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8일 화요일, 맑음


며칠 전 빵고신부가 숨비소리애들 서울 구경을 시켜주려는데 4명 아이들이고 45일이나 되니 돈이 좀 들 것 같다며 나더러 후원할 사람 좀 구해 달란다. 데려올 애들 넷 중 둘은 난생 처음 제주도를 나가본단다. 물론 비행기도 타 본 일이 없으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그 어린 가슴들을 뛰게 하려고 엄마더러 도우라니 나까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 얘기가 나온 지 일주일이나 지났기에, ‘다만 얼마라도 돈을 구했니?’ 물으니 '아직` 이란다. 빚이라도 얻어 아들네 사업자금 대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겠다. 궁리 끝에 보스코의 친구, 인천의 홍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 친구지만 그런 얘기를 남에게 부탁할 만큼 뻔뻔하지 못한 게 보스코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천사나 악당을 하는 몫은 늘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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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홍선생은 내 얘기를 듣고 사업가답게 쾌히 경비를 대겠다 한다. 빵고신부더러 직접 연락을 드리라 했다, 기부금 영수증도 해 드리고. 홍선생은 예전에도 빵고가 서품 받을 때 좋은데 쓰라고 제법 큰돈을 주었다는데, 빵고신부는 동기신부가 파푸아뉴기니 선교사로 떠나자 그 돈을 모두 그 동기에게 선교기금으로 주어 보냈단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코톨렝고의 집(Piccola casa di provvidenza)19세기부터 이탈리아 전역의 중증장애자들을 돌보며 정부의 도움이 전혀 없이, 아침부터 들어오는 식품 트럭에서 온갓 생필품이 꼭 하루에 필요한 만큼 조달됐고, 저녁이면 동전 한 푼 남지 않게 하루를 마감하는 섭리의 집이었단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8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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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도 그 집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돈보스코의 사업 발독고(Valdocco) 바로 곁 아우로라(Aurora) 구역 전체 수만평을 차지한 거대한 블록이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하신 분의 다독임을 믿어온 집이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일에 매진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이치다. 가까이는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의 기적을 우리가 보지 않았던가?


우리 동네 모니카씨가 외워야 할 기도문들과 예식서, 그리고 재미있는 읽을거리, 방안에 걸 십자가와 로사리오를 챙겨 놓고 오후 내내 전화를 해도 대답이 없어 직접 찾아갔다. 작년 일년간 남편 병수발로 논농사를 못했는데 깔끔한 그니 성격에 잡초 제거를 하느라 해가 지고 깜깜해져야 집으로 돌아온단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아내도 마찬가지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환자가 된 남편이 요양병원으로 가자 가슴에 서까래가 걸리듯 괴롭다더니 힘든 일로 몸을 혹사하다 보면 제일 쉽게 잊히는 게 이 괴로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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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십자가와 묵주를 내놓고 그녀의 긴 푸념을 듣는다.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걸 알긴 아는데 왜 나에게만 이리 힘들게 하는지...’ 첩첩이 험한 산으로만 이어온 평생을 돌이켜 한숨을 쉬고 후회를 하다가도 자랑스러운 딸을 한생에서 만났다는 게 고마워이승의 모든 어려움이 상쇄되고 남는단다


자식을 향한 모성의 질긴 아름다움이다. 나도 세상에 와서 두 생명에게 빛을 주었고, 그 생명이 꽃피어나 사회에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인류는 그만큼 발전하고 나 역시 그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셈이다. 그녀가 더는 힘들지 말고 주님 안에 위로 얻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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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가 흔들의자를 구해다 조립하는 사진을 빵기가 보내왔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레고를 조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실생활에 필요한 손놀림을 하더니 언젠가 담배 잿털이를 만들어 이 할미에게 보내질 않나, 이제는 드디어 집안의 흔들의자 조립에 성공했다. 머지않아 우리동네 팔각정 정도는 쉽게 만들어 낼 것 같은 자랑스러움이라니...


빵기도 어려서부터 레고 조립을 하며 익힌 솜씨로 제네바 교민들에게 모든 가전제품을 고쳐주는 은사를 받았다는데 우리 보스코는 어려서 레고를 사주는 부모가 없어서저렇게 기계 파괴의 은사만 왕창 받았나? 오늘도 컴퓨터가 갑자기 느려져 프로그램마다 한참이나 기다려야 커서가 뜬다고 불평이다. 그래도 아들들과 손주들이라도 저 파괴의 주문(呪文)’을 격파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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