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9일 화요일, , , 흐리다 보름달


양압기와 밤새 씨름을 한 우리 둘은 많이 지쳐 있었다. 혹시나 보스코가 숨이 막히면 어쩌나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를 들여다보느라 잠은 저만치 물러서 있고, 숨이 멈출 때마다 몸부림치는 그의 코에 양압기의 호흡 경로가 제대로 됐나 바로잡아주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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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설치해준 인차장과 아침에 나눈 말. ‘사모님, 사모님의 협조가 있으면 성공하는데 아니면 십중팔구 한 달 안에 포기하고 말아요.’ 어떤 부부가 그러냐고 물어 보니 숨소리가 시끄럽다고 각 방 쓰는 건 보통이고, 환자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방치하는 여자, 심지어 그 마스크 꼴보기 싫다고 좀 치우라고 야단하는 여자도 있단다. 밤새 외계인 같은 마스크를 쓰고 몸부림치는 남편이 불쌍해 잠이 아예 안 오는 아내의 경우는 아주 보기 드물단다.


그래도 밤새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아서인지 보스코는 새벽에 일어나서도 몸은 훨씬 가볍다고, 빨리 지리산에 내려가자고 한다. 창밖엔 눈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어 마음은 안 내키는데... 보스코는 본인이 하려고 했던 일은 꼭 성사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지리산에 천왕봉이라는 마고할메가 숨겨주는 현지처라도 있나 본데... 그 현지처가 어찌나 보스코와 정분이 났는지 내가 양보 해야만 한다. 게다가 현지처한테 차로 실어다 주는 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속없는 본마누라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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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을 하는 날 일주일 후에 주치의 선생님과 예약을 하고 경과를 보라 했었다. 그러려고 오늘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전화에 녹음된 멘트가 예약을 받는 상담자에게 욕을 하지 마세요. 20181018일부터 감정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욕을 하는 사람은 법적인 처벌을 받습니다.’라는 경고다. 그 병원을 드나드는 저 태그끼아재들이 상담원에게 얼마나 욕을 하고 난리를 쳤으면 저런 멘트가 녹음되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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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한번 다녀왔다고 안하무인이 되고 자기보다 약한 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그 꼴사나움이 월남전에서 총부리 앞에서 겁에 질린 나약한 여인들을 능욕하던 사내들처럼 보여 참으로 혐오스럽다


일제 치하에서 동족에게 잔혹하게 했던 일제의 앞잡이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빌붙어 세도를 부리고, 지금까지 군사반란과 독재를 일삼은 패거리 속에 남아 떵떵거리다보니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악순환을 되풀이 해왔다. 이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짧게는 10, 아니면 20년은 더 민주정부가 나라를 이끌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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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고 어제 밤부터 소란했기에 걱정을 했는데 나무 위에 쌓이던 눈이 땅바닥에서는 그대로 녹는다. 다행이다 싶어 얼른 떠날 채비를 하고 서울 탈출에 성공했다, 11! 욕심은 덕유산을 지나며 먼 산위에 흰 눈을 기대했는데 산은 짙은 물안개 뒤에 얼굴을 숨겼다. 헐벗은 골짜기를 우유빛 안개가 쓰다듬으며 산위로 산위로 오르고 있었다.


오창을 지날 때 쯤 미루의 전화. 내일은 서로 일정이 달라 시간이 맞지 않으니 오늘 저녁을 남해 형부네와 함께 산청에서 하잔다. 형부는 54세에 스텐트 시술을 받았는데 심장 스텐트 선배로서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하는지 보스코에게 일러주시겠단다. ‘생각해 보세요. 아직 대학도 안 간 세 아이, 그 애들을 키우자고 다른 남자한테 살러 갈 내 여자를 생각만 해도 견디기 힘들어 죽기로 살아냈답니다.’는 요지의 경험담. 요상한 명분으로 엮어내는 아내 사랑, 아내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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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는 지리산 속에 살다보니 모조리 78세 노인들(보스코를 위시해 남해형부, 봉재언니 등)에 둘러싸여 마치 독거노인 돌보미처럼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니는 오늘 휘영청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어둠 속에 있는 산노인들에게는 보석 같은 빛이다.


저녁 식사 후에도 미루네 매장에서 세 커플 여섯 사람이 다과를 들며 많이 웃고 놀았다. 보스코의 병이 모조리 사라진 듯하다. 고맙고 귀여운 미루 한 사람이 있어 이렇게 행복을 엮어낸다. 또 남해바다의 선물을 한 상자 들고와서 나누어준 형부와 언니가 있어 구름 새로 틈틈이 얼굴을 보이는 정월 대보름 달은 더욱 크고 더욱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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