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9일 수요일, 맑음


임플란트 기둥을 세운지 일주일. 오늘 실밥을 뽑으러 서울에 오라던 주치의 말씀. 실밥 뽑는데 5분도 안 걸린다고, 이번엔 쉬이 끝난다던 간호사 얘기. 입을 벌려 보고 5분을 위해 서울까지 가야 하나?


바느질은 잘못해도 옷 뜯는 일쯤이야 옷감만 상하지 않게 살살 달래며 천천히 뜯으면 되는 일 아니던가? 이빨 꿰맨 자리도 크게 다를 게 없으리라 싶어 혼자 해볼까? 거울 앞에서 열심히 입속을 들여다보다 혹시 지난번에도 손가락 꿰맨 실밥을 보건소 선생님이 처리해 주었으니 그리 가볼까? 그런데 그 노련한 보건소 명의는 퇴직을 했고, 야리야리 꽃 같은 새댁이 소장으로 왔으니 입 벌리고 들여다 봐 달라고만 해도 도망갈 가녀린 여인이어서 안 될 일이고...


어디 읍엘 나가보자. 함양읍내에도 치과가 네댓개 되는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할메들이야 읍에 있는 치과에 가지만 차라도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젊은이들은 거의 진주나 대구로 간다. 내가 가끔 가는 상아치과에 가자니 좀 미안하다. 틀니가 헐렁하니 조여 달라거나, 떨어진 금니를 접착제로 붙여 달라는 등, 의료수가 1200원짜리 치료만 그 집에서 해왔는데 임플란트도 안 하면서 실밥이나 빼달라고? 그건 차마 못하겠다.


연수씨를 보러 읍내 주차장엘 들어갔는데 내가 치과에 간다니까 요 아래에 치과가 새로 생겼다는데 한번 가 보라는 말. 생판 모르는 사람이니 미안해 할 것도 없고 병원문 밖에 늘어선 화환을 보니 이런 날이면 누구라도 반기겠다 싶어 얼른 들어갔다. 바로 오늘 아침 830분에 개원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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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가 첫 손님은 아니다. 의사가 젊은데 프로필을 보니 한국구강악안면학회이사! 서울에 단선생도 같은 학회 이사였던 기억이 나서 혹시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아는 사이란다. ‘바로 그분이 해주는 이빨인데 서울까지 올 필요 없이 함양읍내에 가서 실밥만 뽑으라고 하더라니까 친절하고 고맙게 시술해주고서 무료에다 선물로 칫솔도 두개나 준다. 염치가 엄청 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서울 갈 시간 없으면 언제든지 오세요.’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마을 아짐들이 이를 하겠다면 이 집으로 모셔와야겠다.


또 병원 사무장이 원장님의 이모요 나와는 약초교실에서 같이 공부했다면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모님처럼 원피스에다 단정한 쪽머리면 이 동네에선 잊을래도 잊을 수가 없지요.'란다. 정말 함양은 작은 동네다. 4만명밖에 안 되는 곳이니까. 서울 쌍문동이 8만인데... 대도시 한 동의 인구만큼도 안되다 보니 서로 얼키고설켜 알음알음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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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양에 개업한 치과의사는 목동에서 개원을 했었는데 한 집 건너 하나가 치과라서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 치과'라는 간판을 달고 귀촌한 셈이었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곳으로의 회귀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누구나 꿈꾸는 일인데... 그는 좋은 몫을 택했다.


빵고신부가 돌보는 아이들의 한양 구경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바다 건너 착한 사목자까지 마음을 써줘서 빵고신부는 벌써 구름위에 떠서 하늘나라까지 가 있다.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것도 아버지가 잘 살아오셔서라는 인사말에 엄만 쏙 빼고 어만 아빠에게만 고맙다니... 나 역시 맞는 말도 같아 별로 억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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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앞산을 주름잡은 건 물까치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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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가는 길에 차에 가득 동네 할메들을 싣고 갔는데 원터 할메는 딸이 다섯 갠데 그 다섯이 돌아가며 어찌나 잘해주는지 성가실 지경!’이라고 자랑질이다. ‘난 아들만 두 개.’라는 대답에는 쯧쯧 혀를 차며 세상에 젤로 불쌍한 여자가 딸 없는 여자.’라며 아들은 언제고 꼭 지 아베 편!’이라고 흉본다. ‘그런가? 하지만 그 아베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걸 내 주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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