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7일 월요일, 맑음


며칠 전부터 오리털 이불이 너무 덥다. 남들이 말하기를 오리털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천연 온도조절 용품이라고 여름에도 계속 덮으란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어떻게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나, 정상적인 체온을 가진 사람들이? 하지는 가까워 오고 밤에도 25도 넘는 기온인데?


난 두 주나 열흘에 한번 침대시트와 벼갯잇을 빨고 새것으로 바꾼다. 시트와 수건들을 빨아 햇볕에 널고 난 후에 그 쌈빡하고 뽀송뽀송한 기분이란! 그 동안 밀린 다리미질도 마저 하고 있으려니 바람이라도 한 가닥 불어오면 뒷산 정상에까지 단박에라도 달려오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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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검찰총장 인선 뉴스를 기다리며 일손이 안 잡혀 머리 안 쓰는 일만 하느라고 지리산에서 가져온 모종, 씨앗, 박하(민트)를 오늘에야 마당에 심었다. 박하는 빵기방 앞과 대추나무와 축대 사이에 심고, 봉재언니가 마련해 오신 달래 씨앗은 물철죽을 뽑아내고 심으려다 섞어 심었다. 파씨와 나머지는 두릅나무 앞쪽으로 심었다. 잘 크지도 않고 죽지도 않던 대추나무가 긴 기다림 끝에 대여섯 해가 지나 드디어 좁쌀 같은 꽃을 피워 올렸다. 과일은 넘어가는 서양볕에 익는다니 어디 올 가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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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반가운 목소리로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지명되었다며 기뻐 한다. 제발 이젠 문정권의 발목 좀 안 잡고 일 잘하는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어 적폐의 마지막 종기를 도려내 주기를 기대한다. 더 좋은 것은 기득권 수호에 물든 '견찰'들을 물갈이 할 기회가 왔으니 놓치지 않아야 할 텐데.... 노무현 대통령이 '낭만적 민주주의'로 정치검찰을 청산 못한 실패가 그의 죽음과 10년 극우정권을 초래한 비극으로  너무 가슴을 앓아왔다. 말하자면 촛불정권이 죽 쑤어서 개 주는꼴이 더는 없어야 한다.


경향신문 만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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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목사가 몽골이주여성의 실태를 파악하고 도움의 길을 찾으러 몽골을 다녀왔기에 와서 점심이나 먹으며 그들 얘기 좀 듣자.고 했다. 한국에 시집 왔던 몽골 여자들이 폭력적이고 무지한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느라 무작정 집을 나가 무작정 귀국했으므로 법적인 이혼의 문제, 임신한 것도 모르고 귀국해서 낳은 아이들의 문제(그런 아이 중에는 지체부자유아도 있어 해결은 더 난감하단다), 한국과 몽골 양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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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무지가 가져오는 문제는 그곳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그런 가난과 계층간의 이야기로 뒤엉킨 영화 기생충을 함께 보러 갔다. 보스코도 일년에 한 편 보는 영화로 셈하고 함께 갔다. 끝나고 난 뒷 기분은 한마디로 씁쓸함! 남의 얘기도 내 얘기도 아닌, 하지만 내 자신이 '심플한 중산층 주부'로서 살아오지 않았나 되새기게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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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랑 빵고는 이런 영화는 안 본단다. 매일 난민촌과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는 빵기는 전쟁이나 난민지역은 현실에서 충분히 차고 넘치게 보기에 책이나 영화까지 보는 일은 스트레스란다. 빵고는 청소년 문제, 복잡한 가정문제가 뒤엉킨 현실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살레시안으로서 쌓여오는 스트레스를 풀려면 '심각한 내용 없는, 어벤져스류의, 말도 안 되는, 거지같은' 영화를 보는 게 차라리 낫단다


서울집 아랫방 청년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영화 취향까지 세대간에 그렇다니 의외였다. 앞으로는 명화로 공유되는 이야기를 세대간에 나누기는 틀렸다. 왜냐하면 난 어벤져스류의 영화는 하나도 본 일이 없으니 편식을 하기로는 나도 마찬가지니까.


호천이가 미리내에 찾아가서 엄마가 새로 시작한 '요양병동생활'을 들여다보고 왔단다. '엄마, 이젠 여기가 엄마 집이야.'라고 하니 체념 섞인 음성으로 '내가 뭐래니? 나야 시키는대로지?' 하시더란다. 엄마는 침대 곁을 내주시면서 '여기서 자고 가렴!'이라는 말도 하셔서 새 환경에 적응해 가시는 모습 같아 고맙더란다. 그러나 밤이 오면 같은 병실의 할머니들(거의 100세에 가까운 분들이더란다)을 어떻게 대하실까?


며칠 전에도 '내가 엄마 곁에서 자는 일도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려니.' 하고 자다가 눈을 뜨니 엄마가 내 곁에 앉아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계셨다. 왜 들여다보셨을까? 평소에 외로웠는데 딸이 와서 좋아서? 아니면 혼자 자다가 옆에 누가 있으니 생소해서? 물어도 못 알아들으셨는지 대답이 없었다. 좀 지나면 큰딸이 찾아가도 '아줌마, 왜 우리 집 왔수? 어여 집에 가요!'라고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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