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1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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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이 보내온 니제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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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보스코가 잠들 때 쓰는 양압기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나서 내가 한 시간에 한번은 일어나 기계의 공기압을 낮추어주다 보니 나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었던 것처럼 피곤하다. 그러나 보스코는 그 소리가 전혀 안 들렸다니 복도 많다그가 건강한 이유는 필요 없는 일에 귀 기울이거나,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쓰는 일이 없어서일 게다. 게다가 욕심도 없고 남에 대해서 좋게만 보는 눈을 가졌으니 그건 타인을 위해서보다 보스코 자신을 위해 더 좋은 일이겠다.


쟈크필립은 "용서란 원한이나 앙심으로 인해 잃어버릴 뻔했던 자유를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애정으로 상대에게 종속되어 있음과 마찬가지로, 용서 못할 때 원망하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묶어놓음으로써 자유를 잃어버리고 그 사람에게 종속되어버린단다. 부정적으로 살 때 사실 제일 큰 피해자는 증오를 받는 사람보다 증오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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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보스코의 양압기를 고치러왔다는 기사는, '밤에 고장나 소음을 발하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면' 고쳐주거나 바꿔주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얘기만을 남기고 갔다. 고객이 한 밤중에 일어나 '달밤의 체조'를 해야 한다? 이럴 때는 소리나 반응에 둔한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널고 집을 나서려니 집에 아무도 없다. 구총각에게 전화해서'무슨 일 있느냐? 어딜 갔느냐?' 물으니 학교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화요일이다. 왜 내 머리엔 요일이 입력되어 있지 않았나? 보스코가 곁에 없어 주말이라고 생각했나보다.


한가한 주중이려니 생각하고 보스코가 1박 2일의 모임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겠다는 대전 정림동 살레시오 청소년수련원으로 떠났다. 그런데 주말도 아니면서 고속도로는 왜 이렇게 막히는지, 4시간 반이 걸려서야 겨우 대전엘 갔다. 나야 그렇다 치고 저 운전기사들은 무슨 일에 저리도 바쁘고 분주할까


'이렇게 차가 정체되는 걸 보아 저 끝에 추돌사고가 있거나 도로공사 구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고 여기고서 7km 구간을 한 시간 걸려 기어갔다. 그런데 그 끝에는 아무 이상 징후가 없었다! 음성, 오창 등에서 나온 15톤 이상 트럭들이 시속 60km도 안 나오는 속도로 서로 추월을 하다 보니 늦는 속도가 누적되어 그렇게 느려진 것이다. 인간들의 욕심과 뻔뻔함 등 총체적 이기심이 서로를 교통지옥에 묶어둔 결과였다. 인간 다반사가 이런, 별다른 이유도 없는 일로 정치판을 서로 지옥으로 끌어가는 요즘은 다들 한꺼번에 망하겠다고 기를 쓰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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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가 넘어 정림동에 도착하여 원장신부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곳 원장 최신부님은 빵고와는 입회 동기다. 하지만 고등학교 갓 졸업한 빵고와는 달리, 이미 군대를 갔다 온 처지로 지금 관구장신부님과도 입회동기였다. 그러고 보니 관구장을 비롯해서 수련장 위신부, 관구경리 최수사, 광구비서 빵고까지 모두 입회 동기들이니 그 또래가 말하자면 살레시오를 이끌어가는 중추를 맞는 위치에 도달한 셈이다. 하지만 내게 빵고신부는 늘 막내아들로만 보이니, 지금쯤은 '파란불에 건너가거라.' '건너기 전 양옆을 꼭 살피라.'는 잔소리를 더는 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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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착하기 전에 원장신부와 함께 점심을 한 보스코가 점심에 돈까스도 먹었다고, 최신부가 먼저 내게 일러바친다. 내가 얼마나 남편을 엿본다고 소문이 났는지, 최신부의 그 한마디로 알겠다. 그런데 보스코는 '치즈까지 들어 있어서 엄청 맛있었다.'는 말까지 스스로 보탠다. 저런 순진한 사람을 두고 나로서는 어찌 식사단속을 할 것인지 대책이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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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되서 휴천재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 만개했던 화단의 불두화는 발아래 하얀 앞을 다 떨구었고, 아이리스도 끝물이다. 반면 5월의 코스모스장미가 담장을 멋지게 장식했고, 끈끈이대나물과 패랭이, 작약이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꽃은 피고 지고 세월은 가고...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난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살아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시바타 도요. 약해지지마!에서) 지리산의 자연은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생명의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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