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14일 일요일, 아침에는 비 그 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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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쯤, 아래아래 집 정선생님네가 마당 잔디에 풀 뽑기 싫다는 이유로 오래오래 살아온 정든 집을 미련 없이 팔고서 의정부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떠났다. 나는 그분에 대한 미련으로 장독 여러 개를 받아 오면서 그 집터에서 잘려나간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가지 한 토막을 가져와 빵고 방 앞에다 기둥으로 세워 두었다. 그렇게 한 2년. 떠난 주인을 기억하던 한 토막의 은행나무는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가지를 뻗고 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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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을 버려도 자연의 생명은 자신을 거두던 주인을 못 잊나 보다. 더는 크지 못하게 해마다 가지를 잘라주다 올해는 그 기둥에 올리려고 으아리 두 그루를 사다 심었다. 으아리는 철망에는 덩쿨을 뻗지 않기에, 오이 올리는 망을 은행 기둥에 감아주어야겠다. 그 망과 은행나무에 가지를 감고 올라가면서 꽃도 피게 하려는데, 그 두 생명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잘되려는지 몰라 간밤의 봄비에 촉촉이 젖은 으아리에게 어디 한번 잘 커봐!’라고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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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주간이 시작 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님은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닷새 후 "그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임금님, 높은데서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겉옷을 길에다 깔고 올리브 가지를 흔들어 환호하였다는 사실! 사람의 머리를 혼란케 만든다.


성당 1층 현관, 친교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측백나무 잔가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환호하는 군중 역할을 모든 교우가 외쳤다. 기나긴 수난기복음 낭독 중에 우리도 그들과 똑 같이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소리치면서 그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음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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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전 서른 냥에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스(나귀 뒷발질에 상처 입은 사람한테 주는 보상비가 은 전 서른 냥이었다는 신부님 말씀 대로면, 그야말로 서푼값 싸구려로 팔린 목숨이다). 게파(바우)라고 불리며 제일 믿음직하던 제자에게서는 나는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당하던 스승. 그 순간 닭이 세 번 울고 '주님께서 눈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는데 그분의 시선이 얼마나 슬퍼 보였을까! 한없는 측은이 담긴 그 눈빛에 우리 영혼이 압도당한다. 우리가 저렇게 죽어간 분을 주님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고 그분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후에 해가 나자 마당 잔디에 난 질경이, 자주괴불주머니, 민들레 등을 호미질 해서 뽑았다. 주인이 없는 마당에서 이것들은 주인 행세를 하며 맘껏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보스코는 인동초 죽은 가지를 가위질해서 쳐내고 홈통을 메운 낙엽을 치웠다. 돌아서면 눈에 보이는 게 일이지만 그걸 재미로 생각하면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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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주 시우가 난생 처음으로 레만호수에 나가 낚시질을 했는데 월척을 했단다. ‘공부를 놓고 강태공으로 전업할지도 모를 일.’ 큰손주 시아는 여기서라면 중딩2’인데(거기선 초딩 8학년) 요즘 전화를 하면 전형적인 중딩2’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걔들이 무서워 북한이 남침을 못한다는중딩2’라니 적이 없는 스위스에서는 그 위력을 어디에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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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가다 보니 봉수네 집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지으려려는지 뒷집과 함께 가림막이 쳐져 있다. 봉수네가 살 때는 그리도 자주 오가던 집인데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 봉수누나 영미(보스코가 이웃아저씨로서 결혼주례를 했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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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엄마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와 둘러보던 곳이란다. 추억이 사라진다니 그미도 슬프다는 문자가 왔다. 사라지는 모든 추억은 슬픔과 함께 손잡고 다가온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저렇게 비처럼 떨어지고 마는 벚꽃 잎처럼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매 해 꽃이 새로 피듯이, 사랑하던 사람들의 추억은 되살아나고 그 희미한 추억 속에서 떠난 이들은 아직 이승에서 가냘픈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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