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내일을 여는 역사 74(2019 봄) 20~27]


쿠바 미사일 위기베를린 장벽의 붕괴에서 바티칸의 역할

 

   소위 인류종말의 날 시계’(Doom’s day clock) 분침이 거의 자정을 가리키던 196210. 터키에 미국이 핵미사일 기지를 구축한데 대한 대응으로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기지를 건설하던 공사현장이 미국첩보위성에 포착되었다. 케네디 미국대통령은 소련에 쿠바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쿠바 연안을 봉쇄하고서 미사일 부품을 싣고 올 소련 선박의 검색을 해군에 명령했다. 소련 흐루시초프는 미국의 요구를 일축하고 쿠바가 침공당할 경우 전략핵무기의 즉각 사용을 군대에 명령해 놓았다. 두 초강대국의 자존심에 퇴로가 열리지 않으면 인류는 아마겟돈을 맞아 전멸당해야 했다.


  그러자 미국 최초의 가톨릭신자 대통령 케네디는 요한 23세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띄웠고, 82세의 노교황은 즉시 핵전쟁에서 인류를 구할 메시지를 작성하여 두 국가원수에게 발송하고서 1025일 라디오 방송으로 호소하였다. “모든 정부에 호소합니다. 인류의 비명에 귀를 막지 마시오. 평화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발휘하시오. 전쟁의 공포에서 세상을 구해야 합니다. 이 전쟁의 가공할 결말은 전대미문의 참극이 될 것입니다.” 교황의 호소는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고 인류의 비명에 귀를 막지 마시오!’라는 제목으로 소련 기관지 프라우다에도 실렸다. 이틀 뒤 흐루시초프는 교황의 호소를 명분으로 쿠바 미사일 시설의 철수를 공언했다. 이듬해 37, 소련 수상은 딸과 사위를 교황에게 보내서 쿠바 위기에 중재를 서 준데 사의를 표했고, 케네디는 터키에 설치한 핵탄두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요한 23세는 석 달 뒤(63)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반세기 동안 냉전을 벌이던 동구권이 현실사회주의를 스스로 포기하고서 베를린 장벽을 헐어낸(1989) 3년 뒤,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1992.3.3일자)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서기장을 지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1978-2004년 재위)를 평가한 기고문이 실렸다. 그 글에는최근 마지막 몇 해 동안 동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이 교황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큰 역할, 정치적 역할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자기 역할을 연출할 줄 알았다.”라고 명기되었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뽑힌 폴란드인(1978.10.22.)을 제거하려던 암살의 실패(1981.5.13), 폴란드의 자유노조 결성과 바르샤바 동맹국들의 동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1990.10.3) 등 유럽 현대사의 숨 막히는 10여년에 바티칸의 역할을 압축한 문장이었다.

 

교황은 다리 놓는 사람

 

  2013313일 제266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선출되었다. 열흘 뒤 교황청주재 외교사절단과 가진 신년하례식(2013.3.22)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제사회에서 자기가 수행할 역할을 다리 놓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다. “로마 주교의 명칭 가운데 하나가 폰티펙스Pontifex입니다. 다리를 건설하는 사람입니다(‘다리’pons, pontis + ‘만드는 사람’-fex). 내가 간원하는 바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지역들 사이에도, 문화들 사이에도, 세계 지도자와 다른 지도자 사이에도 말입니다.” 취임 후 5년이라는 짧은 세월에도 프란치스코는 미국과 쿠바의 국교가 복원되는데 일조하고, 미군의 시리아 내전 직접개입이 저지되는데도 일조했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수용하고 보호하도록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설득하고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중단과 본거지 귀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평가받는다.


  2017년 초부터 한반도 4월 위기라는 제목이 국제뉴스에 공공연히 떠오르던 그 4월의 29. 이집트를 방문하고 로마로 귀환하던 비행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핵문제를 에워싼 군사적 위기를 두고 외교적 해법을 찾읍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대다수가 몰살합니다.”라고 발언하였다. “내가 2년 전부터 야금야금 제3차 세계대전을 입에 올리고 있지만, 벌써 한 해 내내 한반도 미사일 얘기로 집중되었어요. 거기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어요. 오늘날은 한 판의 전쟁이 인류 절반을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를 몰살시킬 것입니다. 가공할 파멸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가 이미 발발한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가공할 말마디를 처음 발설한 것이 하필 2014818,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어서 교황직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고서 로마로 귀환하던 비행기에서였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한겨레의 가련한 운명을 걱정해주는 국제사회의 지지가 참으로 아쉽던 시점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인사를 전달하는 특사를 4대국에 파견하면서 교황청에도 사람을 보냈다. 525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과 회담을 갖는 주간이었다. 지난 2018년 한해만도 한반도를 염려하는 발언을 열 번 이상 토로한 교황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2018년에 들어서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고, 한미연합군의 연례 군사훈련이 중단되었다! 작년 9월의 평양방문에서 문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교황방북 초청을 귀띔한 것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청의 중립적 해법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각별한 우려를 파악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북핵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해법

 

  필자가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파견 받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하던 날(2003.7.4.) 파킨슨씨병을 오래 앓아 사지를 떨면서도 84세의 노교황은 필자에게 한국방문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섭리의 도우심이 있어 나는 귀하가 대표하는 나라를 두 번이나 방문하였습니다. 그 기회에 나는 단일 민족이 사는 반도가 강제로 쓰라린 분할을 겪고 있음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교황은 초미의 관심사였던 북핵문제를 언급하며 호소하였다. “산적한 현안 문제들 외에도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가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를 담보하는 최고법은 동등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데서가 아니라 오로지 상호신뢰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 교황의 입에서 나온 평등하게라는 한 마디가 필자의 귀에 예리하게 박히면서 2002325일 미군의 침략으로 제2차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던 새벽, BBC 화면에 나타나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던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을 달고 있었다)의 위협이 머리에 떠올랐다.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2006.10.9)으로 국제사회가 북한 제재에 총궐기하던 무렵, 세계 유력 통신사들이 바티칸에 몰려들어 교황청은 대북제재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라는 우문을 내놓았을 적에 이런 사태에 당면하여 바티칸은 어떻게 당사국을 제재하느냐를 논의하는 곳이 아니고 이런 긴장 국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평화와 타협을 시도하느냐를 고민하는 곳입니다.”라던 국무원장 베르토네 추기경의 현답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2006.11.13) “본인은 극동지역에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 북미 쌍방 협상을 격려하는 바이며, 모든 당사자들에 대한 존중 가운데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라면서 한민족을 화해시키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노력은 어디까지나 협상의 틀 안에서 추구되어야 하지만, 그 협상이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돌아갈 인도적 지원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충고하였다. 작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한반도의 직접적인 정치적 책임을 지닌 분들이 희망의 용기를 가지고 평화의 예술가가 되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해 진실된 대화의 길로 나아가는 남북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에 기도로 함께 합니다.”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멋진 그림은 북미회담과 김위원장의 남한답방에 뒤이어 김위원장이 여동생을 교황청에 보내서 82세의 노교황을 북한에 초청하는 장면이겠다. 교황청은 2019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방문을 공지한 터요, 미중무역분쟁에 못지않게 세계언론은 교황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에 관심을 쏟고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은 그 가능성이 한결 커졌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바티칸은, 17세기 초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원들이 중국인들의 조상제사를 효성스러운 문화적 관습으로 이해하던 문화순응의 정책으로 돌아가서,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하다.”는 선언으로 중국정부의 현실사회주의를 인정했다. 또 작년 922, 바티칸이 중국 정부당국과 중국의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는 뉴스는 교황청이 스무 세기를 고수해온 주교서임권마저 유연하게 행사함으로써 15억 인구의 중국에 대한 선교정책에 큰 변화를 단행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공산화하면서 중국 가톨릭신자들이 애국회지하교회로 나뉜 갈등도 교황청이 나서서 극복해가는 중이며, 심지어 지난 연말에는 바티칸의 중국 및 북한통 클라우디오 첼리 대주교를 중국에 보내어 지하교회의 두 주교에게 애국회가 지명하고 서품한 두 주교에게 교구장직을 양보하도록 조처하기까지 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초청이 오면 기꺼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뉴스가 퍼지자 종교지도자가 북한에는 왜 가느냐?’ ‘종교가 말살되고 유물론이 판치는 북한 사회에 무슨 선교를 기대하느냐?’ ‘해마다 유엔에서 경고를 받아온 북한의 인권문제는 알고나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가 나서서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지지하고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크나큰 희망을 걸고 있으므로 저런 의문들에 간결하게나마 필자의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평화의 사도로서 찾아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어느 한 편의 무력행사도, 프란치스코 교황 입에서 이미 발설된 3차 세계대전을 냉전에서 열전으로 전환시킬 따름이므로 핵전쟁으로 몰살당할 인류의 비명을 사전에 막으려는 종교지도자의 간절한 중재활동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국제사회가 북한을 지탄해온 인권문제를 두고, 바티칸은 다음과 같은 보편원칙을 세계 지도자들에게 표명할 것이다. 수십 년간 국제사회로부터 봉쇄되고 제재 받은 북한정부, 또 휴전선에서 수시로 열리는 군사훈련으로 일 년 내내 전쟁의 공포에 시달려온 북한 주민의 손을 붙잡고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가톨릭의 사회원리를 인류 사회에 천명하는 일이 교황의 방북 의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정의란 각자에게 자기 몫이 돌아가게 주선하는 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이미 1971년에 정의구현이 곧 선교다!”라는 등식을 확립하였다(1971년 세계주교대의원총회, 세계정의6). “인권의 영역은 민족과 국가의 권리까지도 포함한다. 각 국가와 각 민족의 자결권은 공동체 생활의 특수한 차원에서 촉진되는 인권이다. 한 국가의 기본적인 생존권에는 당연히 그 민족 고유의 정신적 주권을 표현하고 한 국가의 주체성을 나타낸다.”(가톨릭사회교리 157항 및 435)


  마지막으로, 바르샤바조약에 가입한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 70년에 걸친 사회주의 정권의 무신론 정책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 보니 그곳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거의 고스란히 존속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분단 이전에 신구교가 남북한에 골고루 융성하고 있었으므로, 한국가톨릭주교들의 북한선교위원회가 이미 30년 전(1989) "북한교회가 1950년 이후 목자 없는 평신도로 이어져온 신앙의 공동체로서 지난 19886월 이후 조선천주교인협회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실에 유의한다."던 메시지는 괄목할 만하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동포들이 만약 남북으로 서로 손가락질할 경우에는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는 성경 구절이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