다. 미국이 우리에게 주는 고맙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더 보태졌다.

보스코가 해질녁에 선녀벌레 유충이 있는 나무마다 방제를 했는데 20리터로도 모자란다. 꽃모종을 가지러 소담정에 갔더니 그 집엔 미국노린재가 바늘꽃대에 새까맣게 붙어서 즙을 빨고 있다. 꽃으로선 진저리 칠 일이다. 오실비아가 살구나무가 누렇게 죽어간다는데 어딘가 즙액을 빨아 고사시키는 해충의 장난이리라. 최근 만사가 글로벌한데 해충까지도 글로벌하게 옮아다니며 천적도 없이 기승을 부리니 농사 짓기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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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벌레의 입장에서는 창조주께 받은 본성대로 온갖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을 하고 다른 생물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온갖 위장을 다 하며 주어진 식성대로 정한  초목을 잎뜯어 먹으면서 생존할 따름인데 사람틀에게 해충이라 불리며 미움을 받으니 억울도 하겠다. 어제 읍내에서 돌아오는 휴천강 물길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새들을 보던 눈길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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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벌레나 이 꽃이나 예쁘기는 매한가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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