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6일 수요일, 맑음


창밖으로 내다보니 텃밭에 팔랑개비가 힘차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많이 부나 보다덕분에 날씨는 차지만 미세먼지를 깨끗이 실어가니 산위로 파란 하늘이 흰 구름과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침을 먹으면서 보스코에게 오랜만에 날씨가 맑으니 점심식사 후에 산책을 하자고 했다. 주변에서 운동을 안 하니 배가 나오고 그게 건강을 해치니 그 좋은 지리산 환경에서 좀 걸으라는 말을 많이 들은 터라, 순순히 그러자고 한다.


문정리 강가로 신작로가 나기 전에는 문상마을 위 오른쪽으로 매매재, 그 너머로 장작재(일명 허기재라고도 불렀단다. 커다란 다라이를 이고 새벽길로 나서서 함양장에까지 다녀오면서 해거름에 장작재에 오르면 허기가 져서 눈앞이 노랗게 어지럽던 여인네들의 서러움이 붙인 이름이다)를 넘어서 함양읍으로 나다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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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매재 아래 문호리 산비탈로 진이아빠가 지난 여름에 길을 닦고 포장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한번도 못 가봐 오늘은 그곳 신작로를 탐방하기로 했다. 그곳은 진이아빠가 30년전 귀농하여 첫사업으로 흑염소를 키운 농장이다. 지금은 산비탈 절반은 남에게 팔고 골짜기 아랫도리에만 블루베리 농장을 커다랗게 차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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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네 염소농장터 예전에 작은형제회 수사님이 한겨울에 피정하시던 염소막을 지나갔는데 폐허가 되어 있다. 겨울이면 염소들이 저녁에 돌아와 볏짚과 사료를 먹고 한숨 잠깐 자고는 새벽 서너시면 산으로 나갔고 진이네가 멀리 도회지에 나가면 우리 부부가 올라가서 볏짚과 사료를 주곤 했다. 수사님은 그 염소 무리의 숨소리를 곁에 느끼며 불기도 없는 공간에서 겨을 피정을 하셨다. 오로지 하느님과 함께하신다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아이가 부모님을 잃고 오갈 데가 없자 수사님네집에서 거뒀는데 미처 학교를 못 보내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어 미화원이던 그 수사님이 늘 아이를 데리고 일터에 나갔단다. 일터의 아줌마들이 보다 못해 그 성실하고 가여운 '홀아비'와 아이를 위해 적당한 과부아줌마를 소개해준다고 얼마나 성화였는지... 수사라는 신분을 밝힐 수도 없어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다음번 독서회에 읽어야 할 책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오후에 그 책을 읽으며 참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작가가 정신과의사와의 상담을 녹음해서 풀어놓은 책이다. 전혀 타인을 생각하거나 남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가치관이나 개념조차 없는 요즘 세대의 이야기다. 누구나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러기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에 빠져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상처내서는 안 되는데.... 최소한 상처입은 사람들이 자신이 상처받은 아픔을 알기에 서로 싸안아주고 위로해 줄 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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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갓 시어머니가 된 두 여인, 그리고 시집과의 관계에서 시월드라면 진저리를 치는 여인, 입장이 다른 두 얘기를 한자리에서 들었다. 결론은 참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고 두 쪽 다 며느리나 시어머니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아량이 아쉬웠다


모든 대인관계가 그렇지만 고부간에 서로 언어의 비수로 상대방을 찔러 평생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망쳐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저 허기재를 넘던 아낙들처럼 사랑에 워낙 허기져 상식적이란 말마저 비집고 들어가기엔 너무 이기적으로 굳어져가고 있지나 않았는가 내 마음을 추스리는 자리가 되었다.


휴천강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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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담양 장지에서 만난 박신부님이나 노신부님은 구순이 된 나이에도 늘 불우한 청소년이랑 함께 하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고 우리 스스로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오랫동안 당신 수녀회 관구장을 지낸 오르솔리나 수녀님을 보니 깊은 산비탈 녹지 않는 눈처럼 하얗게 늙어 있었다. 80년대 우리 유학시절 그분도 로마에서 함께 유학을 했다. 그분은 수녀님들 사이에서 성녀라고 정평이 나있는 분이어서, '성녀가 되기까지 자기를 저렇게 하얗게 닦으셨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속인들과 달리 오로지 타인에게 자기를 열고 타인을 위해 살아온 분들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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