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6일 일요일, 맑음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찬란하게 맑은 날. 친구 딸이 미국 유학을 갔는데 공부가 끝나고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까닭이, 공기가 너무 나빠 아이들 키우는데 염려스러워서란다. 이런 날이라면 전세계로 이민나간 국민이 앞 다퉈 돌아오겠다, 강남 갔던 제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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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랩을 씌워 전자렌지에 음식물을 데우노라면 전자파에 오염된다고 펄쩍 뛰는 빵기를 보고 난 살만큼 살았으니까 죽으려면 길게 안 끌고 빨리 죽고 싶어서 그러니 너나 이것저것 가려먹고 오래오래 잘살려므나.’라고 했다. 엄마 대답에는 할 말이 없단다. 우리 나이 되니까 친구들도 만나면 대부분 화제가 건강문제고,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지인은 가능한 한 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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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큰아들이랑 어린이미사에 갔다. 본당신부님은 피정을 가시고 다른 신부님이 대신 '삼위일체대축일' 미사를 드려 주러 오셨다.오늘오신 박범석(필립보)신부님은 우리 동네 청한빌라에서 자랐고 선덕중교등학교를 다닌 분이며 서울대교구 중고등학생부 담당 사제란다. 우리 본당신부님은 그동안 애들을 영적으로 잘 먹이고 이끌어 누구 앞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게 잘 키우셨다. 악다구리 창용이를 찾으니 율동찬양복장을 하고서 맨앞에 앉아 진지하게 미사를 드리고 있다. 지난 부활절에 첫영성체를 했단다


우리와 함께 미사에 간 빵기도 창용이와 겨루기라도 하는지 악다구리로 노래를 한다. 오늘 서울주보에 나온 '말씀의 이삭'이끄심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생활성가 가수 임두빈씨도 어린 시절 미사시간에 성가를 가장 크게 부르던 소년이었다고 회고한다. 성가를 부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느껴졌고 기쁨이 솟아났단다. 저 꼬마 창용이도 아마 평생을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따라나설 게다. 오늘 율동 찬미도 얼마나 사랑스럽게 정확하게 해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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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악다구리 빵기도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컸다. 수유성당 시절에는 중고등부 성가대원으로, 대학생 때는 중고등부성가대 선생으로 활약하더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그분을 따라 나섰다. 오늘 미사 중에 부른 노래(신상옥 작사 작곡의 내 발을 씻기신 예수”)의 가사는 빵기의 고백이기도 하겠다.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으로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 주소서...


우리가 늘 기도하던 대로("주님, 빵기와 빵고가 남들을 섬기면서 자기 행복을 찾게 해 주소서.") 두 아들을 거두어 주신 하드님께 감사를 드린다. 삶의 굴곡을 겪는 청소년들한테도, 나라와 집을 잃고 전세계를 떠도는 난민들 틈으로 하나씩 보내주신 까닭이다. 두 손주 시아와 시우를 위해서도 같은 기도를 저녁마다 올리는 중이다.


미사 후 빵기는 처가에 하룻밤 묵으러 가는 길이어서 내가 노원역까지 실어다 주고 돌아왔다. 일시 귀국을 하더라도 반드시 장모님에게 가서 며칠을 묵으며 아내랑 함께 오는 경우에는 반드시 국내 체류날자 절반을 친정에서 보내게 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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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에 한신 후배 전규자 목사(늘푸른교회 담임)와 윤명선 언니(식구공동체교회 담임목사)가 우리집엘 찾아왔다. 언니는 우리가 로마에 있으면 로마로, 제네바에서는 제네바로  찾아주었고 지리산집으로, 서울집으로도 찾아주고 나도 북한산 소귓고개 넘어 장흥에 있는 언니 집에 무슨 핑계를 붙여서라도 자주 찾아가 만났다. 그건 우리 둘이 에니어그램상으로 비슷한 성격이고 또 서로 좋아해서(언니는 에니어그램 보급자이자 '공동체문화원 원장님이다)라는 게 그분의 해석이다.


그렇게 윤명선 목사님을 자주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서도 보스코는 오늘도 '우리 몇 번 만났죠?' 라고 언니에게 물어와 '나만 대사님을 짝사랑했나봐!'라는 서운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일편단심 민들레'로 마누라 얼굴만 기억한다는 듯이, 아내에 대한 순정만을 모든 여자들에게 각인시키려고 의도적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도, 여자에 대한 그의 안면인식장애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나를 미치게 한다.


언니는 피자와 루콜라 샐러드로 저녁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는데, 한 성격하는 언니가 다음번에도 보스코가 오늘 같이 엉뚱한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게다. 이 점으로도 남자들의 두뇌구조는 확실히 모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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