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일 금요일, 뿌연날


한양 길은 멀다. 집에서 새벽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 어젯밤에 샌드위치를 싸놓고, 아침에는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았다. 아침기도도 차에서 드리고 로사리오를 염송했다. 밝아오는 여명의 덕유산 산자락이 막 깨어나며 하품하는 시간, 주님을 찬양하는 기도, 사랑스러운 지인들을 한 알 한 알에 담는 로사리오는 가슴으로 다디달게 흘러내린다


덕유산휴게소에서 싸온 아침을 펴고 커피를 따르는데 옆 테이블 젊은이들이 두 노부부의 아침식탁이 궁금한지 힐끗거리며 서로들 소곤거린다. 젊은이들은 거의 라면을 먹고 있다. 전국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엄선된, ‘실수할 수 없는 맛’이라면서 라면을 먹는다는 빵고의 친구 신부도 있다지만, 어미 된 나는 아침부터 라면을 먹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아침부터 먹다니!’ 걱정이야 내가 하고 자기들은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듯, 그들은 후루룩 깔깔 웃음도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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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는 사진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사진은 보고 싶어 돌아보고 핸드폰에도 담았다. 기자의 손을 거쳐야 사건이 기사가 되듯이 사진작가의 손을 거친 작품은 그 한순간으로 영원을 말한다. 나는 하루면 (일기에 올리려)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사진은 좀처럼 안 나오므로 저런 작품들이 얼마나 귀한 줄도 알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실은 내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가야겠다고 나선 길인데 따라오는 보스코가 나보다 할 일이 더 많다. 중곡동 CCK에서 유신부님이랑 의논할 일이 있다 해서 일부러 중곡동에 들러 그를 내려주고서 나는 정릉 한목사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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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리도 와서 함께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하며 주변에 일어난 일, 각자에게 닥친 어려운 일, 앞으로의 일을 얘기나누었다.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간. 여자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일도 수다로 푸는 재간이 있어 우선 말로 하면서 머리에서는 해답을 찾아낸다. 막내 엄엘리가 멀리 연수를 떠나 빈 자리가 많이 아쉬웠다. ‘돌아오면 또 만나지 뭐, 우린 사인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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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에 우리집에 냉난방기를 달러 젊은이 둘이 왔다. 아랫집 두 총각들은 그 시간에도 핸폰을 보거나 이불속에 누워 있는데, 비슷한 또래라도 한데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왜 청년 일자리가 필요한지 알겠고, 일하기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핸폰과 놀아도 세월도 시간도 잘 가겠구나 싶다. 하지만 나날들뉘 시간이 내게 고개를 들어 너는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물을 날이 꼭 오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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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수고하는 조광교수를 만났다. 보스코와는 한때 혜화동에서 함께 공부하였고, 이기상교수와 보스코 등 학계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학자들 몇이 있어 교회도 자랑스러워 하리라. 조광교수는 큰아들 빵기의 대부님이기도 하여 우리와는 각별한 사이다. 보스코는 역사학(근대조선사)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에게 묻고 조광교수도 라틴어나 신학문제에 아쉬운 점이 있으면 보스코를 찾는다.


조광교수처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학자가 국사편찬위를 맡았으니 국정교과서를 핑계로 친일독재사관을 펼치려는 광인들이 더는 기세를 펴지 못하리라. 문대통령이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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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아성 대구를 빼놓고는 전국에서 단 한 학교도 바끄네교재를 채택하지 않은 그런 책을 국정역사교과서라고 집필한 인물들도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국민에게 이름도 감추고 있다. 자기 저서에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학자들이라면 자기가 수행하는 행위가 범죄행위라고 의식하기 때문이려니... 얼마 전 문대통령의 핵발전소 폐기정책에 반대한다면서 성명서를 낸 사람들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밤이 늦어 4.19탑 앞에서 장위동 댁까지 조교수를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며 이엘리와 한 목사가 나더러 오늘은 꼭 좀 쉬라던 말이 생각났다. 일기를 쓰고 나면 자정이 또 넘으니 쉬는 일은 또 내일로 미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