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일 일요일, 맑음


공소에 미사가 있는 날. 어제 구운 파인애플케이크는 보스코가 들고 내려가고 공소식구들과 한 끼 먹으려면 챙겨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 사랑의 애찬(愛餐)을 준비하는 일은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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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신교 출신이어서 예배 후 으레 함께 식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성당에서는 알절 없이, 인사도 없이, 눈도 안 마주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참 이상했다. 처음 성당을 찾은 개신교출신 신자는 '내가 암만 해도 잘못 온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반면 개신교에 처음 가 본 구교신자는 그 친절함이 부담스럽단다. 여하튼 각 집에서 한두 가지씩 가져와 공소에서 풀어 놓으면 모두에게 풍성한 밥상이 된다.


오늘은 ‘예수승천대축일’. 열흘 후면 성령강림대축일이니 그 날로 부활절은 끝난다. 신부님이 강론 중 천당 가는데 며칠 걸릴 것 같냐?’고 물으시는데, 천당까지의 거리를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어 대답이 궁금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만에 성령이 오셨다. 그러니 예수님이 올라가시는데 닷새, 성령께서 내려오시는데 닷새 걸렸으니 천국은 닷새 걸리는 거리다.'라는 계산이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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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예수님이 올라가셨다는 천국은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현실적이고 과연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나는 천국을 생각할 때 이 지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 전부를 한꺼번에, 영원히, 두고두고 보리라는 반가운 희망으로 그곳에 가고 싶다. (보스코는 천국 가면 하느님께 부탁할 일이 따로 있단다. 140억 광년 걸리는 우주를 이끝에서 저끝까지 휘익~ 달려갔다 오고 싶단다.)


오늘 미사를 집전해 주신 임신부님은 정말 훌륭한 사제다. 반듯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과 그 성실함이 후배신부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다. 누나 임봉재 언니도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장을 역임한 분으로 지금은 자그마한 텃밭에서 우리 토종씨앗 살리는데 혼신을 다 하고 있다. 보스코와 동갑나이에도 소녀 같은 감성과 사랑으로 전형적인 우리네 엄마’ 얼굴이다. 한달에 한번 아침미사를 드려주려  산청 단성에서 이 오누이가 오시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분이라 많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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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공소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몇몇이 우리집에 있는 파슬리, 루콜라, 바질의 모종을 구하러들 올라왔다. 호박모종도 잘 컸지만 그 어미 품종 닮아 호박+이 열리면 그게 익고나서 껍질 깔 생각이 끔찍해서 심지 못하고 버려야겠다. 시골에 살며 씨앗과 모종을 나누는 일은 마치 자식을 나눠 갖는 흐뭇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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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4월 말에 휴천재 화분들 분갈이를 하는데 올해는 벌써 6. 손수레로 밭에 내려가서 밭 흙 한 포, 퇴비 한 포, 상토 한 포씩 실어다 뒤섞어 포인세티아, 제라늄, 칼란코에 등을 분갈이하고 나니까 장장 27개 화분을 갈았다. 해마다 내가 걔들을 위해 하는 유일한 수고다. 물만 주고 햇볕만 잘 들어도 정말 열심히들 꽃으로 보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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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서 둘이서 저녁을 먹고 저녁기도를 바치려는 참에 마당에 차 소리가 난다. 내려다보니 미루와 이사야다. 오늘 목포 신안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렀단다. 어젠가 이엘리와 통화를 하니까 자기는 이사하느라 바빠서 못 들여다보니까 미루더러 우리 두 노친네 좀 찾아보라고 부탁하더란다, 미루도 올 참이었는데. 보스코는 미루를 보더니 둥근 달처럼 밝게 웃는다.


정말 우리가 두 아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건 가까이서 멀리서 친구들이 딸처럼 엽렵하게 돌봐주기 때문이다. "엘리언니가 저더러 마님 일 좀 못하게 말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또 일 했어요?" 라며 미루한테 지청구를 듣는데 보스코가 옆에서 그미를 거든다. "그냥 둬요. 내가 옆에서 말려도 안돼요.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꺼야!' 하면 나도 더 안 말리고 놔둬요." 나로서는 일하는 게 재밌어선데 왜 다들 나더러 뭐랄까? 기왕 버린 몸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을래요.'라고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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