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일 토요일, 맑음


지리산에서는 주중에도 트래픽에 대한 걱정을 안 하듯, 서울에서는 주말에도 여전히 거리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보스코가 연구위원으로 있는 동아시아 복음화 연구원연차총회 참석차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천진암 성지에서 한다는데 실상 우리 집에서의 거리는 58km밖에 안 된다. 내부순환로에 들어서니 벌써 차로 길이 꽉 찼다. 저런 사람들을 보면 부지런하다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아휴, 인간들! 주말에는 집에 좀 붙어있지 않구!' 한숨이 먼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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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00번 도로를 타고 중부고속도로에서 나와 천진암까지는 별로 막히지 않고 잘 왔다. 천진암이라고 쓴 커다란 바위와 산 중턱에 거대한 십자가가 성지라는 표를 내는데, 성지 입구에 바로 붙여 지은 휴먼이란 찻집 내지 펜션이 천진암대성전이라고 쓴 세 개의 인공촛불 앞에 세운 이상한 마네킹들은 성지를 희화화(戲畫化)해 버린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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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난 조광 교수는 근대조선사 연구가로서 천진암이 초대교회 발상지가 아니라고 끝까지 반대했지만 보스코와 잘 아는 변신부는 소신을 갖고 아세아에서 가장 큰 성지(35만평)에 100년 걸려 아시아세에서 제일 큰 민족대성전’(3만평?)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수십년간 천진성지의 교주를 하다가 은퇴하였다. 그 신부의 심성도 잘 알고 사학자로서의 조교수를 잘 아는 나로서는 조교수의 말에 더 무게를 둔다. 인간적 욕심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하느님만(실은 알 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아실 일이고 그분으로부터 상이나 꾸지람을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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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를 천진암에 내려주고 나는 미리내로 엄마를 보러 갔다. 같은 경기도인데 싶어 떠났는데 서울서 천진암까지 온 시간의 두 배는 걸렸다. 엄마는 젓갈을 좋아해서 명란젓이나 창란젓, 간장게장을 특별히 좋아하신다. 이모랑 두 분을 모시고 실버타운 옆 저수지 근처에 있는 간장게장 집에 모시고 갔는데 엄마가 정말 걸음을 못 걷는다.


이모는 네 엄마가 저렇게 못 걷는 데는 호천이의 책임이 크다.’ 하신다. 호천이만 오면 유난히 더 못 걷는 척 해서 아들이 업고 다니거나 안아드리니까 그게 엄마를 점점 더 못 걷게 만든다고 흉보는데 이모의 시샘인지, 엄마의 연극인지 모르지만 한 여자가 나이로 저렇게 조금씩 더 망가져가는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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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말이 여기 실버타운에 있는 사람 절반은 다 죽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란다. 그들의 삶은 국가적인 낭비며, 가족들에겐 부담을 주고, 무엇보다 사람의 인간다운 품위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 주변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다 없어진 빈껍질 같은 삶이란다. ‘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어서 죽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저 하는 빈말이 아니고 그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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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포근하여 예전 같으면 산보하며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거닐 미리내성지로 차를 몰아 구석구석을 보여드렸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석상을 보여주며 '엄마! 이분들이 누군 줄 알아?' 물으니 예수님과 마리아!’ 하신다. 성모님에게는 개신교도답게 ''자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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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 가서도 눈을 꾹 감고 있기에 눈 좀 뜨고 세상 구경 좀 하세요!’ 라며 여기가 뭐에요?’ 물으니 호수라고 하신다. 뭔지 알긴 알면서도 희로애락의 섬세한 감성은 엄마얼굴의 늙은 주름처럼 주글주글 탄력을 잃고 젊은 날의 섬세함이, 인생의 감동과 감탄이 다 사라져 버렸다.


가까운 식당에서의 외식, 한 시간 정도의 드라이브로도 어찌나 피곤해 하시는지 방으로 모시고 가자 침대에 누워 즉시 잠들어 버린다. 하도 잠이 깊어 인사도 못하고 떠났다. 보스코가 기다리는 천진암으로 돌아가 다시 그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얘기를 그에게 신나게 해줬더니, '당신은 큰일났다. 당신 늙어도 간장게장 살을 바르고 짜서 수저 위에 올려 줄 딸도 없고...’ ‘걱정마. 나는 8, 90이 되도 꼿꼿이 죽을 때까지 내가 다 할 테니까.’ 아마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스위스인가 네델란드처럼 자신의 삶과 죽음에 책임있는 결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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