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역주, 꽃자리 출판사 2019) 추천사(824~828쪽)


* 우리에게 東西彼岸(김익진 역본, 1961)과 內心樂園(1966 김익진 역본, 1966)으로 알려진 중국 법리학자요 천주교 지성인 오경웅(吳經熊) 박사(1899~1986)의 중국어 시편번역본이 시편 사색(詩篇思索)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주석되어(송대선 목사 역주) 출판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최민순 신부님의 성경의 시편(1968) 번역에도 참조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중국교회에서 크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 저술의 가톨릭측 추천사로 올린 필자의 글을 참고자료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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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牧歌에서 悲歌를 넘어 讚歌로 



吳經熊 선생(1899~1986)이 동서양 언어와 법철학을 망라한 중국의 법리학자로서 國共合作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중화민국의 헌법초안에 관여하였고 2차대전 승전국의 일원으로서 유엔헌장 초안 작성에 참여한 학자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젊었을 적에 접한 그의 대표작 東西彼岸(1961 金益鎭 역본)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요한복음 첫 구절이 선생의 붓끝에서 太初有道로 표현된 문구에 크게 찬탄하던 감회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서구에서 우주의 창조원리인 로고스말씀이 동북아 종교인들에게 옮겨질 때 보다 풍부히 함의된 단어가 또 어디 있겠는가?


크리스천이던 오경웅 선생이 靈性修德神祕神學에 경도하면서 천주교로 입교하고서 서구 神祕家들의 淨化, 照明, 觀想의 세 층계를 오르면서도 老壯哲學孔孟思想의 사다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內心樂園(1953. 1966 김익진 역본)이 번역 출판되었을 때에 필자는 오경웅 선생이 이미 편찬한 聖詠譯義初稿(1946)에 실렸던 수십수 詩篇들을 인용하면서 히브리 詩歌를 중국의 詩文으로 염송하고 음미하고 명상하는 슬기에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경웅 선생은 1946년부터 3년간 주교황청 중화민국 대사를 지낸 점이, 비록 반세기 후의 일이지만, 필자의 같은 경력(2003~2007)과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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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心樂園서문을 쓴 이(대만의 위빈 추기경)중국인은 진정한 공자의 제자들이다. 공자는 인과 중용을 강조했다. 중국인은 냉철한 논리보다 순수한 사랑행위를 훨신 더 중시한다.”는 통찰은 정확했다. 더구나 오경웅 선생의 唐詩四季(1946)에 접한 한학자라면 한문으로 옮겨진 聖詠 한 편 한 편이 漢詩로서 탁월한 운율과 선대 시인들의 격조를 상기시키는 溫故而知新으로 와 닿을 것이며 송대선 목사의 상세하고 치밀한 이 譯註本이 참 반가우리라 믿는다.

 

그리고 필자의 은사 詩人司祭 崔珉順 신부의 번역본 성경의 시편(1968)이 워낙 3.4.4調4.5調 운율로 맛깔스럽게 엮어져 있어, 신구교 공동번역(1977)이 나오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2005)이 나온 뒤에도, 한국천주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는 기도서 聖務日禱에서 여전히 최민순 신부의 번역본에 따라 시편기도를 바치고 있는 현실로 미루어, 오경웅 선생의 각운으로 엮어진 한문번역본 聖詠이 중국 천주교도들과 문인들에게 얼마나 달콤하게 읊어지며 사랑받을지 알 만하다.


최민순 신부의 성경의 시편서문에도 漢譯世界名著의 하나로 聖詠譯義初稿名譯을 낸 중국의 吳經熊 선비는 시편 22편 한 곡에서만도 영성생활의 세 단계 즉 去非淨化, 進德名花, 나아가서는 神人一化까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 이스라엘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일 수 있는 바탕을찾아냈다면서 참고문헌에도 吳經熊, 聖詠譯義初稿臺灣을 수록해두었다. 그뿐 아니라 50년대에 구약성경 전권을 혼자 우리말로 번역하던 宣鍾完 신부(1915~1976)가 이 성서에 붙인 이름이 성영(聖詠)(1959)이었으므로 나이 있는 가톨릭신자들에게는 오경웅 선생이 번역한 聖詠의 우리말 역주본은 제목부터 반갑다.

 

구약성경에서 詩篇(터힐림: 찬양가) 혹은 詩篇集(세페르 터힐림: 찬양가들의 책)으로 불리는 이 성서가 행복한 사람이여, 그 하는 일마다 잘되어 가도다”[최민순](1,1 :長樂惟君子 爲善百祥集 [오경웅]) 라는 축원으로 시작하여 숨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150,6: 願凡含生屬 讚主永不息)는 환성으로 끝나는 150편의 거룩한 노랫가락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북치고 바라치고 십현금에 가락 맞추어 부르면서 미즈모르’(Psalmi)라고 하였다. 그 중 116수처럼 단 두 절로 끝나는가 하면 119수처럼 율법으로 사는 현자가 판소리풍으로 엮어가는 장장 176절짜리 창도 있다. 그래서 본서의 독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이 시가가 시편작가 어느 한 사람의 기도라기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의 기도요 어느 시편을 염송하든 내 목청이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울리고 있다는 체감을 느낀다.


인생을 현세 그 이상의 무엇으로 꿈꾸는 종교인이라면, 수천 년을 두고 인류가 초월자에게 올려온 기도와 찬양이 동서고금 모든 종교에 두루 퍼지고 경전으로 엮어져 왔지만, 어느 민족보다 먼저 唯一神 신앙에 도달한 히브리민족이 1000년 넘는 세월에 짓고 가다듬고 노래해온 詩歌들이 오늘날 20억 가까운 크리스천들의 입에서 거룩한 가락聖詠으로 불리는 문화유산으로서 인류의 종교심을 참으로 경건하게 표현한 結晶體임을 탄복하면서 이승의 나그네길에서 니 노래에 천상도성을 사모하는 그리움을 담으리라 본다.

 

젊어서 그리스도교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고, 은퇴 후에는 지리산 발치에 休川齋라는 누옥을 마련하고 그리스도교 최고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책 聖詠에서만도 히브리 문학과 서구신학과 공맹사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오경웅 선생의 번역문학에 찬탄을 금하지 못한다.


100권이 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대한 저술 가운데서도 교부의 詩篇詳解 Enarrationes in Psalmos는 분량이 가장 많은 저작인데다 시편 150수 전부를 강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시편은 여러 번에 나누어 해설하고 시편 118수는 무려 32회에 걸쳐 해독을 하였으므로 사제와 주교로 보낸 그의 25년 성직생활에서 무려 208편에 이르는 시편설교를 남겼다. 의자도 없던 성당에서 북아프리카 신자들이 설교단에 성경 두루말이를 펴놓은 채 한 시간 넘게 열변을 토하는 주교의 강해에 귀를 기울였다면 초대 교회 신자들이 얼마나 시편 염송을 즐겼고 교부는 시편 강독과 묵상에 얼마나 깊이 심취했는지 알 만하다.


인류의 두 정신 유산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한 물줄기로 합류시킨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노래들을 하느님이 손수 지으신 하느님 찬양이라고 일컬은 데는 까닭이 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서 합당한 찬미를 받으시고자 당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당신이 손수 지으셨다. 하느님 친히 당신을 찬미하시었기에 인간도 감히 하느님을 찬양하기에 이른 것이다.”(시편상해144,1) 한문을 익혀 오경웅 선생의 聖詠을 염송하거나 역자 송대선 목사의 유려한 번역문과 주해를 읽는 독자들은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23,1-2: 主乃我之牧 所需百無憂 令我草上憩 引我澤畔遊)라는 잔잔한 牧歌,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짖고 빌건만 멀리 계시나이다.”(22,2: 主兮主兮 胡爲棄我如遺? 發呻吟於危急兮 何惠音之遲遲)하는 悲歌도 결국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 들여라. 복되다, 그 임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34,9: 願我衆兄弟 一嘗主之味 其味實無窮 親嘗始知美)라는 讚歌로 귀결된다.


어느 민족 어느 언어로든 가장 빼어난 시인들이 가장 유려한 本邦語로 풀어 옮기는 뮤즈는 거의 종교문학으로 結晶된다. 오경웅 선생의 聖詠이든 최민순 신부의 詩篇이든 히브리인들이 수천 년 읊조려지고 다듬은 이 기도문들을 올리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바친 신앙고백에 이르리라 본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토록 오래되고 이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고백록10,27,38)

 

成稔 (西江大敎授, 駐敎皇廳 韓國大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