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1일 토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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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 마을재생팀과 함께 우리 동네 탐방을 하기로 예약해서 오전에 케이크를 만들어 오븐에 넣고 구워지는 동안, 나 혼자 사전답사 차 옆 골목(우이천로42길나길)을 돌았다


옆골목은 길이 좁은데다 돌아나갈 길이 없어 장사하는 트럭이 들어와도 후진으로 나가야 할 만큼 변변치 못하고 집집이 평수가 작아 집장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60여 년 전 처음 지어졌을 때와 바뀐 게 별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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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동네 얘기를 물어 보려 해도 우선 낮에 집에 사람이 없는데... 어느 집에서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난다. 귀가 번쩍해서 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안주인을 만났다. ‘이란집아줌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갑고 놀랐단다. 동네에서 정력 좋았던 검정개로 유명하여 검정개집으로도 불렸다. 동네 암캐가 발정을 하면 틀림없이 그 검정개를 아비로 새끼가 태어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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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위에서부터 훑어내리기로 나섰다. 맨 꼭대기에 있는 영심씨네’. 남편이 덕성여대의 땅을 슬슬 개간하여 텃밭이 제법 넓어져 상훈이아빠는 지주(地主)가 되었다, 집을 팔고 연립으로 이사를 가자 농사지을 땅이 없어 몸살을 하더니 당진 가까이에 땅700여 평을 사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단다


그 이전에는 그 집에 쌍둥이네가 살았고 두 손주 쌍둥이를 혼자 키우던 눈물겨운 할머니의 사랑은 아직도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 하시면서도 손주들이라면 부들부들 떨었는데 내리 사랑은 존재했지만 치사랑은 없었다. 할머니는 슬프게 살다 그렇게 슬프게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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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집이 미장원집, 큰길에서 은하미용실을 하던.... 아줌마는 미장원을 닫고 집에서 아직도 간간이 머리를 해 준다. 아들 내외, 손주들과 산다. 그 앞 코너는 인하네가 세 살던 베갯집’. 가내 수공업으로 베개와 방석을 만들어 나도 많이 얻어 썼다. 우리 아래층에 세 살던 인하네가 그 집으로 이사가서 살 때, ‘5.18 광주사태의 주모자로 몰린 합수(윤한봉)씨가 우리 집에 얼마 숨어 살다 건너가 그 집에서 숨어 지냈다.


한때 그 집에  병협이네가 살기도. 병협엄마 헬레나는 내 친구, 병협이는 빵기의 절친이며 대자, 작은아들 병호는 우리 큰손주 시아의 대부라 우리와 복잡한 가족관계다. 병협아빠가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다 갑자기 돌아가신지 벌써 여러 해다.


그 아랫집이 삼성집’. 오래 동안 삼성에서 일하던 가장은 지금은 이사가 우이그린빌라에 사는 교우다. 그 집에 새로 이사 온 분은 수필가란다요기까지 집 네 채만 소개해도 긴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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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 책방 '쓸모의 발견' 앞에서 만난 도시재생과 마을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들의 모임에서 나에게 마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 ‘제헌로(制憲路: 마을사람들은 '약초원길', 행정상으로는 '우이천로42길')가 만들어진 내력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9544


일행은 마을을 돌며 '이 집에 누가 살고 무엇을 했나?' '언제쯤 떠났나?' '그 집은 언제 왜 헐어지고 새집이 들어섰나?'를, 아직 마을에 살고 있는 '만년반장 빵기엄마'에게서 들으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참 쓸데없는 얘기들 같지만 마을과 집 하나하나의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집들이 모두 귀하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과 음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마을이 사람의 피가 통하는 공동체로 살아가던 시절이 따스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일동은 우리집에서 내가 아침에 구운 만또바 케이크로 간식을 하고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5시에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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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에 빵고신부가 있는 신길동 관구관의 ‘돈보스코센터로 가서 성토요일 부활전야미사를 드렸다. 아들과 함께라서 우선 좋았고, 살레시안들의 따뜻한 분위기가 늘 우리집 같다. 며칠 전 영세를 받은 젊은 친구들이 복사를 서는데 어찌나 진지한지 보기만도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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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설거지하는' 작은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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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에 임마리노 수사님(50년 넘게 활동한 이탈리아인 선교사. 지금은 남북 수단을 지원하는 일에 골몰하는 중) 방에서 차 한 잔을 대접받고, 센터 6층에서 회원들과 대축일의 기쁨을 나눴다. 이렇게 주님 부활은 우리 동네 이웃사촌들의 흔적에서큰아들 빵기네와의 화상통화로, 살레시안들의 활기찬 신심 속에서, 그리고 작은아들 빵고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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