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5일 화요일, 흐림


11시에 미루와 이사야가 휴천재에 왔다. 오늘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살레시오 수도자 묘역에 영원히 쉬러 오는 신신부님을 보러 가는 길. 좋아하던 사람을 떠내 보내며 텅 빈 가슴에 위로가 되어 주려고 찾아온 친구와 함께 하니 가는 길에 큰 위안을 받는다. 우리가 우울할까봐 이사야가 귀요미 미루를 놀리며 우리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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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에게 보스코가 자주 모자를 쓰지 않으면 더 이쁘다고 놀리는데 이사야 얘기로는, 여자에게 그런 말 하는 것은 큰 실례란다. 파마한 머리를 날마다 감지도 못하고, 빗질도 못 했을 텐데 모자를 벗기면 어쩌냐고. ‘모자 속에 제비집이 몇 채 있을 텐데...’ 란다


지푸라기, 진흙과 깃털이나 온갖 자료를 물어다 집을 짓고는 그걸 침과 진흙으로 멋진 집을 단단히 만드는 제비집이라면 모자를 벗어도 별 문제 없을 텐데.... 물른 내가 모자 쓰는 것도 보스코가 싫어하여 안 쓰지만, 나 말고 다른 여자들 모자도 다 벗기고 싶어 하는 이상한 심성을 가졌다. 아마 수녀님들이 쓰시는 배일도 벗기고 싶어할 보스코다.


가는 길에 담양 가까운 창평에 들려 창평국밥을 먹자고 미루네가 우릴 데려 갔다. 마침 창평 장날이어서 장구경도 하고 미루는 어제 보스코의 11번째 교부총서(영혼의 위대함(Augustinus, De quantitate animae)」) 출간을 축하하며 창평 생강엿을 사주었다('엿 먹어라!'?). 나는 장터에서 땅속을 헤집고 다니며 작물을 망치는 두더지덫을 샀다. 미루가 휴천재 텃밭에 가져다 준 큼직한 해바라기 팔랑개비로도 방을 안 빼는 두더지에게 특단의 조치를 할 생각이다. ‘너희들이 이사만 간다면 나도 이렇게 살생까지는 안하고 싶다.’ 보스코가 좋아하는 보리국을 끓어주려 보리싹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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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광주대교구의 담양천주교묘지에 도착했다. 신신부의 서품 동기 이태석신부 묘지 아래쪽으로 묫자리를 파놓았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처럼 보스코를, 그 담엔우리 부부를 돌봐주신 마신부님의 묘, 뒤이어 우리 세 시동생들을 키워주신 기신부님의 묘에 성묘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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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의 광주교구 성직자 묘지에는 어머님에게 임종세례를 드린(1957년) 남동 박신부님의 산소도, 각별히 가까웠던 보스코의 동기동창으로 우리 혼인미사도 공동으로 집전해 준(1973년) 강영식 신부 산소도 있었다. 미루가 오늘 처음 이 묘지에 온 것은 5.18에서 광주시민 보호에 주역을 한 조비오 몽시뇰과 늘 맘 속으로 경애하는 이태석 신부의 묘를 찾아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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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친숙한 분들을 지인들과 친구들을 봉분에서 만나보는 일은, 죽음이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그렇게 두렵거나 힘들거나 나쁜 것도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우리에게 생명을 점지해 주신 분이 베푸시는, 당신 구원과 은총의 선물임을 일깨워준다. 살레시오 박병달 신부님도 노신부님도 아들 같은 신신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드신지 오늘은 더 늙어보였다.


이럴 때 노인들은 죄인의 심경이 된다. 아들이나 사위를 앞세운 어머니들은 자신의 죄가 크다며 가슴을 친다. 아들의 시신을 안고 의연한 성모님을 생각한다. 그 죽음의 의미를 관통하던 하느님의 뜻을, 외아들을 잃은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크게 받아들인 여인....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와 우리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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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에 장의차가 서울에서 도착하고 우리는 꽃씨처럼 신신부를 땅에 묻었다. 하느님 나라에서 꽃으로 피어날 그를, 우리 마음에 영원히 꽃으로 피어날 그를 흙속에 정성스레 묻었다. 그리고 꽃씨에 물을 주듯 그의 무덤위에 국화 송이와 더불어 눈물 한 방울 두 방울... 


신신부가 묻히던 그 시간, 바람이 불어와 뿌옇기만 하던 하늘을 파랗게 열어주었다. 하늘에서는 빛줄기가 그를 맞으며 우리의 눈물을 훔쳐주듯이.... 모두 눈가가 붉어져서는 우리는 말없이 헤어져갔다. 시간이 가고 세월과 더불어 잊혀져 오늘이 흘러간 과거가 될 무렵 우리 또한 하나하나 꽃씨가 되어 저 흙 속에 묻혀갈 것이다.


꽃씨를 땅에 묻는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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